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하게 아끼며 손세차를 하던 나의 차를 험악스럽게 운전하던 대리기사와의 아찔한 만남으로 기함했으므로 술약속이 있을 때는 차를 가져가지 않거나, 약속장소에 두고 온 뒤 다음 날 가지러 간다.
택시는 중학생 시절 새벽 영어회화반에 다니던 차에 늦잠을 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게 되었는데, 그 택시기사는 첫 손님을 여자로 태우면 종일 재수가 없다는 조선시대 가마꾼같은 발언으로 나에게 택시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런 고로 술약속은 집 근처에서 잡거나 버스운행시간 내에 끝내고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약속들로 채워서 대리기사나 택시와 엮이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전세금반환사건과 관련하여 큰돈을 빌렸던 은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 집에서 꽤 먼 동네에 약속을 잡았기 때문에 택시로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
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취해도 말짱하게 귀가한다.
술을 마시다가 결국 술에게 먹힌 자가 경험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제3자인 듯 3자 아닌 3자로서 최대치로 경험해서?
택시 승객은 셋.
중간 경유지와 종착지를 고하며 탑승했고 가장 먼저 은인을 내려드리고 가는 데 현금 2만 원을 내시며 더 나오면 마지막 내리는 사람에게 받으시라고 말씀하시곤 하차하셨다.
두 번째 경유지에서 일행이 내리고 집에 도착하니 미터기에 찍힌 요금이 15000원이다.
5천 원, 팁으로 내기엔 기본요금 4300원보다 많으니 과한데 싶어 "잔돈은..." 하고 말을 꺼내자 버럭 화를 낸다.
"이게 무슨 버스요? 셋이나 타서 그 바쁜 시간에 여기저기 돌게 만들어놓고는? 빨리 내리세요"
아니 아저씨... 말씀을 그렇게 하시면 저도 화가 나죠.
"제가 택시를 타고 이런 일이 있어도 잔돈을 내주셨고 그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처음에 탑승할 때부터 경유지를 밝혔고 첫 손님이 내리시기 전에 선요금을 내신 거잖아요"라고 대꾸하자 승객이 내릴 때마다 미터기를 끊었어야는데 이렇게 왔으면 그냥 가라며 성을 낸다.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도 못 내리죠"라고 팔짱을 끼자 내리라고 화를 내고 애원을 하던 택시기사가 "이런 XX! X 같아서 못해먹겠네!!"라고 쌍욕을 하며 분을 못 이기고는 차에서 내려 운전석 문짝을 쾅 닫는다.
어이가 없어 따라 내린 내 앞을 허리에 손을 얹고 씩씩대며 수차례 왔다 갔다 하더니 이내 차를 타고 떠난다.
정말이지 기가 차는 건 나다.
일단 차 번호를 외워 메모장에 저장하고 집으로 올라와서는 택시 부당요금을 검색한다.
국민신문고에 탑승시간 탑승위치 하차시간 하차위치 및 상황 등을 정리해서 올리면 시청 담당자가 처리하게 된다는 글을 읽고 메모지에 관련 내용을 정리해 국민신문고 어플을 깔고 등록을 하고 나서야 겨우 씻고 잠을 청했다.
연휴와 맞물려서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제 오후, 같은 지역번호의 일반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마음지기님 맞으세요?"
"네 어디세요?"
"여기 OO시청 교통안전과 XXX입니다. 얼마 전에 택시 부당요금으로 국민신문고 올리셨죠?"
"그런데요"
"oo에서 (머뭇) oo로 가시는 거 xx에서 (서류 뒤적) 00시에 탑승하신..."
"혹시 안 읽어보셨어요? 제가 거기 전부 기재해뒀는데 왜 다시 물어보시죠?"
"아, 제가 내용을 확인하고 알려드리려고요~ 문의하신 내용은 택시 부당요금이 맞고 저희가 2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할 예정입니다 "
"아.. 과태료 처분이요?"
"네, 2년에 3번 이상 적발되면 택시면허가 취소되거든요~ 같은 내용으로 신문고에도 답변이 달릴 거예요 미리 전화로 알려드립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일행이 내릴 때마다 미터기를 끊는 것도 부당요금에 포함된다
이게 웬 연타석 홈런이란 말인가!
관련 규정은 찾아볼 틈도 없이 낸 민원이 거액의 과태료 사안이었다니... 택시 문짝을 부서져라 닫으며 쌍욕을 하던 택시기사를 보며 느꼈던 황당함과 모욕감과 어처구니없던 내게 얼음 동동 띄운 사이다를 한 사발 들이마시고 짜릿함에 눈물 찔끔 나는 속 시원함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이 세상에는 정말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분들이 더 많다는 걸 분명히 안다.
하지만 경찰이라는 업무특성상 그런 사람보다 아닌 이들을 더 많이 만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참 신앙심이 깊었던 때 나쁜 사람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며 과연 인과응보란 현실에 있는 것인가에 대해 깊은 회의가 들어 우울해하던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중학교 선생님이셨던 나이 지긋하신 형제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에스텔, 인과응보는 분명히 있어. 그게 말하자면 이런 거야. 선조가 쌓은 복덕이 후대에 발현되는 거. 또는 선대가 지은 업보를 후대가 책임지는 거. 정말 나쁜 사람인데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 그럼 그 선대의 복덕이 그 사람한테 발현된 거라고 보면 돼. 착한 사람이 잘 안 풀리는 것도 마찬가지야. 결국 인생은 돌고 도니까. 내가 지은 복이나 죄가 꼭 나에게 귀속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나도 그런 생각에 괴로워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
그 말씀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고 그 후로는 어떤 일로든 다른 이에게 내 감정에 휘둘려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 밟고 함부로 들어오는 이들을 방관하지도 않는다.
옳고 그름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산다.
한 때 이런 내 불같은 성질이 나를 좀먹는다고 생각했으나 그 날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받아들여 인정하기로 했으니 남은 인생도 나로서 마저 잘 살아보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