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담당교수님을 처음 뵙게 되었다.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담당교수님이신데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젊으셨다. 이제는 성인이 된 나와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교수님이시다.
혈액검사 결과는 모든 수치가 떨어져 있었으며 특히 혈소판 수치는 정상인 13만에 훨씬 못 미치는 2만 대가 나왔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피수치가 낮으면 치료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나는 입원을 하게 되었고, 무시무시한 골수검사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에게 골수검사라고 하면 생각나는 건 드라마 가을동화였다.
2000년에 방영된 오래된 드라마인데 그 당시 인기가 좋아서 모두가 아는 드라마였다.
주인공인 송혜교가 백혈병에 걸려 했던 검사가 바로 골수검사인데, 드라마상에서는 골수검사가 그렇게 아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 같은 것도 없이 엎드려 있었다.
병실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내 골수검사 진행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마취를 한다고 하는데 마취과정이 너~무 아팠다. 마취가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파서 깜짝 놀랐다.
그래도 마취를 하면 본격적인 골수 뽑는 과정은 안 아플 테니까 참자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참았다.
그런데 세상에. 골수를 뽑기 위해 굵은 주삿바늘을 뼈에 꽂아 넣으시는데, 목수가 못 박듯이 엄청나게 힘을 주어 꽂아 넣으시는 게 아닌가? 처음 겪는 극한의 고통에 어찌할 바를 몰라 침대 창살이 뜯길 정도로 잡으면서 참았다.
주삿바늘을 빼시는 느낌이 들어 '아, 드디어 끝났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갑자기 다른 쪽 골수를 바로 뽑아야겠다고 말씀하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 시도했던 쪽에서 골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반대쪽으로 다시 시도했던 정말 더럽게 운이 좋지 않은 케이스였던 것이다.
나는 정말 다급하게 "조금 이따가 하면 안 될까요? 정말 못 참겠어요!"라고 소리쳤으나,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번째 골수검사를 진행했다. 아까와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
마취와 그리고 주삿바늘을 넣고.... 기절.
내 생애 세 번째 기절을 병원 골수검사에서 맞이할 줄이야.
눈을 떠보니 모든 과정은 끝나있었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정신을 조금 차려보니 눈앞에는 친척들과 가족들이 있었다.
언니는 눈물을 닦아주며 나에게 주삿바늘이 얼마나 두꺼웠는지를 설명해 줬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나의 첫 골수검사가 끝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내 골수검사를 담당했던 분이 인턴선생님이 아니셨을까 싶다.
골수검사 후 내 병명이 내려졌다.
'재생불량성빈혈'
난생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언뜻 보면 그냥 평범한 여자들에게도 자주 발견되는 빈혈 중 하나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재생불량성빈혈이란 다양한 원인에 의해 골수세포의 기능과 세포충실성이 감소하고 골수조직이 지방으로 대체되면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모두가 감소하는 범혈구 감소증이 나타나는 조혈 기능의 장애를 나타내는 질환이다.
그래서 그렇게 멍이 들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생리 때마다 피가 멈추지 않았구나..
그래서 그렇게 늘 피곤했구나..
어떻게 보면 이미 내 몸에서 많은 신호를 주고 있었는데, 나는 아빠에게 걱정 끼쳐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잘 참아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