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여행이 주는 3단계 회복
“몇 시쯤에 출발할 거야?”
“일단 12시 전에는 안될 것 같아. 일도 마무리해야 하고, 너 먼저 가.”
“응..... 그래 그럼”
캐리어 하나와 미니 아이스박스, 백팩을 차에 싣고 출발했다. 목적지를 정해두지는 않았지만 바다가 될 것이다. 이번에는 멀리 가야겠다. 4시간을 달리다 지칠 때쯤 차에서 내려 숙소를 정했다. 그다지 비싸지 않고 그렇다고 낙후되지 않은 곳으로……. 체크인을 하고 들어선 숙소는 넓은 발코니 통창이 바다를 머금은 듯했다. 나와 바다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듯.
거제 장승포항에서 20분 정도 배를 타고 지심도에 들어갔다. 섬의 60에서 70프로의 식물이 동백이라 동백섬이라고도 부른단다. 3월에 만개한다는 동백꽃은 그때까지는 피고 지는 것을 반복한다. 섬에 사는 십여 가구 주민의 대부분은 민박을 운영한다는데 마침 섬 주민이 외출을 다녀오는 듯했다. 섬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연인, 친구들, 가족 단위들이 많았다. 나처럼 혼자 섬으로 들어온 사람은 현지 주민이었던 아줌마 한 분뿐이었다. 30여 명의 사람이 섬에 도착해 지도에 따라 도보를 시작했다. 다 같이 우르르 다녀야 하면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보폭도 다르고 곳곳에 서서 사진 촬영을 하느냐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약 1시간 반에서 2시간 도보라고 했으니 운만 좋으면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외롭고 고독하지만 희열을 준다. 말할 의무도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지 않아도 되는, 하고 싶은 일들 속에서 아무 때고 멈출 수 있는, 정해지지 않은 자유로움이 바탕이 되는 것이다. 가끔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그 틈바구니에서 내가 뭐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고독이라는 자유가 주는 행복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혼자만의 여행은 중독이다.
출발 하루 전에는 잠을 푹 자지 못한다. 어디를 가야 할지 여행기간은 얼마나 할지 운전은 너무 고되지 않을지 등등 걱정과 생각이 많아져 잠을 설치게 된다. 출발할 때마다 갖게 되는 두서없는 생각들과 무거운 마음들이 올라온다. 부담감을 안고 출발한다. 한 시간 정도 달려 도시를 빠져나오면 확 트인 시야에 어느덧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요해진다. 그로부터 도착지까지 깊은 침잠의 세계로 빠져든다. 오롯이 나만 존재하게 만드는, 여행이 주는 첫 번째 회복
여행지에 도착하면 새로운 것을 마주하며 일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맛있는 것 예쁜 볼거리에 온전히 집중하며 이것이 '인생이지'를 연발한다. 평소 전부 사용할 필요가 없던 오감이 열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 만물을 재편성한다. 낡은 편협함을 털어버리고 넓은 아량과 희망을 채우는, 여행이 주는 두 번째 회복
여행 4일째가 되면 돌아다니기 싫다. 맛있는 것도 싫다. 적당히 편의점에서 데워온 햇반과 김, 참치를 두고 먹어도 괜찮다. 침대 위로 올라가 몸을 깊이 묻고 이리저리 티브이 채널을 돌리며 저녁이 되기를 기다린다. 해야 하는 것에서 벗어나 정신과 몸에 편안함을 선물하는, 여행이 주는 세 번째 회복
일상이 그리워진다
365일 24시간을 함께 있다 보면 서로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다. 또한 서로의 장점이든 단점이든 빠르게 흡수하게 되고 의존성 또한 높아진다. 코로나 시대, 외부 사람들과 만남이 현저히 줄어든 요즘은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작은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쉽게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갈등 속에 오도 가도 못하는 형국이 된 우리는 지치고 결국 번아웃된다. 그래서 서로를 떠나는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
‘부산에서 기다릴게. 오고 싶을 때 오도록.’
돌아가야 하나 여행지를 옮겨야 하나 갈팡질팡하던 마지막 밤 문자가 왔다. 이제 출발하기 전처럼 잠이 오지 않고 몇 시간 남은 밤이 지루하기까지 하다. 어느덧 내 마음은 남편과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한 아름 별이 바다로 쏟아질 것 같은 밤 우리는 서로에게 치열하게 파고들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