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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수라 Mar 07. 2023

턴테이블

과거의 추억은 현재가 된다

30년 전 세 식구가 옹기종기 잠을 자던 단칸방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들어왔다. 나무와 알루미늄의 조화가 고급스러우며 당시로선 획기적인 여러 기능이 탑재되어 있고 턴테이블을 갖춘 전축이다. 보기에도 값비싼 전기제품이 티브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빠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전공하지 않았어도 드럼, 기타 등을 연주했고, 특히 기타로는 수입을 만들어내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당시 일을 하면서도 음악을 놓지 않았던 아빠 덕분에 집안에는 악보와 악기, 음악을 담은 갖가지 물건들이 가득했다. 어린 나에게는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이상한 나라의 진입 문 같았다. 감미로우면서도 웅장한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자주 상상 속을 둥둥 떠다녔다.


얼마 전 남편은 턴테이블과 스피커를 샀다. 예전과 다르게 크기가 작으면서도 기능은 많아졌고 외형은 더 세련되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어떤 투과 물질도 없이 직접 악기 소리가 전해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건강이 악화한 이후로 아빠는 음악을 가까이하지 않으셨다. 몸이 힘들어짐과 동시에 다른 것에는 즐거움을 못 느끼셨는데 엄마는 차마 많은 악보와 음반들을 버릴 수 없어 이사할 때마다 귀하게 다뤘다.


아빠가 직접 물려준 레코드판을 들으며 남편은 장인어른의 음악 취향을 칭송하기도 하고 잘 보관해 둔 장모의 꼼꼼함에 감사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표지가 조금 바랜 거 외에는 어떤 흠집도 없었다.


부쩍 삶이 흐르고 반복된다는 것을 느낀다. 유행이 돌고 돌아 새롭게 창조되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 주목받기도 한다. 어릴 적 즐겨 들었던 노래가 젊은 친구들의 느낌으로 되살아나는가 하면 추억의 간식 쫀드기와 달고나 등이 각종 매체를 통해 유명해져 사랑받는다. 세대를 아우르는 연대감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취미와 삶의 모습에서 보이는듯하다. 그 세대 아빠가 즐겨 듣던 음악을 사위가 듣고 엄마들이 오순도순 모여 뜨던 뜨개질이 취미가 된다.


요즘 남편은 레코드판을 모으고 밤에 조용히 음악 듣는 재미에 푹 빠졌다. 문 사이를 빼꼼 열어두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턴테이블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들어온다. 어릴 적 듣던 음악들이 순차적으로 들리다 얕은 수면으로 빠져들 때면 단칸방이 그려진다. 작지만 아늑하고 음악과 사랑이 넘치던 그곳.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고 아껴주었던 그 시절이 꿈속을 메운다. 묵은 레코드판이 과거의 가족과 현재의 가족을 잇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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