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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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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모하모 Nov 08. 2019

놀면 뭐하니?가 실험하고 있는 것

1.


 놀면 뭐하니?라는 제목에서 반대로 방송에 복귀하는 김태호 PD의 부담이 느껴진다. 이전에 있던 예능을 반복하지 않되 지금의 트렌드를 엮어서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들. 그가 가장 주목한 것은 촬영하는 주체의 변화인 것 같다. 같은 사건도 사건의 당사자가 찍은 흔들리거나 셀프카메라 앵글인 화면일 때 시청자들이 더 ‘라이브’하다고 그래서 볼 가치가 느낀다. 그래서 출연자들은 직접 카메라를 놓을 자리를 선택하고, 얼기설기 테이프로 붙여놓고 셀카봉을 휘두른다.


         시청자들이 따라가는 시선은 유재석의 시선이다. 유재석을 따라 유재석의 지인들도 만나고 유재석이 벌이는 사건들을 본다. 유재석은 한국에서 시청자들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므로 그가 벌리는 사건에는 이러쿵저러쿵 사전 내러티브가 필요없다. 유재석이 대뜸 보초적인 수준의 드럼 플레이를 들고 유희열과 이적에게 음을 붙여달라고 해도 보는 사람은 유재석의 성격, 그를 이런 상황으로 내모는 김태호 PD, 그 둘의 눈치를 보다 유재석을 농락(?) 하는 듯 받아주는 유희열과 이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굳이 팔로우를 모으지 않아도 등장부터 팔로워가 있는 슈퍼 유튜버. 이렇게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이라는 유튜버가 김태호라는 기획자가 깔아주는 판위에서 찍는 브이로그의 형식을 취한다.


셀프카메라를 설치하는 유희열. 잘생겼다.
카메라를 직접 들고 찍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방송인들


2


 문제는 재미가 없다. 초반 놀면 뭐하니?의 정체성을 가장 강하게 드러냈던 조의 아파트는 기존의 무한도전이 상상하지 못한 것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리는 거대한 플롯과 대비되는 작고 자잘한 이야기로 구성된다. 모르는 사람들이 일단 먹을 것을 들고 모여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는 기획이다.


         사실 유튜브에서 시작된 브이로그라는 형식은 이미지의 파편을 엮은 것인데, 어디서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완결성을 가지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촬영에 계획성이 없어도 만들 수 있는 콘텐츠이다. 이런 맥락도 없는 단편적인 이미지의 나열-뭘 먹고 어디서 뭘 봤고 뭘 샀고 무슨 택배가 왔는지-을 20,30분이나 보는 것을 보며 ‘볼만한 볼거리’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별로 돈 들인 화면도 공들인 화면도 아닌데 20분 넘게 계속 보게 만드는 힘. 그렇다면 유튜버보다 강력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여러 명 모아서 그날 있었던 일을 찍으면 재미있을까? 아니었다. 놀면 뭐하니?는 초반 저조한 시청률을 오히려 기존의 예능 카메라 워킹과 편집법, 도전과 성공이라는 이야기 플롯이 들어갔던 유산슬 데뷔 편에서 만회할 수 있었다.(6.6%)


안 친한 사람들이 어색함을 견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 괴로웠다.

3.


 처음 방송 기획 단계에서 이 방송이 뭐가 재밌을까 고민했을 때 가장 큰 것으로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이 줄 수 있는 ‘우연의 재미’+출연진들이 스스로 카메라를 잡으면서, 카메라의 대상이었을 때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모습(셀프캠 앞에서 멘붕하는 박명수라든가)을 훔쳐보는 ‘관음의 재미’를 꼽았을 것 같다. 어떻게든 뭐라도 찍어와. 예능은 편집이야. 라는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편집은 곳곳에서 기발하다.)


         하지만 지금 남은 것은 릴레이를 통해 이야기를 확장하는 방식뿐이다. ‘단추 수프’라는 동화가 생각난다. 처음에 단추로 수프를 끓인다고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근데 후추가 있으면 쫌 나은데...아 감자도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아! 이러면서 재료를 모아 수프를 끓이는 이야기. 무한도전 시절에도 트로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유재석이 유산슬로 다시 데뷔하는 과정에서 트로트의 대가들이 모여서 후추도 뿌리고 감자도 썰어 넣는 것은 재밌다. 하지만 그것은 무한도전에서 더 잘 보여줄 수 재미이다. 놀면 뭐하니?에서 유튜브라는 거대한 트렌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보고자 한 그 시도는 우선 실패한 것 같다. 김태호 PD는 지금 트로트를 활용해서 (유재석이 그토록 바라던) 새로운 인물을 예능판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에게 바란 것은 그보다 더 큰 일-지상파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탄생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김태호 PD는 고전중이다. 속으로 응원하다가 시무룩해진다.   


유재석은 신인가수 유산슬이 되면서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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