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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비앤비 Feb 13. 2020

욕망, 광기, 밀집과 압축의 도시 New York

낮의 뉴욕, 밤의 뉴욕


여행의 조건


우리는 모두 여행에서 좋아하는 일을 한다. 혼자 혹은 같은 것을 좋아하는 다른 어떤 사람과. 나는 건축디자이너다. 딱딱한 말로는 건축가라고 하고, 건물 혹은 공간을 설계하는 일을 한다. 그러니 건축을 이유와 목적으로 하여 여행을 떠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맞다. 나는 건물 보러 여행 간다.


보고싶은 건물이 있는 도시를 향해 훌쩍 떠나곤 했는데, 자꾸만 망설이게 되는 도시가 있었다. 분명 가고 싶은 것이 맞는데, 선망하는 도시임에 틀림없는데 조금씩 자꾸만 미뤄놓고 있던 곳. 뉴욕, 뉴욕, 뉴욕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뉴욕은 볼 곳이 너무 많아서 되려 망설여졌다. 뉴욕에서 한 달 정도는 살아야 웬만큼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러다 문득 문제는 돈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언제쯤 한 달 동안 시간을 낼 수 있을까. 휴직할 때? 퇴사할 때?


아니야. 지금 가자. 한 달을 살아볼 수 있을 때를 기다리지 말고, 답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자. 지금이 아니면 못 갈 것 같으니까. 그렇게 비행기 표를 끊고, 10박 11일의 뉴욕 여행을 시작했다. 이번 여행도 나의 여행 친구, 빔과 함께였다.



여행의 시작과 끝은 어퍼웨스트사이드, 음악인 David의 집에서


호텔을 알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뉴욕에는 에이스 호텔(Ace Hotel)도 있었고, 에이스 호텔이 새로 내놓은 시스터시티(Sister City)도 있었으니까. 아니, 에이스호텔을 차치하더라도 여기는 뉴욕이 아닌가! 호텔은 차고 넘치니, 원한다면 호텔 순회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열 번의 밤. 빠듯한 시간이었다. 하루라도 호텔에 가볼까 했지만, 호텔에서 하루 자보는 것보다도 왔다갔다 짐을 옮기는 그 시간을 아끼기로 했다. 우리 한 곳에 편하게 있자. 답은 에어비앤비야.


에어비앤비 웹사이트에 들어가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하며, 이동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맨해튼과 최대한 가까이 숙소를 잡기로 했다. 적어도 강은 건너지 않을 것. 그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어퍼웨스트사이드에 위치한 한 음악인의 아파트였다. 깔끔하고, 주방도 깨끗한 집. 그렇게 10번의 밤을 보낼 숙소를 정했다. 에어비앤비의 호스트인 데이비드(David)는 도시를 이동하며 연주를 다니는 음악가로, 뉴욕을 떠나 있는 동안에만 아파트를 에어비앤비로 내놓는다고 했다. 우리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는데, 택시를 타고 데이비드의 아파트에 도착해 들어가자마자 이민가방 같은 짐을 챙기고 있는 우리의 호스트를 만날 수 있었다. 연주를 위해 시카고로 떠나는 길이었다. 본인이 뉴욕에 없더라도 친구들이 있으니,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에어비앤비 앱을 통해 연락을 주면 된다고 말하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 음악가 데이비드의 아파트먼트 에어비앤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두 아시아 여성들을 맞이하며, 데이비드는 자신의 집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테라스가 있는 쾌적한 넓이의 거실에서 애플 TV와 스피커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음악인답게 TV의 내장 스피커론 만족하지 못했는지 웅장한 두 개의 스피커를 구비해놓고 있어 뉴욕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챙겨 온 블루투스 스피커를 한 번도 켜지 않은 채 내내 데이비드의 스피커로 음악을 들었다. 저녁이면 숙소에 들어와 <왕좌의 게임> 시즌 8을 끝냈고,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옥자>를 보고, 좋아하는 영화인 <미드나잇 인 파리>를 다시 보며 늦은 밤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었다.

▲ 아파트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어퍼웨스트사이드는 맨해튼 시내와는 얼마간 떨어진 한적한 동네였는데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동네에 좋아하는 곳들이 생겨났다. 빔과 나는 모두 빵을 그리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척에 위치한 뉴욕의 3대 베이글 맛집 중 하나인 앱솔루트 베이글(Absolute Bagels)에서 아침을 든든히 해결하며 우리는 단골이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에어비앤비에서 센트럴파크(Central Park)까지 충분히 걸어갈 수도 있었다. 내가 잠깐 뉴욕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 오전 동안 빔은 걸어서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The Cathedral Church of St. John the Divine)에 가서 성가대 공연을 듣고 와 나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 뉴욕의 3대 베이글 맛집 중 하나인 앱솔루트베이글 내부

어느날 맨해튼을 돌아다니다 지쳐서 동네로 돌아와 에어비앤비에서 잠깐 누워 충전한 뒤, 다시 겉옷을 걸치고 나와 집 앞 재즈바인 스모크 재즈 바(Smoke Jazz Bar)로 향했다. 걸어서 5분이나 걸렸을까. 스모크 재즈 바 앞에는 이미 다음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었다. 그날의 첫 번째 공연을 듣고 나오는 사람들은 줄을 선 우리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너희는 최고의 공연을 보게 될 거야.”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재즈바의 문 앞을 쉬이 떠나지 못하고 지난 공연의 여운을 만끽하는 그들을 보면서 기대감은 한껏 높아졌다. 우리의 기대는 깨지지 않았다.

▲ 최고의 공연을 스모크 재즈 바에서

뉴욕에 도착한 지 채 며칠이 되지 않아서부터 에어비앤비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우리는 말했다.


우리 이제 집에 가자. 


분명 호스트인 데이비드의 집인데, 자연스럽게 그곳은 열하루 동안 우리 집이 되었고, 동네가 됐다. 뉴욕을 살고 있는 중이었다.




밀집된 부와 압축된 문화, 낮의 뉴욕


서울에도 좋은 건물이 많이 지어지고 있지만, 뉴욕은 서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전 세계의 날고 긴다는 건축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다. 역작을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건물을 디자인하는 곳이 뉴욕이다. 왜냐하면 옆집도 세계적인 건축가가 무언가 지어놓을 테니까. 비교되니까. 뉴욕은 그렇게 세계 건축 컬렉션과 다름없는, 내가 너보다 잘났음을 보여주겠다는 욕망의 도시가 됐다.


뉴욕에 여행을 열흘이나 가면서 '누가 지은 어떤 미술관'을 혹여라도 놓칠세라 우리는 구글 맵의 미술관, 박물관에 별표를 잔뜩 찍었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미술관과 갤러리가 발에 치이도록 많은 곳에 가자. 불합리하고 못생긴 것들 말고,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실컷 질리도록 보자.




자유분방한 현대미술을 품은 단정하고 정제된 미술관

MoMA(The Museum of Modern Art) (1997), 다니구치 요시오


▲ 뉴욕을 대표하는 미술관 MoMA

뉴욕 한복판에 있는, 뉴욕을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MoMA의 건축가가 일본 출신이라는 점은 꽤 놀라운 일이었다. 일본 건축의 어떤 점을 높게 사 뉴욕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일본의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를 설계자로 정했을까. 다른 건축가들의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보다 그의 간결하고 정제된 건축 언어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술작품에 더욱 집중토록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덕분 아니었을까.


1997년 다시 지어진, 현재의 MoMA가 가진 공간에서 가장 강력한 점은 의심의 여지없이 층을 가로질러 수직적으로, 수평적으로 넓게 비워진 마당과 같은 공간이다. 관람객들은 한 층의 전시를 돌아보고 나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1층의 다른 관람객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전시를 관람하며, 관람객들은 공간의 스케일까지 겪으며 사람들은 그렇게 미술관의 일부가 된다. 2019년, MoMA는 딜러 스코피디오 + 렌프로(Diller Scofidio + Renfro)**의 설계안에 따른 증축을 완료하여 10월 오픈했다.


*다니구치 요시오: 일본의 호류지 보물관을 설계하기도 한 건축가로, 모더니즘에 기반하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일본 건축을 선보이고 있다.
**딜러 스코피디오 + 렌프로: 뉴욕 기반의 설계사무소로 뉴욕 하이라인을 설계하였으며, 최근 이들이 설계한 허드슨 야드의 더 셰드(The Shed)라는 이름의 문화 공간이 오픈했다.




독특한 동선을 품은 6개의 흰 육면체

New Museum (2007), SANAA


▲ 'Less is More'이 떠오르게 하는 뉴 뮤지엄

마치 다른 사이즈의 택배 박스 여러 개가 쌓여 있는 모습처럼 생긴 이 건물은 SANAA*가 설계한 New Museum(뉴 뮤지엄)이라는 이름의 미술관으로, 뉴욕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장소 두 곳 중 하나였다. 독특한 동선 설계도 백미이지만, 복잡한 입면을 가진 뉴욕의 건물들 사이로 우뚝 솟은 단순한 박스 형태의 건물은 많은 요소들을 없앰으로써 오히려 더 눈길을 끈다. 벽과 바닥, 기둥과 창문을 모두 곱게 숨겨, 단순하고 반듯한 흰색의 거대한 박스 6개가 쌓여있는 모습으로만 읽힌다. 미스반 데어 로어의 'Less is More'의 개념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외피는 익스펜디드 메탈이라고 부르는 철판으로, 외부에서 보았을 때에는 4면이 모두 막힌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창과 테라스가 있어, 뉴욕 시내 모습이 펼쳐진다. 박스들이 만나는 부분에 테라스들이 계획되어 있는데, 전시 여건 때문인지 가장 최상층의 테라스만 관람객들에게 오픈하고 있었다. 그것도 주말에만. 안타까운 일이다. 2019년 New Museum은 옆 건물을 허물고 증축하려고 하는데, 네덜란드 출신의 건축가 그룹인 MVRDV**가 설계를 맡았다. 공개된 설계안은 여러모로 화제가 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SANAA: 일본 출신의 건축가인 세지마 카즈요와 니시자와 류의 유닛으로, 따로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기도 하고 둘이 같이 호흡을 맞춰 설계하기도 한다. 카나자와의 21세기 미술관,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롤렉스 러닝 센터 등의 다른 대표작들이 있다. 2010년 건축계에서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MVRDV: 네덜란드 출신의 건축가 그룹으로, 네덜란드뿐 아니라 중국, 프랑스, 인도 등을 넘나들며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개장한 서울로 7017을 설계하기도 했다.




취향이 시대를 보여주는 곳

The Morgan Library & Museum (2006), Renzo Piano


▲ 공공 도서관이자 전시관인 '더 모건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

The Morgan Library & Museum(더 모건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은 1909년 개인 도서관으로 처음 건립된 후 2006년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인 Renzo Piano(렌조 피아노)*에 의해 개보수 증축되어 공공 도서관 및 전시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곳의 매력은 공간의 반전에 있다. 아주 깨끗하고 단정한 렌조 피아노의 공간으로 진입하면 벽 한쪽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커튼월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실내에 심어진 나무 한 그루 아래에서 화이트 와인에 곁들여 브런치를 하다, 어느 순간 고서가 가득한 모건** 가의 도서관에 진입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시간여행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 서로 다른 시대와 스타일의 두 공간이 하나로 합쳐져 있기에 각자의 매력이 배가 되어 느껴진다.


*렌조 피아노: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로,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퐁피두 센터와 런던의 초고층 빌딩인 더 샤드가 그의 대표작이다.  서울에서는 광화문 KT 사옥을 설계한 바 있다. 1998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JP 모건: JP 모건 체이스 앤 컴퍼니를 창립한 존 피어폰 모건(John Pierpont Morgan)




신진 아티스트들을 위한 실험적 형태의 미술관

Whitney Museum (2015), Renzo Piano


▲ 실험적 형태를 구현한 휘트니 미술관

하이라인을 통해 건물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새 허드슨 강에 도달한다. 하이라인의 막바지, 혹은 누군가에겐 하이라인의 시작점이 되는 이곳이 바로 2015년 완공된 새로운 Whitney Museum(휘트니 미술관)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된다.


여러 건축가들을 제치고 휘트니 미술관의 신축 프로젝트를 맡은 렌조 피아노는 전의 여느 작품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를 보여줬다. 신진 아티스트들의 어렵지 않은 무대가 되길 원했던 당시 미술관장의 요구 때문이었는지, 날아가는 건물이 되길 원했다며 실험적인 형태를 구현했다. 가장 상층부의 돌출된 철골 계단과 이어진 카페테리아에서 꼭 허드슨 강변의 풍경을 즐기고 내려갈 것을 추천한다. 




뉴욕에서 만난 일본

Noguchi Gallery(1985), 이사무 노구치


▲ 뉴욕 속 일본, 노구치 갤러리

뉴욕까지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더니, 여기 또 일본이 있을 줄이야. 나와 함께 일본 여행을 자주 갔던 빔과 잔뜩 의아해했다. 왜 여기 또 일본이야? 흰색 글씨로 노구치라 쓰인 붉은 건물로 들어가 티켓을 구매 후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면 장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빈 공간을 만난다. 콘크리트 바닥과 콘크리트 블록으로 구획된 공간 안에 이사무 노구치*의 작품이 툭툭 놓여 있다. 추상적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서정적이며 현대적인 느낌마저 드는 그의 조각 사이사이를 돌며 다시금 의아해졌다. 이게 뭔데 왜 예뻐 보이지?


공간 초입에 만나게 되는 자작나무 한 그루와 삼각형의 천장 위로 만나는 하늘은 뻥 뚫려있다. 작품이 모두 조각이기에 갤러리는 내부여도, 반 외부공간이어도, 심지어 건물 밖 정원에 놓여도 좋은 것. 특히 녹음이 우거졌던 노구치 갤러리의 정원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다 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사무 노구치: 이사무 노구치는 일본계 혼혈 미국인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조각가 중 한 명. 그러나 나는 그보다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 '아카리' 조명 시리즈로 이사무 노구치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테러의 아픔을 담은 공허한 폭포

911 Memorial Museum (2011), Michael Arad


▲ 그라운드 제로와 오큘러스

2001년 9월 11일 저녁, TV를 통해 긴급 속보를 보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향해 날아와 그대로 고개를 처박고야 마는 비행기 두 대와 붉게 피어오르던 불길과 검은 연기. 영화의 한 장면인 것만 같았던 그날의 보도는 많은 사람의 기억에, 가슴에 남아 쉽게 잊을 수 없었다.


그날 무너진 World Trade Center(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이후 많은 논란과 함께 재건 계획을 공모한다. 뉴욕의 도심 속 많은 이들의 슬픔이 잠긴 테러의 현장을 어떻게 복원해 낼 것인지 이목이 집중되었다. 200팀이 넘는 건축가들 중 이스라엘 출신의 건축가 Michael Arad(마이클 아라드)가 제안한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라는 제목의 현상안이 당선되었다.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그 자리엔 검게 파인 폭포가 Ground Zero(그라운드 제로)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One World Trade Center, 1WTC(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라는 이름으로 독일 출신의 건축가인 Daniel Libeskind(다니엘 리베스킨트)의 계획으로 다시금 초고층 빌딩으로 세워졌다.


2016년에는 스페인 출신 건축가인 Santiago Calatrava Valls(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 환승 센터를 ‘Oculus(오큘러스)’라는 이름으로 설계했다. 독특한 내부와 외형을 자랑하는데 마치 날아오르려는 새를 형상화한 모습이다.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갈비뼈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건축적으로는 기둥 없는 거대한 공간을 구현해 낸 칼라트라바의 구조해석에 언제나처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이클 아라드: 낯선 이름의 이스라엘 출신 건축가는 911 메모리얼 파크 현상설계 공모 전 비자가 만료되어 이스라엘로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전해진다.
**다니엘 리베스킨트: 유대인이자, 미국의 건축가로 건축에서의 해체주의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건축가 중 한 명이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이 대표작으로, 한국에서는 삼성역 앞 현대산업개발 사옥과 부산 해운대의 아이파크를 설계했다.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스페인의 건축가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독특한 조형을 가진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삼각형 구조의 트러스와 캔틸레버 구조를 이용하여 곡선과 곡면을 만들어 낸다. 이는 뛰어난 구조 설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건축을 보러 꼭 미술관과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온갖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빼곡하게 전시된 미술관과 박물관이 답답하고 지겹다면, 뉴욕 건축 관람은 아래 두 곳부터 시작해도 나쁘지 않다. 서로 다른 방식의 산책을 제안하는 곳, 올해 오픈한 Vessel(베슬)과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High Line(하이라인)이다.




뉴욕의 새로운 랜드마크, 2500개의 계단

The Vessel (2019), Thomas Heatherwick


▲ 허드슨 야드 프로젝트의 베슬

구릿빛의 금속 계단이 서로 교차하며 45m까지 점점 더 넓어지며 올라간다. 벌집처럼 보이기도 하고, 거대한 로봇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9년 허드슨 야드에 드디어 문을 연 The Vessel(베슬)의 모습이다.


베슬에 대해서 말이 많다. 좋다는 사람도 있고, 싫다는 사람도 많다. 누군가는 뉴욕의 에펠탑이라고, 또 누군가는 뉴욕의 쓰레기통이라 폄하한다. 뉴욕에 왜 저런 것을 지었냐며, 영국 출신 건축가인 Thomas Heatherwick(토마스 헤더윅)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각자의 취향이 아닐 수는 있겠으나 확실한 것은 이곳을 방문해 베슬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헤더윅은 뉴욕의 새로운 풍경을 선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건축이 도시에 하나쯤 있어서 나쁠 것은 없다. 조금 징그러워도, 정신없어도, 다양성은 문화를 키우는 데에 혁혁히 도움을 준다.


사람들은 베슬을 오르며 360도, 다양한 높이에서 뉴욕을 바라본다. 반 층 높이씩 계단을 통해 오르게 되어 있는 이 공공구조물은 점점 오를수록 넓어지는 형태여서, 베슬 안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토마스 헤더윅: 살아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로, 건축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이 세상에 없던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2016년 대림미술관 디뮤지엄에서도 토마스 헤더윅 전시가 진행된 바 있다.




뉴욕을 걷는 새로운 방법

High Line (2014), Diller Scorpidio + Renfro


▲ 뉴욕 시민을 위한 쉼터, 하이라인

1930년대 세워져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던 2.3km 높이의 고가 철도는 1980년 운행을 마지막으로 폐쇄되어 20년 간 방치되다 2014년도 9월 마지막 구간까지의 공사를 마치고 대중에게 오픈되었다.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에서는 이곳에 있던 야생화들을 바탕으로 200여 종의 식물들로 자연을 채웠고,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는 고가 철도를 도시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우리는 이곳을 하이라인이라고 부른다.


뉴욕 시의 지자체와 디자이너, 건축가, 그리고 시민단체가 함께하여 만들어낸 성공적인 도시 재개발 사례인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하이라인을 걷는다는 것은 근대와 현대 건축의 갤러리에 들어왔다는 말과 같다. 뉴욕의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설계했던 자하 하디드의 뉴욕 첼시 콘도미니엄도 만나고, 장 누벨의 조각보 같은 100 Eleventh Avenue 건물도 지나치고, 해체주의의 대표적인 건축가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바 있는 프랭크 게리의 IAC도 보인다. 공사 중인 건물엔 BIG*라고 큼지막한 현수막이 붙어 있는 건물을 바라보며 비야케 잉겔스가 또 한 건 했구나 싶고, 허드슨 강가에 이르자 헤더윅이 새로 짓고 있는 정체불명의 콘크리트 꼬다리들이 보인다.


*BIG: 덴마크의 건축 설계 사무소로, 비야케 잉겔스가 코펜하겐과 뉴욕을 기반으로 400여 명의 건축가들을 이끌고 있다. 기존 건축가들이 추구했던 철학과 이념이 담긴 건축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며, 현실에 발을 디딘 특유의 스마트하고 유머러스한 디자인과 사용자 중심의 사회적 연대가 담긴 건축을 지속하고 있다.




욕망, 광기, 밀집과 압축의 도시 공간 사이에서


뉴욕은 많은 것들이 충돌하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짧고 강렬한 역사를 통해 얻게 된 일부의 밀집된 부 사이에서, 노예라는 계급이 주었던 차별과 억압을 극복한 자유 아래에서, 바다 건너 들어온 다양한 세계의 문화 속에서 뉴욕은 뉴욕이라는 단어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다른 지역을 '뉴욕 같다'라고 말할 순 있어도, 뉴욕을 다른 어느 곳에 빗대어 표현할 순 없을 것이다. 뉴욕은 이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면을 보여줄 테지만, 빔과 나에게는 수많은 공간들을 펼쳐 보여주었다.


"어디가 제일 좋았어?"


우리는 뉴욕에서의 여행을 마무리하며 서로에게 이 질문을 던졌지만, 쉽게 이렇다고 대답하긴 어려웠다. 다만 확실했던 것은 우리가 다시 뉴욕에 올 거라는 것. 우리는 아직도 못 본 곳들이 너무나 많다. 잘하는 사람들이 이미 만든 공간들도 모두 다 가보지 못했다. 앞으로 우리가 이곳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의 사람들이 다시 엄청난 공간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니 뉴욕은 언제나 새로울 수밖에 없다.


*건축물의 이름 뒤에 표기된 연도는 준공연도이며, 건축가의 이름을 함께 표기했습니다.





에어비앤비 작가, 김선아

사진 찍는 건축가.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것들을 디자인합니다. 좋은 것을 나누고 싶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2019년 스무 곳의 공간을 소개하는 <여기가 좋은 이유>를 출간했습니다. 

브런치 @seonarchi

인스타그램 @seonar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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