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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모하모 May 21. 2019

건축은 ‘새로운’ 소재가 될 수 있는가?

<말하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바탕으로 한 ‘아카이브 다큐’ 상상

“건축은
공간의 용어로 표현된 시대 의지다."

             미스 반 데어 로에          


뉴트로(New-tro)와 레트로(Retro) : 돌고 도는 유행 사이의 건축물에 대한 단상        


뉴트로(New-tro)란 말이 식상해질 만큼 익숙해진 2019년에도 지금의 이 현상을 대체할 만한 다른 흐름은 아직까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도 십여 년 전 김현철의 음악들이 (당시에는 갖지 못했던) 시티팝(City Pop)이란 새로운 이름을 달고 새로운 트렌드로 다시 부활하는 것과 같은 상황들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젠트리피케이션 논란을 일으키며 이동하던 주요 상권 역시 성수나 익선, 을지로와 같은 ‘복고적’ 느낌을 풍기는 지역들에 안착한 이후로는 아직까진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진 않고 있다. 이 같은 ‘과거에 대한 향수’가 힘을 잃기는커녕 점점 더 그 체격을 늘리는 듯한 형국이다. 가장 젊고 힙(hip)한 젊은이들이 오히려 가장 낡고 오래된 골목길 속에 숨은 나만의 공간들을 찾아 헤매는 시대. 그렇게 2030은 기존의 오래된 공간들에서 새로운 자신들의 이야기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트렌드의 빠른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고 정주하는 ‘건축’은 그렇기에 익숙한 듯 낯선 존재다. 수없이 많은 트렌드가 변화하고 공간의 의미가 끊임없이 변주되는 과정에서, ‘건축’은 인식의 경계 저편으로 밀려났다가 새로운 트렌드의 대표성을 띄는 상징물로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블루 보틀이 입점하면서 화제가 됐었던 성수동의 붉은 벽돌 건물은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성수동 일대의 약 68%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붉은 벽돌 건축물 중 한 곳에 터를 잡은 블루 보틀의 입점 전략은, 비록 기존의 블루 보틀의 인테리어와는 어긋난 인더스트리얼 카페로 꾸며지면서 약간의 입방아의 오르긴 했어도, 큰 틀에서는 성수동 내의 ‘정체성’ 내에 포함되려는 시도로써 이해될 수 있다. 이때의 붉은 벽돌 건축물은 ‘객체’이면서 동시에 기존 공간에 새롭게 위치하려는 새로운 양식의 ‘매개’로서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단순히 정적인 것으로만 여겨졌던 건축이, 시간의 축적을 통해 그 정적인 요소를 딛고 동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에 이미 다양한 방식을 통해 많이 다뤄졌지만 동시에 단순히 변화한 인테리어를 보여주는 (가난) 포르노그래피적 신파 연출이나 인간의 관음적 욕망을 포장해주는 소재로 주로 활용돼 왔던 소재로서의 ‘건축’에서, 새로운 다큐멘터리로서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기존 다큐멘터리들이 ‘건축’을 통해 시도했던 이야기하기(story-telling)에 대한 다시 읽기 과정에서 되짚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말하는 건축가>, 기억을 끄집어내다          


감독 정재은이 <말하는 건축가>(2011)에서 다루는 ‘건축물’은 건축가의 말과 생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로써 기능한다. 감독은 그렇기에 건축물의 기능이나 미적 측면을 강조해서 보여주기보다는, 이미 지어진 결과물로서의 건축물에서 건축가의 의도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통해 건축을 보여준다. 건축가 정기용이 병을 앓아 탁해진 목소리로 지은 무주의 목욕탕 건물 위에 건축가와의 상의 없이 지어진 태양광 패널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무주 등나무 운동장에서 완전히 자신의 생각을 비틀어버린 행정 당국에 분통을 터뜨리며 다시는 무주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을 초반에 길게 보여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건물이 완성된 이후에는 건축가의 손을 떠난 것으로 여겨지는 건축에 대해 건축가가 그 쓰임을 다시 복기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감독은 건축이 단순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건물을 쓰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음’을 보여주려 애쓴다. 비록 그 언어가 (영화의 에필로그 장면에서 비춰주는 것처럼) 실제로 그 건물을 쓰는 사람들에게 완벽하겐 전해지지 않을지라도, 최소한의 건축가의 의도와 생각이 존재하는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건축’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감독은 끊임없이 (영화를 찍는 내내 투병 중이었던) 건축가 정기용의 생각과 말을 집요할 정도로 끊임없이 끄집어냄으로써, 그가 작고한 이후에도 남아있는 ‘건축’에 남겨진 메시지들을 보존한다. 이는 영화 말미 그가 설계한 가정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건축가의 모습 등을 통해 상징적으로 전달된다.           


영화는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의 인물 다큐 구성 방식을 통해 그의 건축을 재구성한다.


건축가의 말과 행동을 넘어 건축가 스스로가 찍어 온 영상과 건축가의 삶을 담아왔던 과거 아카이브 영상들의 총집을 통해 재구성한 건축가의 생각을 보여주는 일. 건축 다큐라기보단 건축가 정기용의 인물 다큐에 가까운 <말하는 건축가>지만, 그럼에도 2011년 작인 이 다큐에서 찾을 수 있는 ‘미래’ 다큐로서의 가능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건축’을 단순히 ‘건축’으로 놔두는 대신, 집요할 만큼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고자 했던 건축가의 삶을 복기하는 과정을 통해 이를 지금의 우리에게도 통용될 수 있는 메시지로 만드는 작업. 이를 통해 감독은 2019년 의 우리에게도 통용될 수 있을 메시지를 그가 남긴 건축들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의 시선과 상상은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조명되고, 영화는 막바지 그의 작품들인 건축들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말들을 시각화한다.

<안도 타다오>, 건축의 기억을 잇다           


반면 미즈노 시게노리 감독의 <안도 타다오>의 경우, 정재은 감독의 내러티브와는 대비되는 듯한 연출을 통해 또 다른 ‘방식’의 건축에 대해 얘기한다. 큰 흐름을 가진 내러티브를 포기하고 영상 카탈로그에 가까운 연출 방식을 통해, 감독은 각각의 모자이크들을 잇대 지금의 안도 타다오란 건축가의 삶을 보여주려 애쓴다. 이를 위해 감독은 NHK 아카이브 자료 등 과거의 영상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 노출 콘크리트 건축 양식의 대가인 안도 타다오의 건축에 있어 핵심이 될 콘크리트 작업이 이뤄지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의 정체성을 보여주려 한다. 감독의 메시지 전달을 위한 내러티브적 재구성을 포기한 대신 ‘인간’ 안도 타다오의 재구성에 가까운 이야기 전개 구조를 택함으로써, 감독은 건물 그 자체의 생성과 쓰임을 더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진 자료 등으로 정물화 돼 과거의 유물로만 여겨지곤 했던 안도 타다오의 건축들의 현재가 계속해서 조망된다. 펜화와 과거의 영상들에 덧붙여져 재생되는 현재의 영상들은 그렇기에 영상 내러티브적 일관성을 갖추진 못하지만, 대신 안도 타다오라는 건축가가 살아온 시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완성되지 못한 미완의 아이디어들을 계속해서 끄집어냄으로써 건축가의 상상을 통한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안도 타다오>는 과거 아카이브 영상 자료들을 계속해서 사용해냄으로써 현재의 안도 타다오를 그린다.


물론 소개할 건물을 선택하고, 소개한 필요한 인터뷰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감독 자체의 메시지가 배제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택의 영역 역시 연출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감독은 오히려 그 누구보다 강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연출 방법을 택한 셈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건축이란 소재를 통한 다큐는 너무나도 손쉽게 이러한 감독의 의도와는 벗어나는 자신만의 이야기 구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다큐멘터리 영화 <안도 타다오>는 보여주고 있다. 이는 수많은 다른 해석의 여지를 가질 수 있는 ‘건축’이라는 소재가 스스로 이야기 구조 내에서 ‘움직이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오랜 시간의 누적을 보여주기에, 그 해석 역시 계속해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한적인 자원 – 건축의 특성상 각자의 시선이 담긴 아카이브 영상이 구성되기는 어렵다 – 의 특성상 (이후의 다큐멘터리가 보여 줄) ‘그림’들은 계속해서 반복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해석은 이후에 누적되는 영상자료들과 새로운 시각들에 의해 끊임없이 달라질 수 있다. <안도 타다오>의 다소 산만한 구성은, 역설적으로 이를 증명했다.            


영화는 안도 타다오의 상상을 그의 성공작들을 넘어 그의 '실패작'들까지 담아냄으로써 보여주려고 시도한다.


건축은 새로운 다큐의 소재가 될 수 있을까?          


건축은 소재의 특성상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되기엔 쉽지 않은 주제다. 예컨대 가우디의 사그리다 파밀리에 성당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상상을 해본다면 이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 양식의 결정체로서 “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파밀리에 성당을 소개한다면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사그리다 파밀리에 성당”의 탄생 그 자체를 다큐로 찍으려 한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거의 백여 년에 가까운 건축 기간을 온전히 담아내고, 그 과정에 있는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는 다큐멘터리가 가능할까. 이러한 다큐멘터리를 위해 ‘기록’을 축적하고 이를 담아내는 과정은 자칫 잘못하면 “보르헤스의 지도”가 되기 쉽다. 투입해야 할 비용과 시간 대비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을 생각해본다면, 영상에 ‘패스트’를 걸어서 10분 만에 100년의 결과물을 요약해 보여주는 것 이상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를 ‘건축’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로 이야기를 만들려는 시도는 상황에 따라선 굉장히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렇기에 <말하는 건축가>나 <안도 타다오>도 사실 다큐멘터리에 있어 ‘이레귤러’에 가깝다. 이들 다큐가 내러티브의 차원에선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와 같은 ‘건축’ 다큐적인 재구성이란 공통분모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정기용과 안도 타다오란 건축가들이 가지고 있던 개개인의 명성의 힘이란 행운 덕이었다. 그들의 성장 과정을 담아낸 영상물이 존재했기에, 시간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건축 다큐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을 담아왔던 건 그 순간순간의 각기 다른 시각들이었지만, 공통된 요소(건축가)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지속적인 축적이 가능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방식은 다를지언정 (감독 개개인의) ‘일관된’ 시각으로 재구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보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 : 다큐멘터리 판 보이후드(Boyhood)’를 상상하다           


“우리의 ‘현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전혀 다른 이 두 다큐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그렇기에 비교적 단순하다. 건축이 가지는 정적인 속성과 다큐멘터리 재구성을 위해 필요한 오랜 시간의 축적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가능성들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들이기도 하다. 공간을 쓰는 사람은 계속해서 변해가지만, 건물은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존재한다. 십 년, 이십 년에 걸쳐 누적될지도 모를 건축 과정을 다 담아내서 한 명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계속해서 누적해서 쌓아 올린 자료를 토대로 이후 세대는 새롭게 씨실과 날실을 엮어 이야기의 변주를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단지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현재’만을 기록할 수밖에 없지만, 건축이란 지표가 무너지지 않는 한 그 기준을 통해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들이 생성될 수 있다. 공장지대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성수동의 붉은 벽돌 건물들이 지역의 정체성을 넘어 새로운 상권의 중심지로 편입되는 과정 속에서도 그 색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우리들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쌓아 올릴 수 있다. 90년대의 광풍을 거친 후 몰락해 사라질 것만 같던 압구정 로데오 거리가 새로운 ‘문법’들을 통해 다른 의미로 재생되듯 말이다.           


그렇기에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건축을 지표로 삼아 도시 전체를 기억하는 작업이 계속되는 상황을 상상해본다. <말하는 건축가>나 <안도 타다오>가 보여줬던 누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구성 방식이 단순히 한 건축가 혹은 한 건물을 넘어서 하나의 지역, 공간, 더 나아가 한 도시의 전체를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본다. 단순히 풀샷 용도로서의 건축물을 촬영하는 차원을 넘어서, 장기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건축 아카이브, 도시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생각해본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기도, 주제의식을 가지기도 힘든 방식이지만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그 어느 누구도 쉽사리 따라 할 수 없는 다큐멘터리 소재들이 축적되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10년, 20년 아니 40 ~50년 뒤의 새로운 세대에게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신선한’ 소재로서의 축적된 아카이브 자료의 가능성을, 건축 다큐멘터리들을 통해 본다.         


뉴트로, 혹은 레트로의 시대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축적을 통한 건축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희미하게나마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현실화되지 못한 건축 공모 양식을 통해 미래를 보여줬던 건축가들처럼, 새로운 ‘시대 의지’를 계속해서 써 내려갈 수 있는 시도들을, 꿈꿔보라고.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KBS 자율 연구회의 연구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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