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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Feb 10. 2020

요리로 기억될 우리의 여행

그에게 배운 여행의 기술


이집트의 쿠샤리

▲ 이집트 나일강에서
▲ 이집트 카이로 풍경

“파리에서 짐을 다 털렸어요”


6개월 일정으로 유럽을 여행하려던 M이 생뚱맞게 이집트로 피난 온 이유였다. 처음 만나는 약속 시간에 1시간이나 늦은 우리를 맞으며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일단 밥부터 먹자!”


밥을 먹는 그의 어깨는 땅끝까지 축 처져 있었다. 이집트에 있던 6명의 동행이 모두 모인 뒤, 애정 섞인 놀림을 받으며 그는 점차 회복해 갔다. 우리는 함께 피라미드를 보고 박물관에 가고, 쿠샤리(Kushri, 안남미에 파스타, 마카로니, 렌틸콩, 병아리콩 등을 튀긴 다음 매콤 쌉싸름한 소스를 끼얹은 이집트 요리)를 비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그가 시장과 말하기, 요리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5시간, 8시간 이어지는 장거리 버스를 타고 3일 간 배에도 갇혔다가, 찌는 듯한 태양 아래 3시간씩 걸으며 우리는 친해졌다. 야간 버스의 피곤함도 잊은 채 밤새도록 달리는 버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자들의 개미지옥인 다합(Dahab)으로 돌아온 뒤에 그는 꽤 오래 다합에 머물며 다이빙을 배웠다.

▲ 다합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은 다이빙을 하며 보냈다.

다합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다이빙과 누워있기가 대부분이었다. 바쁜 여행 중에 다합을 만나게 되면, 여행자는 조급해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법을 알게 되고 하루를 산다. 느지막이 일어나 홍해(Red Sea)를 헤엄치다가 석양이 지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장을 보러 나선다. 또한, 주변에 사는 한국인을 불러 모아 돌아가며 요리를 만들고 요리에 젬병인 나 같은 사람들은 설거지나 청소를 했다. 마치 그곳에 살았던 것처럼 전혀 익숙하지 않던 풍경이 일상이 되었다. 덕분에 다합은 내게 ‘이집트 다합구 서해’ 쯤으로 마음에 남았다. 그곳의 시간은 느린 듯 빠르게 흘러서, 여행자들은 저마다 한 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다고 투덜대기 일쑤였다.


다이빙을 하러 가는 그를 배웅하고 내내 누워있다가 그가 돌아올 때쯤 홍해로 마중을 나가는 게 다합에서의 나의 일과였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하도 재미있어서 잠을 줄였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고, 그렇게 밤을 붙잡았다. 억지로 붙잡아도 잡히지 않는 시간이 흐르고, M은 다시 유럽으로 나는 다시 아프리카로 가게 되었다. 헤어지기 하루 전날 홍해의 끝에서 한참을 울다가, 서로의 여행을 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공항에 가는 M의 뒤통수를 본 직후부터 이틀 내내 목이 쉬도록 울었지만, 우선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닷새 뒤, 함께 방콕(Bangkok)으로 가는 항공권을 결제했다. M은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나는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서.




방콕의 팟타이

각자의 장기 여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여행지인 방콕. 우리가 다시 만난 이곳에서 더는 쪼들리는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동안 충분히 아끼고 배고프고 추웠으니 여기에서만큼은 마음껏 누리고 싶어 에어비앤비를 선택했다.

▲ 방콕에서 머물렀던 에어비앤비는 고급 맨션이어서 만족도가 높았다.

우리는 수영장이 있는 방콕의 고급 맨션의 에어비앤비를 골랐다. 호스텔만 전전하던 여행자 나부랭이가 큰 마음을 먹었다기에는 방콕의 에어비앤비는 고작 1박에 10달러였다. 배낭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외관, 호텔 로비 같은 요란 벅적한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호스트인 아랴(Yara)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서툴지만 친절한 태국 특유의 어투로 환영의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고는, 고층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그야말로 뻥 뚫린 전망에 살고 싶을 정도의 아담한 구조, 안락하고 평온한 분위기에 마음이 푹 놓였다. 집에만 있어도 힐링이 될 판인데 아랴는 준비한 종이를 뿌듯하게 펼쳐 보였다. 정성스러운 그 종이에는 에어비앤비 주위의 관광 명소, 시장, 마트, 버스 번호 따위의 것들이 빼곡히 그려진 지도였다. 열흘 남짓한 기간, 함께 요리를 만들어 먹고 수영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간의 여행과는 다른 공기가 마음을 감쌌다.

▲ 방콕에 머무는 동안은 시장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해 먹었다.

방콕에서는 다합과 같지만 다른 매일이 펼쳐졌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랴의 지도를 펼쳐 들고 그녀가 알려준 빠끄렛(Pak kret)의 작은 시장으로 장을 보러 나섰다. 4,000원에 몇 킬로를 주는 새우를 사고, 오늘은 어떤 과일의 가격이 올랐나, 어느 집에서 덤을 더 줄까 저울질을 하다가 유난히 색이 예쁜 망고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새우를 손질한 뒤 얼마만큼은 냉동실에 보관하고, 쿠킹클래스에서 배운 새우 팟타이를 만들어 먹곤 했다. 시장에서 장을 봐서 요리를 해 먹다니! 식재료가 비싼 유럽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은 적은 있어도, 근사한 요리를 주방에서 해 먹어 볼 생각은 못했었는데 방콕의 에어비앤비에서는 가능했다. 호스텔이 아닌 야라가 생활하고 사용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한국에서보다 더 아늑하고 깔끔했고 냄새를 풍길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매번 음식을 만들어먹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시장 가는 길에 지나치며 단골이 된 국숫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도 했다. 안면을 트고 ‘사와디-카’뿐인 인사를 나누다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누고 온갖 고기를 넣은 그 집의 히든 메뉴를 대접받았다. 그러다 밤이 되면 세븐일레븐에서 캔맥주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캔을 해치워버리기도 하고, 앞으로 먹을 식량처럼 맥주를 냉장고에 쟁여두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으나 아무 일이 아닌 것이 아닌, 그 전혀 새로운 경험을 방콕에서 했다. 호스텔이었다면 혹은 화려한 호텔이었다면 방콕의 겉만 밟고 나왔을 것이다. 겁이 날 만큼 우리는 방콕을, 이 지역을 사랑하게 되었다.

▲ 태국에서 맞춘 1,000원짜리 커플 반지

어쩌면 방콕에서는 여행을 했다기보다 거주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장 낯선 곳에 가장 친한 친구가 먼저 와 기다려준 듯한 여행.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들이 한둘이겠냐마는, 현지에 섞이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들 역시 적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서 방콕을 떠올리면 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호스트뿐만 아니라, 머문 지역 전체와 정이 들어 버렸다.




바르셀로나의 파에야

방콕 여행 이후로는 여행을 할 때마다 늘 현지인의 숙소를 선택했고, 현지인들과 만났다. 길을 헤매고 몇 번을 잘못 돌아가도, 손을 잡고 걸으면 그게 또 여행길이 되었다. 때때로 실망할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살아보는 것이 우리 여행의 방식이 되었다. 그들의 식재료를 들춰보고 요리도 배우면서 그 속에 녹아들었다. 한국에서의 일상 역시 소중하기에 2주 이상의 시간을 내긴 어려워졌지만, 방콕에서 배운 여행의 방법은 그 후의 여행에서도 쭉 유효했다.

▲ 에어비앤비 체험을 통해 바르셀로나에서는 쿠킹클래스에 참여했다.

바르셀로나(Barcelona)는 네 번째 방문이었지만, 이번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에어비앤비 체험을 통해 쿠킹클래스를 예약했다. 쿠킹클래스를 예약할 수 있는 수많은 플랫폼이 있지만, 에어비엔비 체험을 선택한 이유는 ‘현지스러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상위에 랭크된 클래스를 예약하지 않고 에어비앤비에 제시된 정보를 자세히 따질 수 있었다. 배울 수 있는 요리는 무엇인지, 짧은 시간일지라도 역사와 문화를 함께 다루는지 따위를 꽤나 열심히 비교했다.


치열한 경합 뒤 선택한 우리의 셰프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카탈루냐(Catalonia)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이 지역의 음식을 먹고 만들어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3시간 동안 우리가 배울 요리는 카탈루냐 디저트와 왕새우가 들어간 파에야(Paella)였다. 거기에 곁들일 수 있는 지역 특산 와인 카바(Cava) 시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페인어와 영어가 묘하게 섞여 둘 중 누구도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녀가 카탈루냐와 그들의 요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눈빛으로 느껴졌다. 


그들의 방식으로 파에야를 만들고 정성 들여 만든 책자로 눈으로 담기 어려운 역사를 배우고 장난 섞인 고유의 방식으로 카바를 흩뿌려 마셨다. 만든 음식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만찬을 즐기는 것으로 바르셀로나의 쿠킹클래스는 끝이 났다. 시간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에게 근방의 식료품점을 추천받고는 문을 나섰다.

▲ 바르셀로나 산페드로 시장(San Pedro Market) 풍경
▲ 바르셀로나에서도 어김없이 시장에서 장을 봐 요리를 해 먹었다.

쿠킹클래스를 통해 배운 카탈루냐 요리를 한국에서도 만들어보고 싶어 향신료를 둘러봤다.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 중에서도 정성이 가득 들어간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시장에 가고 요리를 배우는 건 그들의 삶을 오롯이 배울 수 있는 방법임을 사실 우린 방콕에서부터 배워왔다.


그렇게 여전히 현지인과 이방인의 사이, 그 미묘한 상태를 즐기며 여전히 다음 여행이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언젠가 둘이 아닌 혼서 여행을 떠나게 되더라도, 방콕에서 배운 여행의 기술은 늘 잊지 않고 펼쳐 보일 생각이다. 그게 그로부터 배운 여행의 기술이고 우리의 방법이므로.




에어비앤비 작가, 썬

남미부터 아프리카까지, 472일간의 세계여행을 했다. ENFP의 전형적 인물로, 모험을 즐기고 사람을 탐구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균형점에서, 즐거운 만큼만 잘 해내고 싶은 철부지를 지향한다.

인스타그램 @sol23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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