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미식의 경계에서의 도전
흑백요리사는 왜 백종원과 안성재를 캐스팅했을까?
넷플릭스에서 방영하고 있는 흑백요리사가 연일 화제다. 출연했던 셰프들의 레스토랑과 심사위원이 했던 말과 장면에 대한 ‘밈’이 유행할 정도다. 외식업과 음식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외식업 관점에서 바라보는 ‘흑백요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흑백요리사는 왜 백종원과 안성재를 심사위원으로 캐스팅했을까?
흑백요리사는 이름부터 알다시피 ‘흑’과 ‘백’이라는 반대되는 개념을 강조한다. 흑수저, 백수저로 셰프들을 나누어 경쟁을 붙이고 평가한다. 흑수저로 나온 셰프들은 대중에게는 유명하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유명한 분들이다. 백수저는 대중에게 유명한 스타셰프이거나, 경력이 오래된 분들로 구성된다. 백수저 셰프들을 상징하는 단어는 ‘명성‘, ‘기득권’, ‘품격’이다. 반면 흑수저 셰프들을 상징하는 단어는 ‘도전자’, ‘새로움’, ‘스토리’이다. 이러한 흑과 백의 구도로 인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중은 실력자에게 도전하는 도전자의 스토리를 상상하게 만든다.
흑과 백이라는 양강구도로 나누어버리는 것에는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시청자 모두를 납득하게 만드는 기준 말이다. 프로그램이 선택한 객관적 기준은 절묘한 캐스팅이라 평가받는 ‘백종원 대표’와 ‘안성재 셰프’다. 국내 외식업을 상징하는 대중성 있는 백종원 대표와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너무 유명한 안성재 셰프를 심사위원으로 캐스팅한 것이다. 더욱 재밌는 것은 심사위원을 2명만 배치해 진행하는 형식이다. 일반적으로 짝수는 결정을 내리는 일에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한 명의 생각만 갈려도 바로 동점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백 요리사’라는 포맷에서는 오히려 2명의 심사위원이 더욱 객관적인 기준이 된다. 흑백의 기준을 또다시 양강구도로 나눠버려 시청자들의 혼란과 알 수 없는 흥미진진함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포맷의 객관적 기준을 대변하듯 백종원과 안성재는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상황에 서로 싸우기도 하고, 대화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는 등 심사의 객관성을 유지한다. 감정적으로 앞서는 것보다는 논리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이유와 근거를 말하는 모습을 보며 ‘흑백 요리사’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프로그램 자체에서 양강구도를 통해 갈등과 문제를 극대화하고 이것을 또다시 심사위원들의 갈등 구조를 통해 합리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정반합’이라는 논리 전개 방식을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반합은 헤겔의 변증법에서 유래된 개념으로, 하나의 주장을 의미하는 '정(Thesis)'과 그 주장에 반대되는 주장을 의미하는 '반(Antithesis)'이 충돌하여 새로운 주장을 제시하는 '합(Synthesis)'의 과정을 설명한다. 이는 갈등과 대립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이해나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옳다고 생각하는 ’정‘에 완전히 상반된 ’반‘의 영향을 받아 결과적으로 둘의 균형을 잡고 가장 합리적으로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접근이다.
흑백요리사의 출연진들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객관적인 기준’을 만드는 프로그램 자체의 자정작용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객관적인 기준은 이긴 사람, 진 사람 구분 없이 멋진 승부를 했다면 충분히 인정할만한 가치를 만든다. 흑백요리사 이슈에 유독 관심이 갔던 이유는, 대결에서 진 셰프들에게 아낌없이 응원해 주는 대중의 모습이다. 결과 어찌 됐든 그 과정이 공정했고, 최선을 다했다면 박수쳐주는 성숙한 우리의 대결문화가 돋보였다.
외식, 대중과 미식의 경계
흑백요리사는 크게 보면 대중식과 미식의 경계를 다루고 있다. 백종원과 안성재의 역할이 그것을 방증한다. 백종원의 심사는 대중성을 포괄하고, 직관적인 맛과 결과에 대해 더욱 중점을 두고 심사를 한다. 반면 안성재 셰프는 음식의 완결성과 그리고 맛의 조화와 만드는 사람의 의도 즉 과정에 대해 중점을 둔다.
특히 안성재 셰프가 말하는 ‘의도’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이 결국 국내 외식업계의 대중과 미식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그들의 심사도 그들의 색을 아주 잘 나타내는데, 백종원 주로 맛에 대한 평가로 주를 이룬 반면 안성재 셰프는 음식의 완결성과 의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면 밥이 없는 요리에 간이 짠 것에 탈락을 준다던지, 식용꽃과 같이 의미 없이 화려하게 보이기만 하는 장식에 대한 비판을 한다던지, 급식을 요리하는 급식조리사를 평가할 때는 급식을 먹는 초등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던지 등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미식과 대중식을 구분하고 있을까? 어머니가 거칠게 만든 집밥은 미식이 아니고, 셰프가 화려한 주방에서 우아하게 만든 요리는 미식인가? 미슐랭에서 별을 받고 어느 수준의 가격이 되어야 ‘미식’이 되는 걸까? 가끔 고급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의 볼멘소리가 있다. ‘아직, 국내 소비자들은 미식에 대해 이해가 없어’. 화려한 공간과 비싼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미식이 아니다. 소비하는 사람에게 맞춰 설계된 완결성 있는 메뉴와 과정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실제로 허름한 노포더라도 ‘미식’의 범주에 있다고 생각한다. 꼭 그것이 별을 받은 레스토랑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사실 흑백요리사는 100명의 요리사뿐 아니라 백종원이라는 1명의 심사위원도 평가를 받는 자리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외식이라는 분야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외식사업가지만,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요리사들의 기준에서 그는 대중적인 음식만 다루는 사업가라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번 프로그램을 계기로 백종원은 그 한계까지 극복한 모습이다. 뛰어난 미각과 다양하고 깊이 있는 경험을 토대로 ’그‘가 요리사의 범주에서도 인정할만한 실력자라는 것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국내 외식업의 상향 평준화를 상징한다. 실제로 그렇다. 대중식과 미식의 경계는 점점 무너지고 있다. 미식계에 있던 인력들이 대중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로드샵이나 캐주얼 다이닝으로 넘어가고 있다. 요리사에게 최고급이라 대우받던 호텔이라는 곳의 명성은 무너진 지 오래다. 경력 몇 년의 품격 있는 요리보다는 대중의 마음을 읽은 맛집이 더욱 대두되는 시대다. 미식과 대중식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양식 강세에서 아시안의 강세로
흑백요리사 이전에 요리 프로그램들에서 일반적으로 멋지게 보였던 셰프들은 보통 양식을 기반으로 한 셰프들이었다. 드라마 역시 주인공이 셰프면 무조건 양식이었다. 그러나 이번 흑백요리사에서 유독 아시안 음식이 강하게 보인다. 특히 중식의 강세가 뚜렷하다. 중식요리의 최고라 인정받는 여경래 셰프의 등장도 한몫을 했겠지만 아시안 음식을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의 시선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최근 외식업계도 마찬가지로 아시안 퀴진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외식하면 생각나는 파스타, 피자, 스테이크는 이제 조금 진부한 외식메뉴가 된 지 오래다. 외식을 상징하는 메뉴 선택의 다양성이 눈에 띈다. 동네 장사로 치부되었던 한식과 중식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 흑백요리사에서 더욱 실감 나게 볼 수 있었다.
현재 7화까지 나온 흑백요리사를 보며 들었던 생각들을 외식업의 관점에서 이야기해 봤다. 앞으로 어떤 대결이 진행될지 개인적으로 너무 기대가 된다. 그리고 그 결과와 무관하게, 최근 침울했던 국내 외식업계가 대중의 관심을 다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좋다. 힘들과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있을 외식업계에 큰 힘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