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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유은영 Jan 28. 2022

100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대구근대골목

숨 가쁜 도시 속에 시간이 멈춘 골목이 숨어 있다. 골목길을 따라 타박타박 걷다 보면 시간은 거꾸로 흘러 100년 전 풍경 앞에 멈춘다. 이국땅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향한 사랑, 백합 같은 그녀를 기다리던 설렘 그리고 태극기를 품에 안고 만세운동을 하러 가던 청년과 나라의 아픔을 노래한 시인을 만나는 길이다. 세월이 가도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두런두런 흐른다.



청라언덕에 울려 퍼지는 사랑의 교향악

옛 대구읍성 주변 골목을 이어서 만든 대구근대골목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끄집어낸 소중한 길이다. 모두 5개 코스로 엮었다. 1코스는 대구의 역사를 말해주는 경상감영과 일제강점기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는 북성로를 돌아보는 경상감영달성길, 2코스는 청라언덕에서부터 진골목까지 100년 전 근대문화를 더듬어보는 근대문화골목, 3코스는 주얼리타운을 비롯해 동성로와 서문시장을 돌아보는 패션한방길, 4코스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봉산문화거리를 지나 김광석골목으로 이어지는 삼덕봉산문화길, 5코스는 관덕정, 성유스티노신학교, 성모당 등 천주교 성지 순례 코스로 유명한 남산100년향수길이다. 대구근대골목은 2012년 장애물 없는 관광자원 부문 ‘한국관광의 별’을 수상했고,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곳 100선’에도 선정되어 그 인기를 실감케 한다. 



이중 가장 인기 있는 길은 2코스다. 100년 전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근대골목의 이야기는 청라언덕에서 시작된다. 푸른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청라언덕에는 푸른 눈의 선교사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스윗즈, 챔니스, 블레어 3명의 선교사가 살던 집이다. 서양식으로 지어진 선교사 주택은 유럽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선교, 의료, 역사를 테마로 한 작은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주택 아래쪽에 있는 ‘은혜의 정원’에는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잠들어 있다. 낯설고 척박한 이국땅에서 향수병과 싸워가며 복음을 전파했던 선교사들의 숭고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동산병원의 전신인 제중원을 세워 의료를 베풀고, 근대 교육에 힘썼던 그들. “I’m going to love them.” ‘나는 죽어서도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묘비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90계단 아래 펼쳐지는 뜨거운 민족의 혼

청라언덕에서 90계단을 내려서면 계산성당과 시내로 이어진다. 이 길을 3·1만세운동길이라 부른다.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품은 학생들이 청라언덕에 모여들었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로 달려갔다. 90계단 끝에 서면 1919년 그날처럼 계산성당 너머 대구 시내 전경이 펼쳐진다. 계산성당은 1902년에 세워져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정면에 우뚝 솟은 쌍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성당이다. 서울과 평양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식 건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렸고, 김대건 신부와 김수환 추기경이 사제 서품을 받은 곳이다. 성당 마당에 서 있는 감나무는 일제강점기 화가 이인성의 계산성당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 등장한 ‘이인성나무’로 유명하다. 성당을 나와 왼쪽 모퉁이를 돌아 골목길로 들어서면 이상화 시인의 고택과 마주하게 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로 잘 알려진 이상화 시인이 임종할 때까지 머물렀던 집은 아담한 한옥이다. 석류나무와 우물이 있는 마당은 그때 모습 그대로다. 마당 한편에는 그의 시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이상화 고택 맞은편 한옥은 국채보상운동으로 유명한 서상돈 고택이다. 서상돈은 일본에서 빌린 국채를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며 국민모금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약전골목과 진골목에서 마주하는 추억 한잔

이상돈 고택을 나서 뽕나무골목을 지나면 약전골목으로 연결된다. 약전골목은 걷기만 해도 건강해진다는 말이 있다. 한약 향기 가득한 골목을 걷다 보면 그 말을 실감하게 된다. 각종 한약재가 쌓여 있는 가게들 사이에 40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약령시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볼 수 있는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 앞 야외 한방족욕체험장은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다. 당귀, 박하, 애엽 등 다양한 한약재를 우려낸 물에 족욕을 하고 나면 여독이 말끔히 사라진다. 한의약박물관 옆에는 대구에 처음 들어선 개신교회인 제일교회 옛 건물이 담쟁이덩굴에 덮인 채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다. 골목 끝에는 진골목이 기다린다. ‘길다’의 대구 사투리인 ‘질다’라는 말로 긴 골목을 뜻한다. 나지막한 한옥들 사이에 2층 양옥이 눈에 띈다. 1937년 대구 최초로 지어진 이 양옥은 정소아과다. 대구에 얼마 남지 않은 근대 건축물로 건축학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60년 넘게 수많은 어린이에게 건강과 새 삶을 안겨준 의미 있는 장소다. 이곳의 또 다른 명물인 미도다방도 30년 넘게 진골목을 지키고 있다. 대구의 수많은 문인과 예술인 들이 이곳에서 삶과 예술을 논했다. 약령시에서 공수해온 진한 약차 한잔을 앞에 두고 그 시절의 시 한 구절 읊어도 좋다. 2코스 근대문화골목은 약 1.7km. 천천히 걸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여행정보  


주소 - 대구 중구 달구벌대로 2029 의료선교박물관


문의 - 대구 중구청 053-661-2621 / https://www.jung.daegu.kr/new/culture/pages/tour/page.html?mc=789


식당 

- 약전골목원조국수 : 칼국수 / 대구 중구 약령길 34-20 / 053-256-6420

- 미림 : 돈까스 /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93길 6 / 053-554-6636

- 봉산찜갈비 : 찜갈비 / 중구 동덕로36길 9-18 / 053-425-4203


숙소 

- 공감게스트하우스 : 중구 중앙대로79길 32 / 070-8915-8991 / http://blog.naver.com/empathy215

- 옛구암서원(고택숙박) : 중구 국채보상로 492-58 / 053-428-9900 / www.dtc.or.kr

- 엘디스리젠트호텔 : 중구 달구벌대로 2033 / 053-253-7711 / www.eldishot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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