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맛 가족
볼일을 보고 오니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배가 몹시 고팠다. 오랜만에 평일 집에 있는 남편인데 아무거나 점심으로 내놓기 싫어 미리 양념해둔 불고기를 굽고 채소를 씻고 겉절이를 무쳤다. 된장국을 같이 차려내니 급하게 한 것치고는 꽤 괜찮았다. 장들이 서로 잡아먹을 정도로 배가 고팠기에 상추에 불고기와 고추를 얹고 크게 쌈을 싸서 입안에 꾹꾹 밀어 넣었다. 저작 능력을 발휘하며 부지런히 씹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바빠?”
“아니 밥 먹어. 엄마 왜?”
“너 좋아하는 총각김치랑 파김치 담았는데 올 때 그릇가지고 오라고. 아무 때나?”
주말에는 엄마 집에서 언니랑 형부가 김장하기로 되어있었다. 3박스나 시켰다는데 김치를 안 좋아하는 나는 필요 없고 엄마도 두 식구니 드셔봐야 얼마나 드시겠냐 싶은데 언니는 매년 많은 양의 절임 배추를 주문했다. 그뿐만 아니라 총각김치, 파김치, 갓김치, 석박지까지 필요한 종류가 많아 김치만 먹고 사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무섭게 담아갔다. 매년 한 그릇 맛이 나 본다는 핑계로 엄마와 언니의 김장을 도왔지만, 이번에는 안 간다고 선언해둔 상태다.
작년 이맘때 엄마는 생수병을 들다가 디스크가 터져 병원에 입원했다. 상태가 좋지 않아 응급으로 수술이 진행되었고 코로나가 무섭게 번지고 있어 보호자가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홀로 수술받았고 어느 정도 거동이 될 때까지 병실에서 혼자 있었다. 대기실에서는 만날 수 있었으나 그마저도 시간이 정해져 있어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 응급환자가 우선인 종합병원이라 불편한 상태에서 퇴원하게 되었다. 집에는 아빠뿐이라 엄마가 편히 쉴 수 없었고 혼자서 살림을 꾸려갈 수 없는 상태라 남편과 의논 끝에 2주 만이라도 재활을 돕기로 했다. 도와주는 동안 내가 힘든 건 고사하고 환자도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진통제는 잘 듣지 않았고 씻고 먹고 입는 것들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온전하게 좋아진 허리도 아니면서 이기지도 못 하는 김장을 하겠다고 하고, 도와 달라는 말은 못 하고 애매한 이야기만 꺼내놓다 전화를 끊는 엄마에게 화나고 속상했다. 무슨 생각으로 많은 배추를 주문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언니한테는 더 화가 났다.
며칠이 지나고 당장 김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 또한 허리가 좋지 않았다. 싱크대 앞에만 서도 오른쪽 다리가 저리고 어깨가 천근만근인데도, 주사 맞고 도수 치료받는 과정들이 싫어 참아왔었다. 시계만 쳐다보다 안 되겠다 싶어 진료 시간 끝나기 1시간 전 부랴부랴 병원에 갔다. 일단은 물리치료 받고 약을 먹으며 경과를 보자는 원장님의 말을 끊고 내일 하루만 안 아프게 해달라고 말했다. 주사도 좋고 충격파 치료도 좋다면서 칭얼대는 어린애처럼 떼를 썼다.
가족은 눈 감는다고 감아지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 며칠 동안 외면하려 노력했다. 이번에 고생하면 언니도 엄마도 김장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마음은 외부로 인해서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다치게 할 수 있음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작년에 입었던 빨간 트레이닝복을 가방에 담고 혹시 몰라 허리 복대도 담았다. 김치통도 가져오라고 했으니 챙기는데 남편이 뒤에서 결국에는 갈 거면서 심통은 왜 부렸냐고 놀려댔다. 약 오르고 성이 날 대로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발에 박힌 가시가 뽑힌 것처럼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