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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수라 Dec 28. 2021

우리 부부는 아이 없이 살기로 했다.

 새벽 5시, 드문드문 켜져 있는 가로등이 주위를 어슴푸레 밝히고 있을 때 하루가 시작된다. 2시간만 있으면 남편이 일어나 은은하게 커피를 내려주고 샌드위치를 사러 나갈 것이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산책에 나선다. 그쯤 되면 출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아이들, 데려다주는 엄마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느라 거리가 분주하다. 우리는 활기차고 소란한 그들을 등지고 산책길에 오른다. 아이들과 엄마들의 에너지 넘치는 소리가 멀어질 때쯤 지저귀는 새소리와  싱그러운 아침 풀 냄새가 우리를 반긴다. 흔한 결혼 10년 차 부부의 아침 풍경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 없이 살기로 했다. 결정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산부인과 수술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 서다. 태어난 아기들은 처음에는 쭈글쭈글하고 빨갛지만, 하루만 지나도 귀여운 자태를 뽐내며 포동포동 살이 오르기 시작한다. 아기들은 저마다 개성이 강했고 특유의 냄새는 중독성 있었다. 너무 예뻐서 퇴근을 미룬 적도 많았다. 그러나 아기가 걷고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귀엽다거나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나를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찌는 듯한 더위에 양수까지 합해 11킬로 넘는 배를 안고 다니는 산모들이었다. 흔히들 아름답다고 하는 D라인을 보는 나의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혈류량의 증가와 호르몬 폭발로 인해 조금만 움직여도 땀으로 흠뻑 젖는 옷과 불어나는 배 때문에 편하게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몸, 수시로 가고 싶은 화장실까지, 모든 것이 힘들고 고행의 시간으로 보였다. 감기 하나에도 약 쓰기가 어려운 산모들을 보면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미소가 곧이곧대로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안위보다는 아이의 건강이 우선인 그녀들의 위대함은 나에게 그다지 행복한 삶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하는데 5년의 유예를 두기로 했다. 5년 동안은 열려있는 마음으로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기로 한 것이다. 나는 확고했지만, 남편에게도 자기 삶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유예기간 동안 많은 곳을 여행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형태의 삶을 보고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은 유예기간의 종결을 선언했고, 우리의 삶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되었다. 결심하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주위의 편견보다 가족들의 냉대다. 많은 물음에 답해야 했고 그 이상으로 큰 실망과 한숨이 돌아왔다. 어른들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셨고 너희들 인생이니 알아서 하라면서도 불편함을 애써 감추려 들지 않았다. 집안 행사나 명절 때면 아이의 부재에 대해 친척들에게 설명해야만 했고, 자연스럽게 어디가 문제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시선을 받게 되었다. 그런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의지가 확고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저녁을 먹고 산책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주로 산책 후에 벤치에 앉아 사람들 구경을 한다.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노부부, 아빠 손을 꼭 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 유모차를 끄는 엄마,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부부. 참 다양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나는 아이가 있고 없고의 차이로 주변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지는 않다. 행복한 표정으로 물든 사람들에게서는 행복을 배우고, 쓸쓸함과 슬픔이 묻어나는 사람들에게서는 공감과 힘이 되어주기 위해 궁금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모성애가 없다고 비난받던 여자가 더욱 사람을 사랑하고 궁금해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주제는 남편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토론 거리다. 여러 답이 있을 수 있고 정답이 없다는 것이 흥미롭다. 처해있는 상황과 생각의 깊이에 따라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다. 여러 삶에 섞여 들어가 관찰하고 공감하며 그들과 살아가는 것. 어떤 인생이라도 축복받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나와 남편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삶이다. 


가로등이 하나, 두 개 켜지면 산책로의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우리는 그곳에서  서로 다른 삶이 흩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른 삶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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