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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호 Oct 12. 2023

아니? 할 수 있다!

2022 <빙그레이스토리 2> 기록자 후기

내가 예술을 시작한 계기는, 늙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추상적인 것이였고, 분명한 롤모델이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특정한 롤모델을 찾는 일 또한 어려웠다. 막막한 만큼 늙음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 무력해지는 것이었다. 지하철만 타도 마주치게 되는 고함과 역정, 소란은 대다수 노인의 것이었다. 일상과 인터넷에서 마주치게 되는 노인의 이미지는 더욱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기민하지 않게 늙게 되는 것일까? 라는 두려움, 그리고 분노 뒤에 느껴지는 어떤 외로움을 껴안고 살게 되는 것인지 두려웠다. 프로젝트 전에, 직접 참여자 모객을 하면서 설문을 받을 때도 ‘노인이란 호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의 질문에 대다수가 ‘호칭이 싫다, 다르게 불러줬으면 좋겠다.’ ‘시니어, 선생님이란 말로 대체해줬으면 좋겠다.’ 였다. 아무래도 이 ‘노인’이라는 호칭은 세대를 통틀어 부정적인 호칭이다.


<내 손안의 손그림>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면서 다양한 나이의 참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60대부터 90대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데 익숙한 분부터 스마트폰을 구입한지 2주가 되는 분까지. 워낙 다양한 이해도가 분포되어 있다 보니까 어떤 분은 커리큘럼대로 진행하면 되지만 어떤 분은 자판을 치는 것 조차 어려웠다. 처음에는 강사와 참여자 모두 고군분투했다. 모두 머리가 아프고, 이게 진행이 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할 수 있다!’ 라고 외치고, 격려를 하고, 포기하지 않으니까 정말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자판을 치다가 ‘난 못해!’ 라고 하던 분이 빠르게 자판을 입력할 수 있게 되었다. 몇 주 뒤에 만나서 다 잊어버리신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옆에서 조금만 알려드리니 금방 하실 수 있었다. 정말로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 스마트폰이라는 기기가 시니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자 크기만 크고, 굵게 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스마트폰의 터치는 누르기만 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반응속도가 느려지면 화면을 이미 누르고 있어서 터치가 작동되지 않고, 커서가 어디에 있는지 식별하기가 어려워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커서의 크기와 색깔, 굵기 또한 사용자에 맞게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화면을 누르고 있다면 화면을 누르고 있다고 안내문이 떠야한다. 시니어를 위한 인터페이스는 더욱 간결화 되게 조작되어야 한다. 화면 캡쳐 또한 버튼을 동시에 눌러야 하는데, 대부분의 참여자가 하지 못했다. 이 스마트폰의 ‘간결한’ 조작법이란 체득된 감각이 쌓여서 쉬워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아예 이 체득된 감각이 없는 사용자에겐 너무나 어렵고 불친절하다. 


<내 손안의 극장> 워크숍은 손그림 워크숍에 비해 참여자의 나이가 60대-70대였고, 스마트폰 사용이 아주 익숙하고 평소에도 활용하는데 문제가 없는 참여자가 많았다. 그러나 영상 촬영이다 보니 스마트폰의 저장 용량과 카메라가 최신 스마트폰 일수록 좋았고, 알게 모르게 박탈감이 들수 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여의사는 확실하셨지만, 저장용량 때문에 촬영이 되지 않아 나오지 않으 신 분도 계셨다. 워크숍에서 계속 강조했던 사항은 ‘누군가의 부모, 자식이 아니라 나 자체 로써의 시선’을 담는 것이었다. ‘내가 되어 나의 관심사를 담아보세요’ 였다. 그러나 이것이 제일 어려운 부분이었다. 누군가는 너무나 잘 나의 관심사를 담을 줄 알지만, 누군가는 계속 자식과 함께했던 순간을 담고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었다. 


두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시니어들의 스마트폰 사용은 본인이 원해서 쓰지 않는게 아니라 쓸 수 없어서 쓰지 않았던 것이라는 명확한 사실이다. 자식에게 문자를 보낼 줄 알게 되고 전화를 하면 일하고 있을까 봐 눈치가 보여 맘껏 전화도 못 걸었는데 이제 좋다고 하실 때, 문자로 이것저것 써 보내니까 손녀에게 ‘할머니 문자 연습하고 계신다면서요?’ 하고 문자가 오는 걸 보고 활짝 웃으실 때, 사진을 찍어서 문자로 전송하고 받는 걸 알게 되어 좋다고 계속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시는 것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어플리케이션의 대다수는 이제 광고가 뜨는데 이 광고의 문구는 너무나 예측이 불가능하고, 작고, 닫는 버튼도 시간이 지나서 나오거나, 뜨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돈이 나갈까봐 무서워서 사용을 하지 않으시는 것도 있었다. 


이모저모도모소는 단순한 스마트폰 워크숍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활용한 문화예술교육을 표방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참여자들의 합의점을 찾는 것 또한 어려웠다. ‘나는 여기까지만 알면 돼,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해’ 하는 것이 많았다. 결국에 손그림 워크숍은 분반을 해서 진행하게 되었지만, 저 분들이 참여하셔도 충분히 할 수 있고, 멋진 작품을 보여주셨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참여자는 90대이고 스마트폰을 산 지 2주밖에 되지 않으셨었다. 그렇지만 한번도 포기하지 않으셨고, 누구보다 습득력이 빨랐다. 다른 분에게 설명을 해드리고 있으면 옆에 꼭 붙어서 본인도 계속 따라하셨다. 다른 80대 참여자분은 워크숍이 종료되고 찾아갔을 때 본인이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하지 못했는데, 그냥 전화하면 되지 왜 문자를 하려고 하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냥 하나만 알려주면 계속 할 수 있는데 알려주기엔 귀찮음이 결국에는 스마트폰의 활용도 자체를 막는다. 그리고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지점도 있었는데, 집에 와이파이 설치가 되어 있지 않아서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면 하지 못하는 분들도 계셨다. 인터넷 사용이 너무나 당연시되고 거기에 맞춰서 모든게 바뀌었는데 누구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다음에 또 참여자를 모시게 된다면, 스마트폰으로 배우고자 하는 지점을 확실하게 한 뒤에 그 것에 대해 먼저 가르쳐드리고, 성취감을 가지고 다음으로 진행할 수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다. 절대 무리가 아니란 것에 대해서. 본인이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길은 누구보다 아름답고, 말 하나하나에 큰 울림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어떤 그림을 그리거나 영상을 찍어도 감동적이란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저 본인의 일상을 보낼 때 다양한 방법으로 보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리고 이건 아주 많은 시간과 반복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몇십명의 참여자에 3명의 강사가 1:1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는 것에 큰 무리가 있었다. 또한 알려드린 방법을 본인이 이해한대로 다시 작성하는 자신만의 매뉴얼을 만들고, 계속해서 복습하는 것도 중요하다.


워크숍을 하며 다양한 나이대의 참여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 경험은 친구들이 SNS에 노인관련된 글을 올렸을 때 ‘내가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더 이상 그들이 올린 ‘노인’이라는 글에 모든 노인이 포함되지 않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오히려 알려주고 싶었다. 그건 섣부른 판단이라는 것이라고 말이다. 오히려 ‘노인’이라는 호칭 자체가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과 한계라고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할 수 없고, 무기력하다고. 나는 이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아니? 할 수 있다!’ 라고. 늙음은 누구에게나 오고, 시간은 공정하지만 모든 것은 태도에 달렸다. 그리고 그 태도를 지키는 것은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배우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질문 할 수 있고 답변을 들으며 배울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시니어’와 ‘어르신’으로 노인을 후려치거나 하대하지 않는 다면 말이다.



<내 손안의 스케치북> 손그림+손글씨 워크샵
<내 손안의 극장> 사진+영상 워크샵


«빙그레이스토리2»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한 <노老는 창작자- 2022 노인 비대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개발·운영 지원사업>의 선정 사업 중 하나입니다. 스마트폰 만능시대에 디지털 소외 현상을 겪고 있는 망 밖의 어르신들을 소셜 네트워크 망 안으로 초대해 삶의 기록자이자 소통가로서 그 자리를 찾아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내 손안의 스케치북> 손그림+손글씨 워크샵은 스마트폰 앱의 다양한 툴과 기능을 활용한 아날로그 방식의 디지털 표현으로 어르신들의 소셜 네트워크 활용의 흥미를 더하고자 했고, <내 손안의 극장> 사진+영상 워크샵은 스마트폰의 사진 툴과 영상 편집용 앱을 익혀 부모, 조부모의 역할 외 나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주체적 기록과 표현에 동기를 부여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이모저모 도모소는 일상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을 삶의 기록의 도구로 활용해 본 어르신 대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빙그레이스토리2»를 기획하면서 4인의 시각예술가(고창선, 신동효, 이신아, 허호)와 프로젝트의 사전 연구와 개발, 실행의 전 과정을 함께 했고, 그 과정에서 관찰한 어르신 디지털 활용 환경과 장벽의 구체적 면모들, 워크샵 실행 과정에서 부딪쳤던 난관과 대응 등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하고 고민했던 바를 공유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p/CozE2x0JR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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