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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수라 Jan 03. 2022

그녀들의 생일상


1년에 한 번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다.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미역국과 고슬고슬 갓 지은 흰쌀밥. 빨간 파프리카, 초록 시금치, 주황색 당근이 당면을 만나 먹음직스럽게 얽힌 잡채, 타닥타닥 지글지글 소리를 오래도록 내뿜는 고등어, 달짝지근한 소불고기, 동태전, 육전, 나박나박 썰어 담은 시원한 나박김치까지 집안이 따듯함과 맛있는 냄새로 가득하다. 어미 새가 물어온 먹이를 받아먹듯 나는 시어머니가 올려주시는 반찬을 척척 잘도 받아먹는다.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 네 식구가 모여앉아 식사한 지도 벌써 3년째다.


대구에 사시던 어머님이 우리 집과 한 시간 거리로 이사 오신 것은 3년 전이다. 무뚝뚝하던 시댁 식구들이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했다. 자식 며느리를 앞세우고 하는 제주 여행은 부모님의 얼굴을 환한 빛으로 물들였다. 특히 자식들 집 외에 사는 곳을 벗어나 본 적 없으신 어머님은 제주의 이국적인 모습에 푹 빠지셨고, 마치 세상을 처음 마주하는 아이와도 같아 보였다. 4박 5일이라는 짧지 않은 여정 동안 가족의 여행은 순조로웠다. 제주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저녁에는 바베큐파티에 술도 한잔했고, 즐거운 마음에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행복을 즐겼다. 그러나 마지막 날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가족의 여행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중매로 만난 시부모님은 데면데면했다. 더해 아버님은 살갑지 않은 어머니가 불만이었고, 어머니는 가부장적이고 친정에 안부 전화 한 통 안 하는 아버님이 원망스러웠다. 결정적으로 두 분 사이를 악화시킨 것은 어머님의 암 진단에서 시작되었다. 남편과 시누이는 대학 진학을 위해 타지로 독립했을 때였다. 자식들이 걱정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어머님은 질병에 관해 알리지 않았고 혼자 수술 날짜를 잡고 입원하셨다. 진단을 받고 입원, 수술, 그리고 퇴원까지 아버님은 한 번도 병원에 동행한 적도, 관심을 기울이신 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것이 어머님 마음에 한이 되었고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큰 배신감과 증오를 느끼셨다고 했다. 왜 가장 행복한 순간 가슴에 묻어둔 슬픈 감정이 떠오르는 것인지. 어머님은 마지막 날 참고 있던 분노와 울분을 터트리셨고 아버님 또한 그동안 서운함을 토로하셨다. 결국 큰 싸움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제주에서 다툼이 있었던 이후로 어머님은 시누이 집과 시골 할머니 댁을 전전하셨다. 사태를 관망할 수 없어 찾아간 할머니 댁은 낡고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었는데, 난방도 잘되지 않았고 생 필수품을 구하기 위해 읍내까지 나가야 했다. 초라한 어머님의 모습에서 나는 엄마가 겹쳐 보였다.


어머님과 특별한 유대관계가 있어서 발 벗고 나선 것은 아니다. 어쩌면 며느리로서 누구의 편도 아닌 중도에 머물렀어도 도리를 다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같은 여자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가부장적인 아버지 앞에 자식을 위해 나약할 수밖에 없는 엄마를 지켜보며 여자의 슬픔에 대해서 느꼈다. 어린 마음에 나는 괜찮으니 엄마가 행복한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마음이 자라나 엄마, 아내 이전에 하나의 이름을 가진 여자로서의 인생을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같은 여자로서 어머님을 이해하는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다.


얼마 후 남편의 뜨뜻미지근한 반응과 시누이의 간접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어머님을 우리 집 근처로 이사시켜드렸다. 방 2개에 화장실 1개 손수 지어 사셨던 집에 비해 턱없이 초라하고 작았다. 급하게 한 이사였기에 세간살이도 이사한 후에야 장만했고 쓰시던 물건도 대구를 두세 번 오가며 차로 실어 왔다. 막상 일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며느리 하는 대로 하시기만 할 뿐 별말씀이 없으셔 살짝 불안했다. 잘한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 때쯤 어머님의 호출로 아버님을 제외하고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문을 열고 들어간 집안의 풍경은, 더위를 많이 타시는 어머님이 동분서주하시며 끓이고 볶으며 잔칫상을 차리고 계셨다. 그렇게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얼마 만인지 어머님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이사한 지 꼭 반년만인 7월. 어머님은 며느리의 생일상을 손수 차려주시며 말씀하셨다.

“고맙다. 현아.”

마주 잡은 손으로 그녀들의 마음이 흘렀다.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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