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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기 Jan 08. 2024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

좋아도 내가 좋아하고 미워도 내가 미워한다

1960년대 유럽을 휩쓸었던 학생운동의 정신적 지주이자,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 나치독일에 저항하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순교한 그가 감옥에서 쓴 시가 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마치 자기 성에서 나오는 영주처럼, 태연하고 명랑하고 확신에 차 있다고 남들은 늘 말하지만...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간수들과 얘기하는 나의 모습이, 마치 내가 그들의 윗사람인 것처럼 여유 있고 자유스럽고 다정하게 보인다고 남들은 늘 말하는데....(중략)


나는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사람일까?

그렇지 않으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나에게 지나지 않는 것일까? 새장 속의 새와 같이 불안에 떨며 그리워하다가 병이 들고,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에 몸부림치며,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몸을 떤다.(중략)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내가 어떤 사람이건, 아! 하느님, 당신은 저를 아시옵니다. 저는 당신의 것이옵니다.


 감동적인 자기 고백이다. 남들의 눈에 보이는 그는 영주처럼 용감하고 태연하지만, 내면에서 그는 어린 새처럼 불안에 떨고 있다. '남들이 보는 나'와 '내 속에서 내가 만나고 있는 나'중에 어떤 '나'가 진정한 '나'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인생관과 가치관이 선명한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주체성이 확실한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정체성이 확립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판단도 합리적으로 내리고 취사 선택도 명쾌하다. 우물쭈물 우유부단하지 않다. 할 일과 안 할 일을 구별하고 내 일과 남의 일이 선명하게 구별된다. 남의 판단에 의존하거나 남을 졸졸 따라다니지도 않는다. 남의 눈치 볼 필요도 없다. 판단과 선택의 주체가 선명하다. 자기가 마음의 주인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정신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우리의 휴는 자기가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했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그의 마음의 주인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사장이 그의 마음의 주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버림받을까 봐 노심초사했다. 휴가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유년기의 체험 때문에 생긴 '마음속의 아이'였다. 그 아이가 휴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깨닫고 휴는 해방되었고, 마음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 남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큰소리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유년기에 상처받은 내 마음속의 아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해서도 안 된다. 이 정체성이 흔들릴 때 정신적 위기가  찾아온다. 좋든 싫든 어른인 내가 판단하고 선택하는 주인 노릇을 해야 한다. 미워도 내가 미워하고 좋아도 내가 좋아한다.  하느님을 믿어도 내가 믿는다. 남의 눈치를 보며 남이 미워하면 따라 미워하고 남이 박수치면 나도 따라  박수치는 인간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서 정신적으로 매우 허약해진다.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인생은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산 만큼만 내 인생이다. 남들의 욕구와 기대, 판단에 맞춰 산 인생은 아주 모범적인 인생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유사 자기(false self)'의 인생을 산 것이어서 내면의 행복을 느끼기 힘들다. 허무한 인생이 되기 쉬운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두려워 혹은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까 두려워 자기 생각과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산다면 그것은 한 번뿐인 내 인생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어린 시절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부모가 나를 야단치고 싫어하던 그 느낌이 너무 외롭고 힘들었던 것이다. 부모의 사랑을 잃을까 봐 두려워했던 내 안의 어린아이가 나를 잡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더라도 자신만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해 보라.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잘난 체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다만 진솔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 진실이 통하게 된다. 당신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은 그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혹 그것 때문에 누군가의 사랑과 인정을 잃었다면 그 사랑과 인정은 어쩌면 당신의 인생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던 중,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이라며 이무석 교수의 '30년 만의 휴식'을 강력추천 한 글을 읽고 최근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었다.

누가 읽더라도 너무나 쉽게 읽히도록 잘 쓰인 글인 데다가 내용이 너무 좋아 감탄하며 읽다가 특히 나에게 꼭 필요한 부분인 듯싶어 발췌해 옮겨보았다.


전세금 미반환사건 이후로도 딸아이학예발표회 사회자, 자사중 지원 및 면접까지의 뒷바라지탈락의 고배를 마신 딸을 위로하기 위한 2박 3일 캠핑(텐트를 치다가 다친 손가락에 봉와직염이 오는 바람에 한 달여간 고생을 톡톡히 했다) 후 곧바로 이어진 아버지 칠순기념 여행(2박 3일 일정으로 부산 불꽃놀이와 겹치는 일정으로 엘시티 레지던스의 예약과 칠순잔치 준비 그리고 해운대 해변열차와 캡슐열차 예약 역시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준비와 딸 중학교 진학(이사한 집에서의 중학교 진학이라 관할 교육청에 원서를 받으러 다녀오고 다시 제출하러 다녀오는 수고로움은 덤이었다) 그리고 11월 20일 코로나 확진까지 숨 돌릴 틈 없는 나날이었다.

그리고 12월엔 제주도에 다녀왔다. 딸 친구가 6학년이 되며 제주도로 전학을 갔는데 그 친구를 보러 다른 친구까지 같이 데리고 차를 가지고 배를 타고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중학교에 갈 친구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는 게 아쉬워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용기 내봤다(내 아이가 아닌 아이까지 책임을 지고 데리고 돌아다니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고, 세상의 모든 다둥이 부모와 선생님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지난주 딸은 초교 졸업을 했다.

그러던 중에 겪은 가장 마음이 힘들었던 사건은 단연코 직장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사연인즉슨,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인사사건의 핵심인물이 되었던 것인데..

23년 12월에 정년인 I 행정관님의 자리가 공석이 되는데 몇 개월 전, 그 자리에 가고 싶으냐고 처음 물어봤던 것은 내 직속 과장인 L이었다.

L과장은 그 자리에 가고 싶어 안달 난 여직원이 몇 명인 줄 아냐며 좋은 자리를 찾아가라고 나에게 권했다.

그 업무는 전에 해봐서 잘 아는 업무였지만 경찰관 고유의 업무가 아니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고 그 자리를 탐내던 K 행정관이 서장을 찾아가 그 자리에 발령을 내달라고 청한다.

12월 1일, W과장에게서 전화가 온다.

W과장은 현재 경무과장이고 인사 발령 전 내가 서무로 모셨던 전임과장으로 내년 상반기 정년퇴직 예정이다.

나에게 내년 인사 전까지 I 행정관 자리를 메꿔달라는 땜빵을 요청했다.

예산업무와 관련된 자리다 보니 공석으로 둘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거절하려 했으나 부탁하는 과장님을 외면할 수 없어 알겠다고 금방 후회할 대답을 했다.

경리계 유경험자로서 예산 0원 맞추기의 애달픔을 왜 모르겠는가.

직제상 I 행정관은 나와 같은 지구대 소속이었고 12월까지 시간선택제근무 중인 내가 이듬해 2월 정기인사 전까지 그 자리를 메꾸기 가장 좋은 조건이라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다는 W과장의 논리는 합리적이었다.

K 행정관은 그 자리가 너무 가고 싶어 현재 업무와 I의 업무까지 하겠다고 나서지만 W과장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라고 선을 긋고 대안으로 나를 임시로 앉히는 방법을 낸 것이다.

나는 I에게 가서 업무 인수인계를 받다가 며칠 후 W과장에게 인수인계를 받지 말라는 전화를 받는다.

미 1(서장)이 K가 원하는 방식으로 발령 내라고 했다는 것이 이유였고 나는 알겠다고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고 괜히 미안해하지 마시라며 전화를 끊었다.


<여자경찰관으로 산다는 것>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를 타인에게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이 조직의 생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건 참 쉽지 않다.

일단, 여경은 한몫을 하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경찰관의 기본값이 1이라면 여자경찰관의 기본값은 0.5(도 안될 것이다)

그렇다 보니 지구대 파출소 순찰팀에서 근무하면 무능하게 생각한다.

하루빨리 내근 중에서도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 유능하다고 생각한다.

자, 그러면 내근은 여직원들만 가는가? 그것도 아니다.

경찰관이지만 전혀 경찰관 같지 않은 남자직원들은 내근만 선호한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하기 때문에 점조직처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직위공모라는 허울 좋은 제도가 있지만, 내정자를 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내가 배운 것들은 이러하다.

해서, 나는 이 회사에서 하고 싶은 업무가 없다.

(수사는 아직 해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라 기회가 된다면 한번 해 볼 용의가 있다. 더 늦기 전에!)


얘기가 딴 길로 샜나 싶지만 마음고생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내가 W과장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친한 선배에게 털어놨을 때 그 선배는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근데 왜 W 과장은 자기 맘대로 한대?"라고 했다.

당황한 나는 "글쎄요 저는 잘..."이라고 머뭇거렸고 "인사권자는 서장인데 좀 웃긴다"라고 덧붙였다.

평소 큰언니처럼 보듬어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던 선배에게서 차가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아... 인사랑 맞물리면 진심이 드러나는구나.

인수인계를 받는 그 며칠 경찰서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 받았던 시선도 그와 비슷한 종류의 것이었다.

특히 K는 내가 그 자리를 땜빵하다가 편해서 눌러앉으면 어쩌냐고 발을 동동 굴렀다는 소식도 들었다.

하아... 그 업무는 내가 오래 해봤던 업무였고 업무의 난이도를 몰라서 안 가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는 데다가 그 자리를 가고 싶은 마음이 0.0001% 도 없는 나에게는 어처구니없는 뉴스였다.

아무리 내가 가고 싶지 않다고 목이 터져라 외쳐도 사람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믿으면 그만이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은 나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내 속을 까뒤집어 보여줄 수 없으니 나도 더 이상 항변하고 싶지 않던 차에 인사가 번복된 건 오히려 잘됐다.

그리고 그 인사의 번복의 중심엔, L과장이 있다.

W과장은 직속과장인 L에게 나의 땜빵 과정에 대한 설명과 함께 미 1에게 보고를 하라고 보냈다.

하지만 미 1은 W과장을 불러 왜 인사권은 서장의 고유권한인데 왜 월권하느냐며 호통친다.

W과장은 직속 과장인 L을 보낸 것 자체가 월권이 아니라는 논리로 설명하고 이 사안을 본인이 들어와서 보고했다면 그것이 월권이라고 해명한다.

이로서 L이 미 1에게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았음이 증명됐다.

아마도 자기가 넌지시 물어봤던 때에는 심드렁하던 내가 친분 있는 W과장과의 친분을 앞세워 그 자리를 가겠다고 나선 것으로 넘겨짚고서 나를 엿 먹임과 자신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모사를 꾸미지 않았나 싶다.


나는 내가 이 회사에 마지못해 버틴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자리를 찾거나 어느 자리에 오래 근무하는 것을 바라본 적이 없다.

또 좋은 자리란 것이 존재하는 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고, 그 좋은 자리를 내가 꼭 가야 하며 그것이 진정 내 자리인가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에 인사 자체에 대해서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 회사의 대부분의 여직원들은 늘 좋은 자리를 찾아 서로 가고 싶어 한다.

그런 경쟁에 끼고 싶지 않은 내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저 나는 빨리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깨달아버렸으니까.


2023년 12월 31일 자로 나의 시간선택제 근무는 해제되었다.

그와 동시에 순찰팀으로 발령 났고, 나는 오늘 두 번째 야간을 뜬 눈으로 새는 중이다.

생체 리듬이 깨지면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나를 위해 출근 전에도 자고 퇴근 후에도 잔다.

주야휴비 4조 2교대 근무이지만 나흘에 하루 꼬박 새우는 날밤은 이미 나를 형편없이 망치고 있다.

나를 좀먹는 생각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좋은 책을 준비하고 좋은 중학생 학부모가 될 준비를 한다.

이번 달부터 경찰공제회 불입금을 400구좌로 늘려 하루빨리 퇴직할 준비도 한다.

그리고 나를 풀어 글을 쓰기로 한다.

내가 나를 검열하지 않고 오롯이 나일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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