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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09. 2024

나를 살려준 토끼이야기.

토끼혈청으로 치료를 시작하다.

본격적인 재생불량성빈혈 치료를 위해 수능 끝난 다음 해 1월에 입원을 했다.

언니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내 입원 시기에 맞춰 그만두고 함께 병동에 들어왔다.


재생불량성빈혈의 주된 치료방법으로는 면역조절치료 또는 조혈모세포이식(골수이식)이 있다. 형제나 타인의 조직적합성항원(HLA)가 일치할 경우 동종조혈모세포 이식을 시행할 수 있으나 일치하지 않는 경우 면역조절치료를 받게 된다. 최근에는 형제나 타인도 맞지 않으면 조직적합성항원이 반만 일치하는 부모로부터 이식을 받는 반일치 이식도 많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면역조절치료는 사망률이 낮은 반면 30~40%에서 재발을 한다고 하며 10~20%에서 골수형성이상증후군 혹은 발작성 야간혈색뇨증으로 진행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교수님께서는 골수이식이 아닌 면역조절치료로 치료를 시작하기로 하셨다.

면역조절치료가 대체 무엇인지 몰라서 찾아본 결과, 조혈모세포를 손상시키거나 억제하는 활성화된 T림프구를 제거함으로써 조혈기능을 회복하도록 하는 치료법이었다.

그러니까 스스로 골수의 조혈모세포를 공격하는 나쁜 면역세포를 억제하는 치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함께 으쌰으쌰 해도 모자랄 판에 같은 편을 공격하고 있다니.


구체적인 치료 과정은 먼저 토끼혈청을 이용한 약물(ATG)치료와 cyclosporin A(CSA)라는 면역억제제를 함께 병용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교수님께서 토끼혈청으로 치료를 하신다길래 조금 놀랐다. 내가 아는 동물인 그 토끼? 맞다. 그 토끼였다. 예전에 아빠 따라서 토끼탕 먹었던 게 생각나서 토끼에게 묘한 감정이 들었다.

토끼혈청 치료는 수혈처럼 진행되는데, 1인실에서 진행된다.

1인실 들어가기 전 며칠간 4인실에서 지냈었는데 나 빼고 모두 머리카락이 없어서 너무 놀랐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혈액암 환자여서 삭발을 하셨던 거였다.

안 그래도 되는데 나만 긴 머리카락이 있다는 사실이 괜스레 죄송했었다.


1인실은 가격이 다인실보다 훨씬 비싸서 생각도 안 해봤는데 나처럼 면역조절치료를 하는 환자는 치료 도중 면역수치가 낮아지기도 하고 감염에 취약하기 때문에 역격리라고 해서 1인실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저렴한 가격에 지낼 수 있다. 그렇다고 계속 1인실에 있을 수 있는 건 아니고 치료가 끝나고 어느 정도 회복하면 다시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서 다인실로 옮겨야 한다.


토끼혈청(ATG) 치료 중에는 구토, 고열, 근육통 등 다양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데 나는 별다른 부작용 없이 치료를 잘 마쳤다. [그로부터 먼 훗날, 그러니까 현재 다시 한번 토끼혈청 치료를 받게 되는 상황을 겪게 되는데 이번에는 고열로 정신을 못 차렸었다. 그만큼 사람마다 그리고 어떤 상태냐에 따라 부작용도  다르게 오는 것 같다.]

그래도 토끼혈청은 간호사님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치료라고 할 정도로 대부분 부작용을 겪는 것 같다.


토끼혈청 이후에는 면역억제제인 사이클론스포린 약을 오랫동안 복용해야 하는데 나는 2년 5개월간 복용했다. 나의 좋은 면역을 공격하는 돌연변이 같은 면역세포를 억제해 주는 약이다.


내가 복용했던 약 이름은 산디문뉴오랄연질캅셀(줄여서 산디문)이었다. 이 약에 대해서도 에피소드가 있는데, 퇴원하는 날 원외 약국에서 산디문 처방전을 받았다. 그런데 퇴원 후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아빠도 언니도 약국에서 약을 사야 하는 것을 깜빡했다. 이 사실을 내가 사는 보령에 다다라서야 알게 됐는데, 보령 인근에 있는 모든 약국에 전화해 봐도 산디문 같은 약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통 대학병원 인근 약국에서나 취급을 하는 약이어서 결국 우리는 다시 경기도까지 와서야 약을 구입할 수 있었다. 다음 외래 때 교수님께 약 구하느라 고생했다는 얘길 하자 바로 원내약국 수령으로 변경해 주셨다. 잉? 원내 약국에서 받을 수 있는 약이었으면 진작.... 그래도 감사합니다.

면역억제제도 부작용이 다양한데, 나는 딱히 이렇다 할 부작용을 겪지 않았다. 19살의 나는 생각보다 아주 많이 강했다.


입원으로 돌아가서, 1인 무균실에서는 모든 음식이 익혀서 나오는 멸균식만 먹어야 했다. 우유도 멸균우유, 음료수는 입구를 알코올솜으로 꼭 소독해서 먹었다. 그렇게 모든 음식을 조심히 먹어야 했던 때인데 1인실을 탈출하자마자 너무 먹고 싶었던 컵라면을 먹는 바람에 식중독에 걸려 다시 1인실로 강제 연행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다. 컵라면이라니! 게다가 뜨거운 물도 중간에 안 나와서 거의 설익은 컵라면을 먹었었다. 겨우 살려놨더니 제 발로 다시 고통 속으로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

식중독 고열로 고생하느라 퇴원이 늦어졌다. 퇴원했으니 이제 괜찮다며,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나는 김밥을 먹고 싶다고 언니를 졸라댔다. 언니는 김밥이 얼마나 위험한 음식인지 아냐며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때부터 조금 정신을 차리고 음식을 조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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