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이 체질
평양냉면을 처음 접했던 것이 언제더라? 생각해 보면
평양냉면을 모르면 마치 '맛'을 모르는 사람처럼 취급받던 시절,
"나는 '음식'을 다루는 사람이니까 이 정도의 맛을 알아야 해."
라는 의무감이었던 것 같다.
의무감에 맛을 찾아 허우적 댔으니
이 음식을 제대로 경험할리는 없었을 터,
어린 시절 봤던 영화를 어른이 된 지금 볼 때 느껴지는 감정이 다른 것처럼
오늘은 비로소 평양냉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양냉면을 가장 잘 소개한 대사가 있다.
"이 음식이 그래요. 이게 뭐지? 하고 먹다가,
다음날 갑자기 생각이나 그다음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거거든."
-드라마 [멜로가 체질 7회) 중 -
평양냉면은 어렵다.
첫맛에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그렇다.
맛을 책임지는 오미(5가지 맛) 중 어느 것 하나 만족시키지 못하는 음식이다.
심지어는 온도마저 어정쩡하다.
바글바글 끓여 나오는 뚝배기
살얼음 동동 떠있는 기존의 냉면과 비교하면
평양냉면은 시원한 듯 미적지근한,
마치 할머니댁 주전자에 담겨있는 보리물의 온도다.
그만큼 어정쩡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어정쩡한 음식을 먹기 위해 매년
여름이 되면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이유가 뭘까?
'매력'있는 음식이라 그렇다.
매력, 끌어당기는 힘이다.
잘난 것 하나 없이, 신기한 재료도 아닌 것들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매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평양냉면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평양냉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와 서사뿐 아니라,
그것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도 궁금해지는 마법 같은 매력말이다.
그 어정쩡함이 순수한 매력이 되어, 어떤 이야기와도 잘 달라붙는다.
평양냉면이 생각난다는 것은
분명 한밤중 생각나는 야식과는 다른 호르몬의 분비일 것이다.
꽤 많은 '평냉'집 중에서 가장 이 순수하고 어정쩡한 맛을 잘 나타내는 맛집이라 하면
장충동의 '평양면옥'이 아닐까?
평양면옥은 1985년부터 영업을 시작해 벌써 40년 정도 된 오래된 집이다.
우리가 흔히 평양냉면의 계열을 나눌 때, (의정부파, 장충동파로 나눈다..)
장충동파의 원조집이라 생각하면 된다.
오래된 명성에 맞게 식당 안에는 정말 사람이 많다.
젊은 사람 보단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더 많다.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집이지만
이북식 메뉴들도 취급한다.
이북식만두, 어복쟁반, 불고기, 편육/제육 이다.
나는 정말 평양냉면을 먹으러 온 거라
물냉면을 시켰고, 가볍게(?) 만두도 한 그릇 주문했다.
평양냉면의 육수는 잔잔한 육향이 올라온다.
그냥 숟가락으로 홀짝홀짝 먹으면 그 향과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고,
손으로 대접을 감싸 꿀떡꿀떡 두 번 정도 크게 삼켜야 비로소 그 육향과 스치는 메밀향도 느껴진다.
갓 뽑아 살아있는 면발에 툭툭 끊기는 매력까지 좋다.
면 역시 한가득 입에 넣어 입에서 씹는 질감과 향을 느낀다.
새콤달콤,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차가운 육수와 질깃한 칡냉면과는 완전히 다르다.
육수의 맛을 해치지 않게 소금물에 살짝 절인 무와 오이도 식감의 재미를 더한다.
이북식 만두도 훌륭하다.
크고 투박하지만, 슴슴하게 꽉 찬 소에 볼록한 만두가 귀엽다.
'얇은 피'가 뭐냐,라고 비웃듯 두꺼운 피의 쫄깃함이 이북식 만두의 매력이다.
달고, 짜고, 맵고, 새콤하고, 감칠맛이 특별히 도드라지 않은 음식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있다.
바로, 향이다. 거친 메밀의 향과 투터운 만두피의 밀가루 향,
이것이 슴슴한 음식들이 가진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난 평양냉면이 체질이다.
✅pick info
�#평양면옥
�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207
_
�냉면 : 15,000원
�접시만두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