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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수라 Jan 19. 2023

눈의 마음

‘나의 시간에 동반하는 당신의 시간이 있다. 우리는 같은 영원 속에 산다.’

                                                                                                                            『시와 산책』 중에서


부엌 창 너머 산책로에 쌓인 눈을 보며 어, 오늘도 눈이 왔네 하다가도, 맞다 아직 녹지 않았지 하며 빙그레 웃는다. 쌓인 눈을 밟고 산책하러 나가면  눈부신 바닥에 햇볕이 반사돼 가라앉은 기분을 생동감 넘치게 바꾸어준다. 주위는 앙상한 나무들로 가득하지만, 눈꽃의 힘을 빌려서 인지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나쁜 습관이지만 남편은 커피에 담배 피우기를 좋아한다. 그 고약한 것을 끊으면 좋겠지만 힘들다는 금연을 본인의 의지가 없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일이기에 지나가듯 소심한 잔소리로 대처한다. 독이 됨을 알면서도 맛있는 커피와 함께하는 아침 담배에 행복을 느낀다는 말이 이해가 가기는 한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놔도 좋지 않은 습관임을 부인하지는 못하지만 따뜻하게 옷을 갖추어 입고 가방에 텀블러를 넣어서 집을 나섰다. 가끔 외식을 하듯 집에서 내린 커피 말고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사 마시는 커피를 이벤트라 여기는 남편을 위한 나만의 깜짝 선물이다. 주전자를 들고 시골 또랑 길을 걸어 막걸리를 받아오듯 텀블러를 들고 사부작사부작 눈을 밟으며 커피를 받으러 가는 길은 상쾌하다.


같이 산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는 거 이상이다. 원하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영향을 받게 되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를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처가 되는 경우는 피할 수 없다. 말과 행동이 아니더라도 눈빛과 제스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의 영향인 경우도 많다. 남편은 이런 상황을 화초에 물과 관심을 주는 행동을 잠시 잊는 경우라고 표현한다. 서로에 대한 스위치가 완전히 꺼져있는 상태인데 그럴 때 미묘하게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 집에는 화초라고 하기에는 엉성한 수경식물이 4가지 있다. 기껏 해봐야 손바닥 크기도 되지 않는 아이들의 물을 갈아주고 필요할 때마다 베란다에 내놔 햇볕을 쬐어주고 손가락 마디만 한 입들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주면서 정성을 기울인다. 공기 정화에 좋고 전자파도 차단하고 어디다 내놔도 멋스러운 화초들을 키우고 싶었으나 능력 밖의 일이었다. 선물로 받기도 하고, 이뻐서 직접 산 나무들을 죽이고 난 후에는 다시는 식물을 집안에 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식물의 죽음도 상처가 된다. 그럴 때마다 화초들을 묻어줘야 하나 생각했다. 


누구나 잘 키운다는 수경식물을 키우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데 사람과 산다는 건 얼마나 손과 마음이 가는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을 잠재우고 알알이 소리를 가두어 내리는, 정적을 만드는 눈을 보며 닮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고지순하게 끊임없이 덮고 덮어 푸근하게 해주는 눈의 마음이 나의 가슴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고 눈이 부신 발판으로 그의 삶을 비춰주는 눈의 마음이면 얼마나 좋을까. 눈이 되고 싶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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