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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Mar 06. 2020

삶이 막막할 때 나는 인도로 떠난다

오직 인도 고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평생 일하고 싶은 직장과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가 내 개인의 가치와 잘 맞았다. 그리고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밤낮없이 일하면서 비즈니스를 키우고, 회사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신나고 가치있는 경험이었다.

친구와 동료, 일하는 것과 노는 것 구분 없이 24시간 일하고, 놀았던 시간들

로켓의 속도로 성장하는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그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해야했다. 내가 빨리 성장하지 못하면 회사의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압박감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새로운 업무를 배우는 건 나만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나마 쉬운 편이었는데, 사람과 조직을 관리해야 하는 일이 주 업무가 되자 일이 주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점점 커져갔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출장을 다니고, 하루에 6시간씩 미팅하던 날들

매일 아침 출근길이 설레고 기쁘던 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주말만 기다리며 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걸까 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 괜찮아 보이는 삶일 것이다. 안정된 직장과 성공적인 커리어, 일년에 서너번씩 해외여행을 다니고, 그보다 더 자주 해외 출장을 다니는 삶. 그런데 그 삶을 상상했을때 그 안에 있는 나는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어려운 사실을 받아들일 때였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변하고 회사도 변했다고,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이 곳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동료들과 함께한 마지막 송별회

한 때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래서 내 청춘을 바쳐서 일했던 회사를 퇴사한다는 것은 사랑했던 연인과의 결별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다음에 무얼 할지 계획을 세우고 퇴사하는 것이 커리어적으로 훨씬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은 좀 쉬고 싶은 마음뿐.




인도가 나를 부를 때


퇴사를 하고 첫 몇 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지 않는 삶이 아직은 어색하기만 했다. 퇴사 후 한달정도가 지나자 조금씩 뭐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이 느껴졌다. 친구들을 만날때마다 ‘앞으로 뭐할거야?’ 라는 질문을 들었고 그때마다  ‘나도 모르겠어.’ 라고 대답했다. 지난 몇 십년 동안 늘 어떤 목표를 가지고 달려왔는데, 내가 원했던 목표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그 어떤 것도 목표로 만들고 싶지 않은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익숙한 공간인 서울을 벗어나서 삶에 대한 상상력의 폭을 넓히면 어떤 실마리 같은 것이 잡히지 않을까?

여행은 늘 새로운 영감을 준다. 사진은 2018년에 다녀온 버닝맨(Burning Man). 이 여행도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여행을 떠날 때가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아 떠나는 그런 여행. 그래, 인도에 가자. 태어나서 인도를 두 번 여행했고, 그 때마다 인도는 삶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게끔 나를 인도했다. 그리고 지금 인도가 다시 나를 부르고 있었다.


히피들의 천국이라는 고아(Goa)로 최종 목적지를 정했다. 왜 하필 고아냐고 묻는다면 이번에도 역시 고아가 나를 불렀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고아가 나를 불렀고, 나는 고민없이 고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한다! 고아의 여성 호스트 3인방을 만나다 


고아에서는 세 명의 여자 예술가들이 함께 운영하는 에어비앤비에 머물렀다. 고아 시올림(Siolim)에 위치한 이 숙소는 잉카라(Inchara), 니타(Neeta), 그리고 시니드(Sinead) 이렇게 세 명의 친구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곳이다. 건물의 1층에는 세 명의 공동 작업실이 있고, 2층에는 이들이 직접 디자인한 에어비앤비가 있는 구조였다.


세 명의 친구들은 도시에서 다니던 큰 회사를 때려치고 자신들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기위해 고아로 모여, 그들만의 방법으로 여러가지 삶의 실험을 해보고 있었다. 그들의 특기인 창의성과 예술성을 살려서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예술작업을 스스로 펀딩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여성 인권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인도에서 이렇게 주체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세 명의 여성 아티스트들이 운영하고 있는 에어비앤비라니! 이런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예약이지- 이렇게 나의 고아여행은 시작되었다.

이렇게 통창이 있어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일어날 수 있다.

숙소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니 꼭 인도에서 유럽의 어느 가정집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주방과 거실이 있어서 매일 아침 차를 끓여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고, 침실에는 흔들의자가 있어서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의자에 앉아 멍 때렸다. 무엇보다 예술을 하고 있는 호스트들의 취향과 감각이 듬뿍 담긴 집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집 구석구석 재미있는 디자인의 장식들이 많았는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을 위트있게 사용해 이 집만이 가지고 있는 색깔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호스트의 감각이 느껴지던, 재미있는 고아 에어비앤비의 인테리어

체크인 다음날 호스트들의 작업실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듣고보니 이곳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에어비앤비 게스트들은 1층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호스트들과 함께 여러가지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었고, 원한다면 자신의 작업실처럼 사용할 수도 있었다. 이 곳에서 일하거나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모두 동네 주민들이라는 점도 재미있었다. 동네 주민들은 청소, 경비, 빨래, 또 택시 같은 여러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며 숙소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부가가치를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이용해서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커뮤니티를 빌딩하며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 세 호스트의 열정을 마주하고 있으니, 내 마음속에도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고아에서는 렌트카를 해서 운전을 하고 다녔다. 주차장에 진흙이 많아 이렇게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차가 있으니 매우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전 세계 어디서든 현지인처럼 살아보기 


여행을 할 때면 사전에 너무 많은 정보들을 미리 찾기 보다는 일단 내 취향에 맞는 에어비앤비를 예약하고 호스트에게 가볼만한 장소며 맛집들을 소개 받는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여행을 하면 큰 준비를 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떠나는 여행에서도 만족스런 여행 경험을 할 수 있다. 호스트에게 물어볼 때에는 호스트 본인이 이 곳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들을 알려달라고 질문을 한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을 굳이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방문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인데, 이렇게 질문하면 로컬이 사랑하는 숨겨진 명소나 맛집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호스트가 추천해준 동네 카페. 여기에서 거의 매일 아침을 먹었다.



오직 고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


고아에서는 매일 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 위빠사나 명상을 한다. 그리고 녹차를 내려 마신다. 밖에 나갈 채비를 하고 호스트가 추천한 근처 카페에 가서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바다로 향한다. 고아에는 수십개의 해변이 있는데 우리는 호스트가 추천해준 모짐 해변(Morjhim Beach)과 에쉬벰 해변(Ashvem Beach)을 주로 찾았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깨끗하고 한적한 해변이었다. 하루종일 바다에서 물놀이를 했다. 파도타기를 하다 지치면 잠시 쉬면서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는다. 몸이 근질거리면 다시 바다에 들어간다. 갈증이 나면 맥주를 마시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그리고 다시 바다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한다. 이렇게 놀다보면 어느덧 해질 시간이다. 이 때가 중요하다. 왜냐면 고아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놀이를 하고 마시는 킹피셔(Kingfisher) 맥주는 꿀맛!

처음 고아의 일몰을 보던 날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치의 일그러짐도 없는 동그란 태양이 서서히 바닷물속으로 잠겨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이 온 몸으로 느껴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자연은 자기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자신의 때가 왔을때 그 역할을 해낸다. 태양은 태양이 해야할 일을 하고, 달은 달이 해야할 일을 한다. 달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태양이 되고 싶어 한다면 어떨까? 바다가 바다임을 부정하고 산이 되고 싶어 한다면 어떨까? 나는 진정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알고 있을까? 내가 산인지 바다인지 달인지 태양인지 알아야 그에 맞는 삶을 자연스럽게 살 수 있을텐데,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매일 놓치지 않고 일몰을 감상하다보면,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과 교훈을 저절로 알게 된다.

고아에 있는 일주일 동안 딱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해변에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퇴사를 하고도 서울에서는 늘 바쁘게 쫓겨 살았다. 무언가 빨리 결정해야 할 것 같았고, 남들이 보기에도 좋아보이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초조해 지기도 했다. 그런데 매일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해가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아둥바둥하면서 살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파도가 오면 파도타기를 하며 파도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파도와 싸워 이기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이상 파도와 싸우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자연과 맞서 싸우는 삶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삶을 살아갈 때가 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내게 자연스러운 삶이란 안되는 것을 되게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삶이다. 남들의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고, 내 욕망과 남의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삶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비범한 고아의 해변

그래, 나는 이걸 깨닫기 위해 먼 고아까지 왔구나. 인도는 이번에도 내 질문에 답을 주었다. 이제 고아의 자연이 내게 준 답변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일만 남았다.




에어비앤비 작가, 김은지

방콕에 살며 요트여행 스타트업 헤이요트(@heyyacht)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eunjikim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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