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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Feb 14. 2020

터키 이즈미르에서 보낸 소소한 일상

같은 에어비앤비를 쓴다는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낯선 도시에서 2주나 머무른 이유, 에어비앤비 친구들 


이즈미르(izmir)는 터키의 3대 도시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랜드마크가 없어 여행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곳이다. 나도 이즈미르를 고대도시인 에베소(Efes)에서 터키의 최대 도시 이스탄불(istanbul)로 향하는 환승 거점 정도로만 여겼다. 그러다 이즈미르 에어비앤비에서 다국적 친구들을 만나 일상을 함께 하게 되었다. 킴, 해피(Happy), 세랍, 우누스(Yunus), 마오리(maori), 손메즈(Sonmez), 유숩(yusup), 오젤(Ozel) 자매와 함께 한 터키의 일상.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항상 조금은 쑥스럽고 어색하면서도 큰 설렘을 준다. 우리의 인연도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다. 더 알고 싶었고, 더 깊어지고 싶었다. 이들과 함께한 소소한 일상이 주는 기쁨에 ‘하루만 더 있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시간이 금세 흘러가 버렸다. 그래서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이곳 이즈미르에서 2주 동안이나 머무르게 되었다.

▲ 이즈미르 알산작 공원에 있는 조형물

에어비앤비는 다른 숙소 예약 사이트와 비교해보면 숙박 유형에서부터 희망 금액대, 편의시설까지 직접 골라 검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했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필터를 적용한 시스템 덕분에 손쉽게 최적의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원하는 숙소의 조건은 두 가지였다. 작게라도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있으면서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평균보다는 약간 저렴한 금액대의 숙소를 찾았다. 그 결과 이즈미르 시내에 있는 다인실 에어비앤비를 선택하게 되었다.


체크인 이튿날 아침, 음악소리에 이끌려 거실로 향했다. 에어비앤비에 머무는 친구들이 모여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다가가 구경하고 있으니 독일인 킴(Kim)이 내게 노래를 권했다. 듣고 싶은 한국 노래가 있다며 2NE1의 ‘아파’를 요청하는 것이 아닌가. 터키에서 독일인이 선곡한 K-pop이라니 놀라웠다. 어떻게 이 노래를 아는지 물어보니 킴이 중국에서 유학할 당시 인기 있던 그룹이라 대표곡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누스(Yunus)의 빠른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에어비앤비 친구들 앞에서 그렇게 신고식을 치렀다.


그러던 중 세랍(Serap)이란 친구가 간단한 요리를 해서 모두에게 배식해주었다. 메뉴는 묽은 크림에 양파와 닭고기를 넣어 만든 크림치킨스튜. 처음에는 자극성 없이 다소 심심한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국물에 빵을 찍어 먹다 보니 중독성이 있었다. 그날 저녁에도 우리는 모두 모여 저녁을 준비하고, 먹고, 뒷정리를 했다. 타지에서 오랜만에 느낀, 가족 식사 같은 한 끼였다.

▲ 에어비앤비 친구들과 함께 한 가족 식사 같은 한 끼



매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의 의미, 인상적이었던 터키 음식


매일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아침 점심 저녁식사를 에어비앤비에서 만난 친구들과 늘 함께 했다. 한번은 채식주의자인 킴이 에어비앤비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었다. 충격적이었다. 속으로 부르짖었다. ‘아니 선생님! 고기가 없잖아요.’ 고기가 없는 끼니를 상상할 수 없는 나로서는 다시는 없을 식단이었지만 여행지니까, 터키니까, 에어비앤비 친구의 취향에 따라 평소와는 다른 식사를 하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복숭아, 오이, 바나나 등 신선한 과일과 터키 요거트 아이란(Ayran), 이름 모를 풀잎의 조화는 산뜻한 아침 식사로 제격이었다.

▲ 아~주 건강한 킴의 채식주의자 식단

휴양도시 쿠사다시에서 먹은 점심도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선택은 터키식 양꼬치 요리 촙시시였다. 터키 바게트 빵에 양고기 꼬치를 가지런히 올려두고 다시 바게트를 덮은 샌드위치 같은 모양새다. 양고기 잡내는커녕 고기가 쫄깃해서 나무꽂이에서 양고기가 하나씩 사라지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 촙시시(터키식양꼬치 요리)

나의 소울푸드는 감자탕, 파스타, 곱창이라고 자다가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식성이 뚜렷한 편이다. 터키에서 곱창이 그리울 때에는 양곱창인 코코레치(Kokorec)를 먹었다. 긴 꼬챙이에 돌돌 말려 익혀진 양곱창을 잘게 썰어 빵과 함께 먹는 코코레치는 소 곱창은 아니지만 못지않게 고소하다. 게다가 터키 어디서나 찾기 쉬운 길거리 음식이다. 나의 터키 소울푸드 1위는 단연 코코레치다.

▲ 나의 소울 푸드 코코레치. 대개는 잘게 썰어 바게트 빵 사이에 넣어 먹는다.

에어비앤비, 아니 우리의 아지트에서는 늘 친구들과 “이제 뭐 하지?”를 백 번씩을 주고받았다. 일몰 즈음이라 알산작(Alsancak) 공원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름 모를 로컬 음식점에서 후다닥 먹거리 포장을 하고 잔디 위에 자리를 잡았다. 각자의 입맛대로 밥과 반찬을 고르고 빵을 마음껏 담았다. 내가 고른 반찬은 토마토소스 베이스인 양고기와 감자였는데 묽은 닭볶음탕 맛이 났다. 채식주의자인 킴이 고른 반찬은 크림소스 베이스에 버섯이 주재료였다. 우리는 각자의 반찬에 만족하며 날리는 쌀까지 꾹꾹 눌러 비벼 먹었다.

▲ 알산작 공원 잔디밭에서 저녁 먹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든든하니 그제야 비로소 이즈미르의 풍경이 눈과 마음에 담기기 시작했다. 내일의 시작을 위해 오늘의 끝으로 달려가는 채도 짙은 태양도, 우리도, 꽤 그럴싸했다. 그렇게 우리는 마오리의 기타 연주와 킴의 허밍을 들으며, 춤을 추며 노을과 함께 물들어갔다.




계획 없는 하루하루, 늘 함께라는 고마움


LGBT 행사로 밖은 축제 분위기였다. (LGBT는 Lesbian, Gay, Bisexual, Transexual의 약자로 성 소수자를 의미한다.) 유럽, 특히 독일 등의 나라에서는 LGBT 퍼레이드가 매년 큰 규모로 개최되고 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인간의 다양성’을 무지개색으로 표현한다. 굉장히 화려한 퍼레이드를 기대했는데, 우리가 이미 놓친 것인지는 몰라도 LGBT 지지 행렬만 보였다. 그런데도 젊고 건강한 에너지가 거리 곳곳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성 소수자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처음에는 LGBT가 나와는 먼 주제같이 느껴졌는데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 강하고 깊은 신념으로 LGBT를 지지하게 되었다. 외국에서는 LGBT를 서로 다른 존재로서 존중하는 경향이 더 뚜렷했다.


아타튀르크 동상이 있는 광장 길을 따라 돌아오던 중 푸른빛과 붉은 빛, 다채로운 색으로 찬란한 하늘을 만났다. 매일, 매시간 다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삶의 기쁨이다. 맑은 하늘도, 구름 잔뜩인 하늘도 사랑한다. 해가 뜰 때, 질 때, 그 직전 주위를 물들이는 짙은 색도, 해가 떠난 뒤 달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까지 무수히 변하는 청색, 남색, 보라색의 하늘도. ‘오늘의 일몰’은 단 한 번뿐이기 때문에 특별하다. 그렇게 특별한 하루가 또 저물어가고 있다. 무심코 마주한 아름다운 하늘, 피부에 와닿는 밤공기, 사랑할 수밖에 없는 터키의 일상이다.

▲ 매일 다른 이즈미르의 하늘

광장에 어떤 행사가 진행 중인 것 같아 호기심에 이끌려 갔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크게 유세를 하는 자리라고 한다. 이즈미르 주민들이 후보의 연설을 들으며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모두에게 무료 배식을 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도 자연스럽게 배식 줄에 섰다. 연설에 뒤이어 터키 전통 음악이 울려퍼졌다. 흥취가 한껏 달아오른 터키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유롭게 춤을 췄다. 마치 전국노래자랑 관객석 같았다. 나도 세랍에게 터키 전통춤을 배웠다. 따라한다고는 하는데 따라하다 보면 영 우스운 모양이 되어버리곤 했지만 말이다.


‘오늘은 뭐했어?’ 한다면 ‘그냥 친구들이랑 놀았어.’라는 말이 툭 튀어나올 것 같은 하루였다. 특별한 것 없었던 오늘도 행복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즈미르에서 계획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서로 생각해주고 챙겨주는 가족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일상의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 대통령 선거 전 홍보 행사에 참여 중인 터키 국민



휴양도시 세페리히사르로 떠난 여행


이즈미르에 적응한 뒤로 하루의 시작은 빨라도 점심이었다. 그런데 웬일로 에어비앤비의 모두가 아침부터 분주했다. 세페리히사르(seferihisar)에 가기 위해서였다. 세페리히사르는 이즈미르에서 트램과 버스를 환승해 왕복 6시간이 걸리는 꽤 먼 곳이었다. 세페리히사르는 터키인 친구인 세랍이 정한 오늘의 여행지였는데, 터키인이 즐겨찾는 휴양도시라고 한다. 세랍은 일일 가이드가 되어 가는 방법과 세부 일정까지 세밀하게 계획하고 인도했다. 우리는 마트에 들러 과일과 주전부리, 비치볼까지 놀고 먹을거리들을 야무지게 준비했다.


드디어 해수욕장(akkum plaji)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바다를 바라보며 벌컥벌컥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맥주 한입에 열감이 올라왔다. 엎드려 책을 읽는 킴을 바라보다가 물놀이하는 사람들로 시선이 옮겨갔다. 우리는 마트에서 산 비치볼을 들고 수심 얕은 곳에서 물개처럼 공놀이를 했다. 중학교 시절 ‘손목으로 배구공 튕기기’ 수행평가에서는 만점을 받았었는데, 왜 이리 실력 발휘가 안되는지. 비치볼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튕겨지지 않아 야속했다. 몸놀림이 마음 같지 않아 지쳐갈 즈음,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모래사장 선베드에 누워 광합성을 하며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의 늘어짐이 더없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 세페리히사르에서의 물빛 여유

돗자리로 맡아놓은 우리 자리로 돌아와 보드게임 오케이를 했다. 터키에서는 루미큐브를 ‘오케이’라고 했다. 여행지에서도 에어비앤비에서처럼 일상을 보내듯 시간을 보냈다. 세랍이 “다음 장소!”를 외쳤다. 우리는 세랍을 따라 돌길을 걸어 seferihisar mill에 올랐다. 해변의 뒷산 너머 뜻밖의 절벽을 마주했다. 같은 바다지만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바다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자아냈다. 탁 트인 바다 아래 너른 수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이끼 낀 바위와 암벽의 조화는 그림 같았다.

▲ 절벽 너머 투명한 바다

비탈길을 내려와 도착한 sigacik 항구 앞 동네 골목을 구경했다. 꽃으로 예쁘게 꾸며진 동네라 낮에 오면 더 아름다웠을 거라며 세랍이 아쉬워했지만, 어둠이 내려앉은 밤도 운치 있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의 모든 것을 기획하고 이끌어준 세랍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셀축과 에페스는 이미 가 보았다는 나의 말에 새로운 곳을 물색하고, 바다를 좋아하는 점까지 고려해 준 것 또한 감동적이었다.

▲ 해수욕장에서 sigacik 동네 가는 길 풍경



일상을 여행처럼,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사람들


멋진 저녁 시간을 보낼 곳이 필요했다. 항구도시 이즈미르의 해안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타워(Izmir tarihi asansor binasi)가 있다고 해서 가 보기로 했다. 전망타워에 오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유료 엘리베이터와 계단 길이다. 우리는 색색이 꾸며진 계단 길을 선택했다. 계단이 컬러풀하게 색칠되어 있어서 오르는 길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 정자에서 이즈미르 경치를 내려다보았다. 정자에 앉아 터키의 국민 맥주 에페스 맥주를 마시며 불어오는 산뜻한 바람을 느꼈다.


이곳에도 서울시의 ‘따릉이’ 같은 자전거 공유 서비스가 있었다. 냉큼 자전거를 대여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숙소 앞 알산작 공원으로 돌아왔다. 남은 복숭아를 먹으며 친구들과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보니 곧 다른 친구들도 모여들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매번 어느새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고 있다.

▲ 전망타워 올라가는 길 (좌) / 정자에서 바라본 이즈마르 경치 (우)



여행의 마지막을 보내는 방법


어느새 이즈미르를 떠나게 될 날이 다가왔다. 헤어지는 그 날까지 소중한 순간을 많이 남기자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피크닉을 다녀왔다. 트램으로 다녀올 수 있는 inciralti kent ormani 공원이 제격이었다. 해변을 거닐며 좋은 자리를 찾아 안으로 쭉쭉 들어갔다. 바비큐를 하는 가족 방문객이 많아 소풍 온 기분이 한층 더 업 되었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느라 계속 걸었다. 그러다 우연히 부서지는 파도 앞에 자리한 테이블을 발견했다. 제법 큰 파도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눈을 감아도 바다가 가득했다. 마음 깊이 고요함에 빠져있을 즈음, 해피가 귀걸이를 선물했다. 체리 귀걸이. 도대체 어떻게 체리를 보며 귀걸이를 생각해냈는지 참 기발하다. 내 귀에 체리를 조심히 끼워 주고는 해맑게 웃는 해피를 보며 나도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피부에 쌀쌀함이 느껴져 바닷가를 벗어나 공원 안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서로 거리를 둔 채 띄엄띄엄 심겨 있는 나무들 사이로 해지는 모습을 감상하며 넋을 놓았다.

▲ 해피의 제안으로 모두 체리를  귀에 걸었다



매일 같은 사람들과 같은 곳에서 보내는 소소한 일상의 기쁨 


떠돌이 여행자로 매일 다른 곳에서 잠들던 내가 이곳 이즈미르에서는 매일 같은 사람들과 같은 곳에서 일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어쩌다 교외로 드라이브 갈 때엔 '내가 여행을 하고 있긴 하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의 일상은 더없이 소소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끼니를 때우고 거실에 모여 앉아 노래하고 서로를 뭉개며 놀았다. 해지기 전에는 알산작 해변 공원에 앉아 맥주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며 놀다가 좀 더 흥이 나면 맥주 한 잔에 클럽까지 가곤 했다. 날이 좋은 날엔 바다에 가거나, 좀 더 먼 교외로 나가 하루를 보내고 오거나. 이 인연의 역사는 우리가 같은 에어비앤비를 쓴다는 우연에서부터 시작했다.

▲ 에어비앤비가 맺어준 인연, 2주 동안 나의 가족




에어비앤비 작가, 김수진 

생각의 흐름대로 글 쓰는 것, 모든 형태의 여행, 그리고 나른한 낮에 마시는 맥주를 좋아한다. 세계 여행을 하며 써두었던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어떻게 풀어낼지 궁리중이다.

인스타그램 @sjne_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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