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원>, <동물 심리상담소>, <야생쓰레기 구조 프로젝트>
2019 제16회 서울환경영화제는 ‘ECO SPIRIT’을 주제로 삼았다. 여기서 ECO SPIRIT이란 ‘무엇을 쓰고,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삶을 뜻한다. 4년간 쭉 지켜본 결과 주제는 크게 변함이 없다. ‘ECO SPIRIT’은 매년 주최 측이 같은 말을 어떻게 다른 말로 바꿔 말할지 머리를 싸매고 싸맨 결과처럼 보인다. 그만큼 환경 문제는 참 변함없고 진전이 없다.
지금 우리는 동물원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동물,원
- 왕민철 / 한국 / 2018 / 100분 / 다큐멘터리
이 영화는 청주 동물원 벽에 그려진 조잡한 자연화를 비추며 시작한다. 이 장면은 현재 동물원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곳에 사는 동물들은 사람들에게 평소에 절대 볼 수 없을 만큼 먼 자연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자연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물원은 사실 지극히 인공적인 공간이다. 청주 동물원의 호랑이는 철창 너머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활한다. 그 옆에 풀과 나무와 푸른 하늘이 그려진 시멘트벽이 대조되고 있다. 자연에서 살아가야 할 생명들이 가장 자연스럽지 않은 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모순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 대조는 관람객의 시선이다. 이 영화의 진짜 목적은, 동물원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 또는 피상적인 비난을 들추기 위함이다. 동물원에 무관심하다면 관람객은 자연이 그려진 벽화를 그대로 믿을 것이다. 우와, 호랑이다. 하고 그를 몇 초간 응시한 후 다음 동물을 찾아 갈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이 갇혀 있는 것이 불쌍하다고 동물원을 비난하는 사람도 사실 무관심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무작정 동물들이 갇혀 있는 것이 불쌍하니 동물원을 없애자고 하는 것은 철창 너머의 호랑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최초에 야생에서 잘 살고 있는 호랑이를 데려온 것은 인간의 원죄이지만 지금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들은 동물원에서 태어나 야생을 모른다. 무엇보다 돌아갈 서식지가 없다. 사람으로 치면 조상이 고향에서 강제 이주 당했지만 본인은 이주지에서 태어났고 돌아갈 고향은 없는 꼴이다.
동물원은 너무나도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생태계이다. 그 곳에는 동물들이 있고 그들을 돌보는 사육사가 있고 동물을 보러오는 관람객들이 있다. 동물들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이유로 동물원이라는 틀 안에 갇혔다. 하지만 이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사육사는 동물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언제나 진심이고 최선이다. 동시에 자신이 동물을 가두고 있는 이 시스템 안에서 종사하고 있다는 갈등, 하지만 사육사의 힘만으로는 큰 변화를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괴로움을 안고 있다. 관람객들은 동물원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동물원에 대한 피상적인 비판에서 한 발짝 나아갈 수 없다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동물,원은 이 중 사육사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육사의 모습은 SBS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에게 밥을 주는 모습일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완벽하며 어떤 동물이 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 설명해주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실제 사육사들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사육사들은 때로 어리숙하며 동물들에게 감정적으로 흔들리며 꾸준히 배움을 얻어가는 사람들이다. 물범이 새끼를 낳자 그들은 한겨울에 교대로 사무실 의자를 끌고 나와 물범사 앞에 앉아 지켜본다. 지난해 물범 새끼가 수영을 배우기도 전 새벽에 익사한 것이 두고두고 미안했다고 한다. 김나던 커피가 차갑게 식어간다. 콘크리트로 된 턱이 없는 해변이었다면 물범 새끼가 익사할 일도 없을 것이다. 동물원의 그 자연스럽지 않음을 사육사들은 자신들의 몸으로 채워내고 있었다.
영화는 청주동물원에서 태어난 호랑이 박람이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끝으로 걷는다. 태어난 해에 있었던 박람회의 이름을 따 박람이라 이름 지어준 이 호랑이는 점점 뒷다리를 절더니 일어나지 못하면서 충북대 수의과로 이송된다. 사육사들은 그대로 박람이를 보내줄지, 노쇠한 호랑이가 버텨주길 바라면서 수술을 감행할지 고민한다. 그들은 박람이에게 미안하다. 호랑이는 가둬서 키울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 아기 물범은 수조가 좁아 엄마 아빠 품을 떠나 광주로 간다. 마지막에 카메라는 청주에 사는 동물들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끝난다. 그 얼굴에 수많은 감정들이 묻어있다.
성실하게 발굴해낸 이야기
동물,원 GT에서 서사의 중심에 있던 수의팀장은 사실 자긴 공무원이라서 시키는 대로 청주동물원에 가긴 했지만 야생동물구조가 꿈이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동물원이 생추어리(동물보호구역)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물원으로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관중의 무지만큼 속도는 더뎌지고 동물들의 고통은 길어진다. 만든 사람의, 다큐 속에서 직접 발화하는 사육사들의 솔직함과 간절함이 느껴졌다. 잔잔한 다큐임에도 사람들은 종종 웃음을 터트렸고 다큐가 끝난 후 그래도 동물원은 나쁜 게 아니냐는 등 질문이 그치지 않았다. 2030에게 먹히는 다큐란 무엇인가에 명확하게 대답할 만큼 기존 작법과 다른 작품이었으면 글쓰기 참 편했으련만. 그냥 성실하게 직구로,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진심과 최선을 다해 그려낸 수작이었다.
사람과 동물의 경계에 대해-동물 심리상담소
- 데이비드파인,앨리스스노든 / 캐나다 / 2018 / 14분 / 애니메이션
정신과 의사이자 개인 클레망 박사가 운영하는 동물 심리 상담소에 돼지, 고양이, 사마귀, 거머리, 고릴라, 비둘기가 모인다. 돼지는 먹을 것을 참지 못한다. 고양이는 자신의 신체-털을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사마귀는 남자친구를 잡아먹어버렸다. 거머리는 남자친구의 피를 빨아먹다가 그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자는 통보를 받는다. 비둘기는 아이가 너무 많아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못할까 걱정이다. 고릴라는 겉은 불 같지만 내면은 나약한 분노조절 장애 환자다.
동물들이 스스로 통제가 안된다면서 병으로 진단하는 행동들은 동물로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평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행동들과 묘하게 겹쳐진다. 고양이가 헤어볼을 토해내는 것을 보며 웃다가도 입으로 손톱을 뜯는 일을 멈추지 못하는 자신이 생각나게 되는 것이다. 동물의 심리가 그렇게 인간의 심리와 다를까 의문을 던지게 만드는 우화였다. 그리고 애니메이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유의 감각이 좋았는데, 돈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언젠가 애니메이션 제작툴도 막 3d처럼 간편화돼서 소스만 입력하면 되는 그런 세상이 올까?
심층시사자연생태환경어드벤처멜로-야생쓰레기 구조 프로젝트
- 송호철 / 한국 / 2018 / 51분 / 다큐멘터리
송호철 감독은 젠트리피케이션을 격하게 겪고 있는 문래동에서 새로운 현상을 발견한다. 바로 토착 쓰레기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토착 쓰레기란 그의 정의에 따르면 비가시적인 쓰레기이다. 그곳 주민들이 생활하면서 배출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구석이나 옥상 같은 곳에 방치한 소파, 엉킨 전선, 플라스틱 조각 등의 생활쓰레기를 말한다. 반면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면서 그곳에는 커피컵 등의 일회용품, 즉 눈에 잘 띄고 바로바로 치워지는 가시적 쓰레기가 늘어난다. 그는 두 유형의 쓰레기가 젠트리피케이션 진행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지표라고 정의하고서는 진지한 얼굴로(그는 아주 식견있는 박사처럼 생겼다) 비가시적 쓰레기, 즉 야생 쓰레기를 구조하겠다고 셀프 인터뷰한다.
이 다큐는 이후 야생쓰레기를 관찰하고 쓰레기 수거로봇을 제조해 이를 구조하러 나서는 서사를 가진다. 그런데 이 서사에서 제일 중요해 보이는 질문은 다큐가 끝날 때까지 명확하게 답을 구할 수 없다. 대체 왜? 야생쓰레기를 구조해야 하는가. 대신 그는 그의 행위 자체에 흥미를 가지게 만든다. 다큐의 문법을 파괴했다가 (초반 쓰레기의 개념을 설명할 때 일일이 듣고 있기 귀찮지 않냐는 듯 까만 바탕에 흰 글씨로 내용을 정리해버린다) 다큐의 문법을 비틀어버리기도 한다(그가 쓰레기를 관찰할 때 카메라는 자연다큐에서 사용할만한 프레임으로 쓰레기를 바라본다. 뒤에는 무슨 다람쥐라도 보여주고 있는 듯 경쾌한 음악이 깔리면서 나레이션이 나온다 ‘종이컵과 플라스틱은 무더운 여름날씨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옥상에서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송호철 감독은 전문가처럼 생긴 자신의 캐릭터를 이용해 짐짓 진지한 다큐인 척하면서 곳곳에 ‘삑사리’포인트를 넣어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그가 쓰레기 구조 로봇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냥 옥상으로 올라가 손으로 구조하는 것이 훨씬 쉬워보이는데 그는 굳이 조잡한 핸드메이드 로봇을 원격 조종해서 쓰레기를 주워온다. 이 구조로봇을 소개할 때 우리는 아폴로 시대 탐사로봇을 홍보하는 영상을 보는 듯한 비주얼과 배경음악을 보게된다. 구조로봇에 달린 카메라의 조악한 화질은 아폴로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의 영상을 보는 듯 하며 마침내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집어드는 데에 성공하자 그 유명한 닐 암스트롱의 말,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를 차용해 쓰레기 구조사의 도약을 축하한다.
GT에서 송호철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의 장르는 심층시사자연생태환경어드벤처멜로입니다.(뻔뻔)’라고 말한다. 사실은, 지금 나온 장르 중에 이 다큐멘터리를 포괄할 수 있는 장르는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이 다큐멘터리는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뒤로 숨기고 감독의 행위 자체를 전면에 내세운다. 심층시사자연생태환경어드벤처멜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아저씨 캐릭터’가 다큐 전체를 끌고 나가는 힘이 된다. 있는 현상을 관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감독은 적극적으로 현상을 만들어내며 그 현상 속에 있는 자신을 관찰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무사히(?) 쓰레기를 구조해나가던 어느 날, 감독은 어떤 전화를 받는다. 이윽고 감독은 심각한 얼굴로 임대료와 보증금이 올라가면 자기는 어떡하냐고 말한다. (갓물주의 전화였다.) 실컷 장엄한 달, 아니 옥상 탐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직후 그는 현실로 툭, 하고 귀환한다. GT때 손 들고 저 술 한 잔 사주세요!라고 말해버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