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휴일이 아니지만 예전에는 7월 17일은 헌법을 제정, 공포한 날로 국경일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그에 맞물려 하루 전후로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는데, 시작일에 따라 생일파티 출석률이 달라졌다. 그래서 매년 방학이 17일 이후에 시작되길 기도했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생일이 같은 라이벌까지 등장하여 신경전을 벌였다. 초대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생일파티 장소와 음식은 무엇으로 정할지 끊임없이 부모님과 의논하고 친구들의 의견을 받았다. 아무튼 그해 생일은 누가 이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장마 시작으로 우울했던 기억이다.
10대에는 별 기억이 안 나고 20대에는 생일 때마다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음주·가무를 즐겼다.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는 어느덧 낙관과 비관이 섞인 미래에 대한 흥분감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날이 새도록 놀다가 기어서 집에 들어갔다. 그러다 조금씩 생일이라는 의미가 축소되고 모임이 줄어들었다. 달콤한 일만 있을 것이라 믿었던 사회생활과 아내, 남편, 아빠, 엄마 등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많아지면서 잊혀 가는 듯만 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초기에는 고립되어 간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만남은 개운치 않았고 살얼음을 걷는 듯 조심스러웠다. 마스크 밖으로 눈만 빼꼼 내민 상태에서는 서로의 감정과 에너지를 다 느낄 수 없었다. 점차 익숙해지는 찰나 줌을 통해 다시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나와 글을 교환하는 사람의 얼굴,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 멀리 있어 자주 볼 수 없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열렸다. 화면 속으로 보는데도 그 얼굴들이 얼마나 반갑고 애틋하든지. 그렇게 한 발씩 관계를 만들어 갔고 새로운 형태의 인간관계가 만들어졌다.
생일 축하의 말을 건네고 선물을 해야 하는 사이는 어느 정도의 사이인지 애매할 때가 많다. 일부러 날짜를 묻지 않더라도 카톡을 주고받는 사이라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생일을 알게 된다. 모든 인간관계가 복잡하듯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관계 또한 만만치가 않다. 가끔은 아 축하라도 해줄 걸 하는 후회가 들 때도, 선물을 해야 했나 하는 질문이 남을 때도 있다. 모임에서 몇 번 안 본 사이인데, 혹은 다정한 문자 한번 보낸 적이 없는데, 인터넷에 올라오는 질문 중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닌데 축의금 얼마 해야 해요?’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된다.
같이 공부하는 학우들에게 축하 인사와 커피 쿠폰, 이모티 선물이 도착하고, 자주 가는 미용실 원장님이 생일 케이크를 보내주고, 운동을 함께하는 멤버는 생일파티를 자청했다. 옆집 어머님은 부침개를 해다 주시고, 몇 년 만에 전화가 온 중학교 동창은 통 크게 선물을 보냈다. 모두 친한 친구라 하기에는 거리가 있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하다. 관계를 규정하는 것의 기준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분명 소중하고 귀한 마음을 썼기에 오래오래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다.
생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가깝지 않은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축하한다는 한마디 건넨 사람들은 마음을 쓴 것이고, 시간과 에너지를 기울였다는 뜻이기에 특별하다. 방구석 모니터에 앉아 가장 행복한 생일을 보냈다.
나는 오늘도 작은 세상에서 여전히 배우고 어떤 사람이 될지 꿈꾸며 삶의 여백을 채워나간다. 지체되더라도 시간을 들이고 관심을 기울이는 자세로 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