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열 살에 시작한 육아, 그리고 나의 인생 2막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며 꿈을 키우던 삼십 대에 결혼과 출산을 경험했다. 출산 후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몰두했다. 모유 수유를 하고 이유식을 만들며 천 기저귀를 쓰는 등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일들에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육아에 바쳤더니 탈이 나 버렸다. 내가 없어진 것 같은 상실감에 우울감마저 찾아왔다. 내 인생은 이렇게 끝인 건가? 82년생 김지영이 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다시 회사에 들어갔다. 처참했던 나의 1년을 보상받으려는 듯 9년이라는 시간을 회사에 올인했다. 다행히 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90%는 직장인 10%는 엄마의 삶을 살았다.
그렇게 회사에 몸 바쳐 일을 하다 보니 또다시 넉다운이 되었다.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으로 결국 퇴사를 결심했을 때, 나에게 육아휴직이라는 한 줄기의 빛이 비쳤다. 육아가 힘들어 회사로 도망쳤던 나에게 육아휴직이라는 포상이 생기다니 인생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육아휴직이라는 타이틀이 생기니 임하는 자세가 조금은 달라졌다. 아이와 행복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고민하다가 몇 년 전 가족 여행으로 갔던 하와이가 떠올랐다. 시댁 식구와 떠났던 하와이에서의 일주일은 나에게는 아쉬움이 많았던 여행이다. 작렬하는 태양과 바다가 있으니 남자아이에게는 이만한 놀이터가 없을 테고, 서머스쿨도 다양하니 하와이가 제격이다 싶었다. 하와이를 오가며 하와이와 사랑에 빠진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 <꿈꾸는 하와이>를 읽고 나니 하와이에 대한 열망을 잠재우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하와이가 천국 같은 게 아니라 천국이 하와이 같은 거 아닐까?'
많은 정보 속에서 무엇을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기간이었다. 최대한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아이의 학교 결석에 문제는 없는지, 아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 살인적인 물가에 경비는 얼마나 들지 등 현실적인 문제에 고민을 하다가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는 88일로(무비자 기간은 90일이다. 그러나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1~2일 여유를 두었다) 결정했다. 나의 하와이 세 달 살기는 한 달은 서머스쿨 적응하기, 한 달은 현지 생활 즐기기, 나머지 한 달은 이웃섬 여행으로 계획했다.
하와이 서머스쿨 프로그램은 정말 다양했다.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나온 사립학교부터 호놀룰루 동물원 캠프, 바다 생물 캠프, 네이처 캠프, 레고 캠프, 사설 어학원 캠프까지 기관과 프로그램 모두 다채로웠다. 하지만 아이의 영어 수준으로는 어떤 결과를 기대하기에는 모두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또한, 세 달 살기에 맞게 현지의 소소한 일상을 아이가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 현지 아이들이 방학 때 이용하는 하와이 공립학교 서머스쿨을 선택했다.
하와이 공립학교 서머스쿨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 등록 절차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직접 학교에 문의를 하고 아이의 성격과 장점을 어필할 수 있는 메일을 몇 차례 보내니 입학 허가가 났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준비하고 비용은 수표를 발행해서 국제우편으로 보내니 아이의 학교는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었다. 공립학교라는 이점과 직접 모든 것을 처리하니 일반적인 서머스쿨 비용의 1/3도 안 되는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나머지 기간은 아이의 적응 여부에 따라 현지에서 알아보기로 했다.
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살아보기' 콘셉트이니 숙소를 고르는 데 있어서는 더욱 신중했다. 한인민박, 베케이션 렌털, 호텔 등 다양하게 알아봤지만 나의 마음을 움직인 건 에어비앤비였다. 나의 첫 에어비앤비는 4년 전 파리에서였다. 호스트가 바로 옆집에 살고 있어 늦은 시간 도착했음에도 환대를 받았고, 낯선 곳에서의 늦은 저녁을 호스트의 추천으로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또한,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책들과 아늑한 방은 잠시 친구 집에 머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머무는 내내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와이키키 지역은 관광지답게 숙소가 다양했다. 우리는 아이와 함께 하는 장기 여행이기에 통학의 편리함과 안전함을 고려해 콘도를 선택했다. 이번에 터득한 노하우 중 하나는 새로운 집 공략하기! 특히 여러 개를 운영하는 호스트의 새로운 집 공략하기였다. 여러 개의 숙소를 운영하는 호스트는 운영하는 다른 집의 컨디션이나 예약 상황, 게스트들의 평가를 확인할 수 있고 이러한 호스트가 신규 오픈한 에어비앤비는 오픈 할인 및 장기 할인 등 프로모션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그래서 믿을 만한 숙소를 저렴한 가격에 렌트할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이런 노하우를 발휘하여 괜찮은 에어비앤비를 좋은 가격으로 렌트할 수 있었다.
3개월의 기간이라 만만치 않은 양의 짐이 트렁크 3개에 꽉꽉 채워졌다. 아이와 단둘이 처음 하는 긴 여행이라 그런지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글을 끄적대거나 <여행의 이유>를 읽다 보니 어느덧 하와이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작가가 큰 맘먹고 장기 여행으로 떠난 중국에서 강제 출국당하는 대목이 기억에 남던지. 하지만 긴장된 마음을 위로해주는 구절이 있었다.
'여행에 치밀한 계획 따위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영하 작가는 어느 나라를 가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고심하지 않는다고 한다. 맛있으면 맛있어서 좋고, 대실패를 하면 글로 쓰면 되니까. 긴장된 마음으로 아이와 긴 여행길에 오른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우리가 묵을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는 친절하게도 얼리 체크인을 해주었다. 아이가 4명이라는 호스트는 한 달 동안 나와 아이의 집이 되어줄 42층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탁 트인 라나이(Lanai, 발코니)에 에이러 와이 운하(Ala Wai Canal)와 다이아몬드 헤드(Diamond Head), 와이키키 비치(Waikiki Beach)가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아름다운 전망에 긴장이 풀어졌다. 뜨거운 열기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6층 수영장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파란 하늘과 강렬한 태양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낯선 곳, 낯선 언어로 인해 아이는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열 살이면 새로운 환경을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나의 착각이었다. 등교할 때마다 축 처진 어깨와 날카로운 그림들, 악몽을 꾼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매일 함께 하는 등하굣길과 바다가 있기에 우리는 이겨낼 수 있었다. 매일 와이키키 비치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파도를 타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아이와 함께 퀸즈 비치(Queen’s Beach)에서 다이빙을 하거나 바디보드에 몸을 싣고 파도를 만났고, 서핑도 배웠다. 또한, 하와이 전통 배인 카타마란(Katamaran)을 타고 먼바다까지 나가고 해질 녘이면 모래사장에 누워 노을을 바라보니 예민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말이 잘 안 통해도 또래들과 모래 놀이하며 노는 게 아이에게는 힐링되는 순간이었다.
나 또한 바다와 모래사장에서 즐기는 태닝과 독서는 그야말로 힐링의 순간이 되었다. 책을 몇 권 가져갔는데, 그중 열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지냈던 리스본을 추억하며 열 살 딸과 리스본으로 떠난 여행 에세이인 임경선의 <다정한 구원>은 열 살 아이라는 공통점에 쉬이 몰입하게 되었다. '나의 아이도 엄마와 함께 한 하와이를 추억하게 되겠지'라는 생각에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힘들어했을 때의 일기를 보면 세상 심각할 수가 없다. 그간 못했던 육아를 하와이에서 다 하는 것 같다는 친구의 말도 그렇고 그 시간의 무게는 크게 남았다. 사실 아이가 힘들어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말문이 조금씩 트이고 학교에도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와 함께 즐기며 소중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답인 것 같다.
하와이에서의 시간은 나에게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이가 등교하는 첫날, 산책을 하다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요가 스튜디오를 발견했다. 자연을 닮은 선생님과 새소리와 솔솔 부는 바람에 춤을 추는 커튼까지. 분위기에 바로 매료되어 하와이에서의 요가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요가 수업에서는 하와이 주민뿐만 아니라 원데이 클래스로 오는 여행객들도 많아 매번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1시간 30분 동안 땀을 흘리며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스튜디오에 가지 않는 날에는 라나이에서 요가 매트를 펼치고 다이아몬드 헤드를 바라보며 요가를 하곤 했다.
'훌라를 추는 것만으로도 훌라를 추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하와이와 연결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를 읽으면 훌라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특히 '하와이를 오가며 훌라를 배우며 하와이라는 강하고 아름다운 것에 안겨 있는 것을 느낀다'는 표현은 하와이에 가면 훌라를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생각보다 스튜디오가 많지 않아 버스를 타고 40분은 가야 하는 곳의 스튜디오를 등록했다.
첫 수업 날 파우 스커트를(Pau skirt, 훌라를 할 때 입는 치마) 하나 골라 입고 어색하게 있는데, 어느새 이끌려 손에 손 잡고 원을 그리며 둥글게 서게 되었다. 선생님의 기도를 시작으로 한 명씩 돌아가며 오늘 감사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날씨가 화창함에, 오늘도 훌라를 할 수 있음에, 개인적인 좋은 일들에 감사하며 나누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이게 뭐라고 매번 난 오늘 무엇에 감사한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우쿨렐레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고 학생들은 파우 스커트를 흔들며 춤을 추는데 분위기가 너무 따뜻했다. 훌라는 자연을 표현하는 춤이라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는데, 바람과 꽃과 바다와 산 등을 표현하고 있자니 나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었다. 육아 스트레스와 낯선 곳에서의 긴장감으로 위축되었던 마음이 사라졌다. 훌라는 그야말로 사랑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알아보니 집 근처에도 훌라 클래스가 있었다. 지역 커뮤니티 센터인 와이키키 커뮤니티 센터(Waikiki Community Center)에서 훌라, 줌바, 우쿨렐레, 요가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모든 수업은 원데이 클래스로 들을 수 있고 연회비를 내고 연회원 할인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연회원을 끊어 훌라, 요가, 영어 수업을 들었다.
TIP
오픈 스페이스 요가 스튜디오(Open Space Yoga Studio) - 3106 Monsarrat Ave, Honolulu
스틸 & 무빙 센터(Still & Moving Center) -1024 Queen St, Honolulu
와이키키 커뮤니티 센터(Waikiki Community Center) - 310 Paoakalani Ave, Honolulu
짧은 여행이라면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게 현명하다.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장기 여행은 마음의 여유와 함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자 여행인 셈이다. 동시에 현지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이 있으니 가능성이 열려있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달 후부터는 집, 학교, 여행 등 모두 현지에서 결정해야 했기에 현지의 경험들을 담아봤다.
1. 렌터카
렌터카를 검색하다가 튜로(Turo)라는 공유 경제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보유하고 있는 차를 빌려주는 렌터카 계의 에어비앤비이다. 렌터카는 여행을 떠나기 전(적어도 일주일)에는 예약하는 게 일반적인데, 튜로는 하루 전날에도 예약이 가능하다. 일반 렌터카에 비해 가격 경쟁력도 있고 빌릴 수 있는 자동차 종류도 다양하다. 물론 보험, 클리닝 비용 등 금액이 부가되는 옵션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오픈카를 고수하는 이유가 '운전을 하다가 신호를 대기할 때 하늘을 볼 수 있어서'라고 묘사한 글을 읽고 오픈카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그 로망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와이에서 오픈카 혹은 일반 렌터카 회사에는 없는 차를 선택하기에 유용한 플랫폼이다. 단, 갑자기 호스트가 취소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점은 유의해야 한다.
2. 주내선
이웃섬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주내선을 이용해야 하는데 경비행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빅아일랜드에서 아웃(Out), 마우이에서 인(In) 할 때 경비행기를 이용했다. 시간대를 잘 선택하면 1/3 가격(우리는 짐이 많아서 수화물 비용을 많이 지불해야 했지만)으로 이용할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수속 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우리는 수속 시간이 10분도 채 안 걸렸다. 또한, 우리의 비행기에는 파일럿 2명과 승객 5명으로 총 7명이 탑승했다. 파일럿이 조종하는 것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고 고도도 낮아 풍경을 감상하기에도 좋았다.
3. 액티비티
공립학교의 서머스쿨은 약 한 달 과정이다. 보통 오전 수업만 진행하고 오후에는 연계되어 있는 방과 후 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서머스쿨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다른 프로그램을 열심히 알아봤는데, 아이는 애써 친해진 친구들과 헤어지기가 싫다고 했다. 알아보니 서머스쿨이 끝나는 시점에 방과 후 센터의 풀타임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한 달 더 연장했다. 센터 과정이 끝난 후 친해진 친구와 레고 캠프도 같이 다니고 가족을 초대해 콘도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바비큐 파티도 했다. 아이의 적응 여부에 따라 유연하게 짠 계획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와이는 이벤트가 정말 많다. 칼라카우아 애버뉴(Kalakaua Ave)에 있는 로열 하와이안 센터(Royal Hawaiian Center)와 인터내셔널 마켓 플레이스(International Market Place)에서는 레이(Lei, 하와이 꽃 목걸이) 만들기, 케이키 훌라(Keiki Hula) 클래스, 우쿨렐레 및 훌라 공연 등 매일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또한, 우리가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 크고 작은 행사들이 많았다.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우쿨렐레 페스티벌, 일본 전통 춤인 봉댄스( Bon Dance) 페스티벌, 햄버거 빨리 먹기 대회, 공원에서 있었던 영화 상영회, 우쿨렐레 배우기 등 다 즐기기에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TIP
eventbrite - 다양한 이벤트 정보를 볼 수 있다.
yelp -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 등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다.
내가 워킹맘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엄마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아이를 맡기고 퇴근 시간 걱정 없이 일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1년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것 또한 엄마 덕분이다. 그래서 마지막 한 달은 엄마와 함께 이웃섬을 여행했다. 아이를 혼자 챙겨야 하는 부담에서 해방되어서 그런가? 엄마의 방문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엄마는 오자마자 맛있는 밥부터 챙겨주니 집 나갔던 입맛도 돌아올 정도였다.
일주일은 아이의 캠프가 남아 있어 아이가 캠프에 가 있는 동안 엄마와 단 둘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을 했다. 엄마와 함께 훌라를 배우고, 건강식에 관심이 많은 엄마와 다운 투 얼스(Down to Earth)에서 진행하는 비건 쿠킹클래스를 듣고, 호놀룰루 미술관에 방문하는 등 함께 하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몰라 아이를 픽업하러 가는 두 엄마의 발걸음은 바쁘기만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아이의 친구들 가족과 마지막 바비큐 파티를 했는데, 엄마의 음식 솜씨에 한국 요리 예찬이 시작되었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 먹었던 음식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현지에서 할 수 있는 체험이 엄마도 신선하고 좋았다고 한다. 자연스레 즐기는 엄마의 모습에 뿌듯하기도 하고 함께 하니 배가 되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여행지는 하와이의 여러 섬 중 빅아일랜드와 마우이 두 섬으로 삼주 간의 일정이었다. 엄마와 나, 그리고 아들 3대가 하는 여행이라 숙소도 한인민박, 에어비앤비, 호텔 등 다양하게 예약했다. 그중에서 숨은 보석을 발견했는데 빅아일랜드 코나(Kona)와 마우이의 와일레아(Wailea)와 같은 휴양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성비 좋은 로컬 리조트가 에어비앤비에 리스팅 되어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리조트는 가성비뿐만 아니라 가심비까지도 최고였다. 다양한 리조트 액티비티도 준비되어 있고 주방도 겸비하고 있어 집에서의 아늑함까지 느끼며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마트에서 장을 봐와서 아침을 해 먹고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커피농장에 들러 코나 커피를 맛보고 매일 새로운 바다에서 하루를 보내는 게 하루 일과였다. 하와이의 3대 비치라 불리는 화이트 샌드, 블랙 샌드, 그린 샌드 비치뿐만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비치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든 바다들이 다 특색이 있고 새로웠다. 거북이와 함께 수영을 할 때는 얼마나 신비롭던지, 여행 막바지에 마우이 호오키파 비치(Ho’okipa Beach)에서 만난 거북이 떼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매일 열심히 바다를 다닌 보람이 느껴졌다.
삼대가 함께 마우이 할레아칼라(Haleakala)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서는 나도 몰랐던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나의 탄생 비화, 엄마와 아빠의 연애 이야기 등 엄마와 둘이 했던 여행에서는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엄마와 나, 아이가 함께 하는 여행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면 새벽같이 일어나 3000m 넘는 할레아칼라 산 일출을 보러 갔을 것이다. 일몰 후 쏟아지는 별을 봐야 직성이 풀렸겠지만, 엄마와 아이와 함께이다 보니 함께 즐기는 코스로 오후에 갔다가 해 질 무렵 내려왔다. 엄마와 나 그리고 아들이 눈과 가슴에 담은 건 다르겠지만 함께 한 순간을 추억할 수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찼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요가와 훌라를 배우고 달리기를 하거나 바다에 나가거나 산책을 했던 하와이에서의 모든 시간들이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과업에 시달리며 전력질주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을 천천히 리셋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금세 일상으로 복귀되기 마련인데 아직도 그때의 루틴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함께하는 등굣길, 산책, 운동 그리고 훌라. 사회생활을 하다가 육아와 집안일을 하면 예전처럼 우울해질 법도 한데,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하와이에서부터 이어진 건강한 삶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 열 살에 다시 시작한 육아가 참 의미 있다. '육아'와 '휴직'을 통해 아이에게도 내 인생에도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던 시간들을 반추하며, 모 아니면 도처럼 육아 아니면 일이었던 삶이 조화로운 삶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요즘 나의 일상은 아이뿐 아니라 신문을 보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있다. 쉼표가 되는 이 시간을 통해 조급한 마음 내려놓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내 인생의 2막을 위해.
패션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가 이커머스(e-commerce)로 전업한 워킹맘, 지금은 육아휴직을 만끽하는 열 살 아이의 엄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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