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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수라 Apr 07. 2022

마흔 사춘기

나이 든다는 것은


'마흔이 넘어가면 근육 만들기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특히 여성분들은 더욱 그래요.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달려봅시다.’


한 달쯤 다닌 헬스장의 20대 초반 남자 트레이너가 인바디 결과를 두고 한말이 마음에 두고두고 남는다. 근육을 열심히 만들어보자는 말보다는 마흔이 넘어서라는 말이 손가락에 박힌 작은 가시처럼 떠나지 않는다. 트레이너한테 나는 무엇으로 보일까? 여성, 아줌마, 중년? 


완연한 봄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면서도 설레었다. 옷장을 열어 겨우내 끼고 다니던 패딩들을 꺼내 세탁소에 맡기고 옷을 정리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했지만 눈과 마음은 밝고 가벼운 옷으로 향했다. 정리를 해가며 하나하나 입어보는데 작년에 입었던 옷들이 태가 나지 않았다. 살이 쪘나 싶어 몸무게를 재보아도 별 차이가 없는데 둥실둥실해 보이는 것이 어떻게 고쳐 입어도 이뻐 보이지 않았다. 


‘마흔이 넘어가면 근육 만들기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트레이너의 말이 환청처럼 들렸다. 그런가? 근육이 줄어들면서 라인이 무너지는 건가? 


그날 이후 길가다 화장품 광고를 보고 생각했다.

‘저 사람은 몇 살이었지? 나보다 많은 건 확실한데? 주름 하나 없네.'

지나가는 내 또래의 사람들을 유심히 보며 비교했다. 피부는 어떤지 옷맵시가 나는지 그러다가 뭐 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화장대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올라오는 기미와 색소침착, 주름들을 찾으며 어제 본 것을 오늘 또 확인하고 아까 본 것을 또 확인했다. 턱선은 서서히 무너지고 팔자주름은 깊어졌다. 볼 때마다 매분 매초가 늙어가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러나 싶다. 


며칠 후 봄 날씨가 화창해 시선이 밖을 향하는 날이었다.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그 핑계로 이쁘게 차려입고 나가고 싶었다. 하늘거리는 치마 위에 난방을 입고 가벼운 외투를 걸치고 나들이에 나섰다. 하늘은 맑고 햇살은 따뜻했으며 오랜만에 가벼운 기분이었다. 남편과 함께 서점을 들리고 공원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꽃처럼 화사하게 만개했다. 


자주 갔던 평양냉면집에 들러 고기와 냉면을 시켰다. 그런데 고기가 다 구워지는 동안 함께 먹으면 맛있는 냉면은 서빙되지 않았다. 매장 내는 손발이 맞지 않는지 직원들끼리 언성을 높여가며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었다. 결국 냉면 주문이 안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늦게나마 서빙된 음식은 육수는 미지근하고 면은 불어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이라 속상하고 분한 마음까지 들었다. 소란스러운 매장을 나섰는데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했고 삽시간에 추워졌다. 치마는 바람에 펄럭였고 머리도 정신없이 흩날려 얼굴을 제대로 들고 있기 힘들었다. 내려가는 체온에 집에 가고 싶은 마음과 오랜만에 한 외출이 억울해 더 놀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하늘하늘 흩날리는 개나리색 치마는 금세 비라도 쏟아질 것같이 어둡고 바람 부는 날씨에 초라했다. 맞지 않는 장소와 시간에 와있는 것 같아 당혹스러웠다. 


나이를 자각하고 나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갑자기 찾아온 것도 아닌데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것 같은 내 나이는 황망하기까지 하다. 질풍노도의 10대, 마그마 같은 열정이 끓어오르던 20대, 제법 진지하게 삶을 고민했던 30대를 거쳐 40대에 선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지로 변해가고 있다. 먹는 영양제는 많아지고 건강검진 항목도 늘어났다. 


여자의 40대는 어떤 것일까? 젊은 시절이라 칭할 수 있는 과거가 있고  늙었다고도 할 수 없는 어중간한 나이. 사회생활을 꾸준히 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의 괘도에 올랐을 것이고 나이만큼 지혜가 쌓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삶을 어느 정도 품을 수 있는 시점. 충족되지 않는 이름 모를 열망을 쫒으며 건너뛴 듯이 지내온 과거의 시간이 후회로 남겨지는 나이.  내면의 공백을 잘못된 방향으로 채우려 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다음날 일찍 눈이 떠져 아침 산책에 나섰는데 언제 날씨가 흐렸나 싶게 하늘이 청명했다. 이른 시간이라 주위에 아무도 없어 잠깐 마스크를 벗었다. 상쾌한 바람에 풀내음이 실려왔고 아스팔트 틈에서는 새싹들이 단단한 땅을 뚫고 올라오고 있었다. 산책로를 둘러싸고 있는 산은 조금씩 갈색 옷을 벗고 초록색 옷을 입을 채비를 했다. 두꺼운 허리를 자랑하는 아름드리 소나무에 눈이 갔다. 잎이 떨어지고 다시 새 잎이 돋는 수많은 시간 동안 잘록한 허리는 점점 아름드리 만해졌을 것이다. 사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지고, 강산이 여러 차례 옷을 갈아입듯 삶은 많은 변화를 겪는다. 자연스럽고 경이롭기까지 한 시간의 흐름을 충족되지 않는 외면에 집착하느냐고 내면에 들어찬 것을 보지 못했다. 나이 들어감은 비바람에 쉽게 쓰러지지 않는 굵은 허리를 갖는 것, 어린 나무들의 방패가 되어주는 것 같다. 


영국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는 “인생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어느 시점에 서있든 삶을 다할 때까지 연주는 계속될 것이다. 완벽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더라도 인생은 가능성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나의 허리의 두께는 어떤지, 얼마나 더 굵어질 수 있을지 가늠해본다. 아직도 가끔 나이를 생각하면 이불 킥을 하지만 곧, 쌓아온 시간만큼 두터워진 아름드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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