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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수라 Mar 08. 2022

215mm

집 없는 발

말라비틀어진 밥풀이 덕지덕지 붙은 그릇들이 싱크대 가득 쌓여있고 밥상에는 냉장고에 넣지 않은 반찬통들이 늘어져 있었다. 작은 베란다 가득 창을 막아설 정도로 빨래가 널려있는 덕에 안방은 아궁이처럼 어둡고 답답했다. 한쪽에 펴져 있는 요 위에는 남자의 들숨과 날숨 소리만 들릴 뿐이다. 일곱 살 소녀는 익숙한 듯 어둠 속에서 인형 놀이를 하고 있다.


저녁 8시. 부리나케 현관을 열고 들어오는 서른일곱 여자의 발이 바쁘다. 신발을 벗는 동시에 시큼한 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딸은 코를 막으며 어서 발을 씻으라고 닦달한다. 부랴부랴 손발을 씻은 여자는 주방으로 가 종일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장 봐온 재료들을 풀어 볶고 지지고 해서 저녁 밥상을 차린다. 딸과 남편을 뒤로하고 빨래를 개고 집을 쓸고 닦다가 식사가 끝날 무렵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또다시 주방으로 간다. 살림은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바쁘게 손을 놀려도 좁은 집은 태가 나지 않았다. 정리라고 해봐야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구석으로 옮겨질 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도 앉을자리, 쉴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새벽 5시. 12시가 다 되어서 잠이 든 여자는 해가 뜨기도 전에 아픈 남편과 어린 딸이 먹을 음식과 간식을 만들고 본인이 싸갈 도시락을 만드느냐 정신이 없다. 2시간 거리에 있는 직장을 가기 위해서는 7시에는 집을 나서야 하므로 마음이 바쁘다. 아직 어린 딸은 아침부터 맛있는 반찬이 없다며 투정을 부리고 남편은 어리광 부리는 딸을 용납할 수 없다. 그러기에는 본인의 몸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를 치르고 난 후에야 정신이 쏙 빠진 상태로 시큼한 냄새나는 신발에 발을 꿰고 현관을 나선다. 


215밀리 작은 발로 엄마는 가족이라는 짐을 수레 가득 싣고 언덕을 올라야 했다. 한창 젊은 나이에 몸져누운 남편으로 인해 갑자기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고요한 어느 날, 집안 어디에도 쉴 곳이 없는 엄마는 차가운 냉장고에 기대 울었다. 어린 자식과 남편이 들을까 숨을 죽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엄마를 문틈으로 바라보았다. 미싱 바늘이 관통한 엄마의 손가락에는 여기저기 반창고가 붙여져 있었고 작은 발은 더 쪼그라들어 있었다. 발가락 사이사이가 모두 들러붙어 누가 엄마의 발에 전족을 씌워놓은 것 같았다. 그 전족은 가족이었을 테지.


‘아침에 일어나면 안 나가도 된다는 게 너무 좋아. 종일 집을 쓸고 닦고, 빚 없이 완전한 내 집이라는 생각에 먼지 한 톨도 못 보겠어. 그런데 하나도 안 힘들어.’


결혼 후 제대로 남편 노릇 한번 못했던 아빠가 신문과 뉴스를 탐독하고, 은행 문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쪼들리는 생활이 더욱 고달파졌다. 별다른 설명 없이 돈을 아꼈다. 당시 아빠는 적은 돈이라도 주기적으로 넣는 것이 중요한 청약통장에 가입한 상태였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 아파트에 입주했고 그 후 청약 당첨 행운을 잡아 집을 장만했다. 비록 대출이 있었지만 그 사이 아이가 둘이 된 언니와 결혼 5년 차인 내가 대출금의 일부를 부담하기로 했다. 5년 후 집을 팔아 빚 없이 이사를 했고 시세차익으로 약간의 현금도 은행에 넣어둘 수 있었다. 지금 아파트로 이사 오기까지 많은 직업을 거쳤던 엄마는 30년 만에 돈을 버는 행위를 중단했다. 


몇 년 전 엄마는 당뇨 판정을 받았다. 많은 원인 중 하나가 급하게 먹는 식사습관과 충분하지 못한 수면이라는 글이 가슴에 박혔다. 성실함은 독약이 되고 책임감은 형벌이 되어 당뇨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먹고살 만하니 먹고 싶은 만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젊어서도 먹고사는 게 치사하게 하더니 늙어서도 치사스럽다. 엄마에게 인생은 참 치사하게 굴었다. 누구나 돌아가고 싶어 하는 따뜻한 집이 엄마에게는 퇴근도 없는 무보수의 일터, 매일 반복되는 가사노동의 현장이었다.  평생 달팽이처럼 집을 이고 다녔다.


시어머니에게는 사근사근 말도 잘하면서 엄마에게는 버럭 화를 내게 된다. 아빠 앞에 맛있는 반찬을 놓는 것도, 사위가 대단한 손님이라도 되는 듯 어려워하는 것도, 좋은 옷 한 벌이 없는 옷장과 맞지도 않는 신발에 깔창을 넣어 신는 것도, 고단한 인생을 살아온 엄마가 아직도 딱하고 안쓰러워 보이는 것이 화로 분출되었다. 그렇게 사사건건 화를 내고 돌아올 때면 마음 한쪽이 무너진다. 쪼그라든 손발이 안쓰러워 견딜 수 없다.


길거리에 파는 여름 슬리퍼를 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작은 발 때문에 이쁜 신발은 고사하고 맞는 사이즈의 신발을 신기도 어려웠다. 맞춰 신는 신발은 비쌌다. 이번 주에는 친정에 가야겠다. 엄마를 모시고 나가 당신 발에 꼭 맞는 신발을 맞춰드려야겠다. 고달프고 힘들었을 발에게 집을 선물해야겠다. 마음속으로 계속 다짐했다. 

‘화내지 말자. 절대 화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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