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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눗 Jun 15. 2019

[프롤로그] 망해보면 알게 되는 삶의 여유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겪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위한 프롤로그

PART 1  |  첫 번째 말

그러니까, 5년 전부터 짧게 얘기하자면


5년 전쯤이었나, 피에르 상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의 앞 30장을 채 읽지 못하고 덮어야만 했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책을 1년에 5권 읽으면 많다고 느낄 정도로 할 일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나니 삶이 너무나 재미가 없었다.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과의 헤어짐,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 밤샘 작업 등 다양한 사건과 시간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아무 생각없이 말그대로 '멍-'하게 창밖을 응시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정말 떠나지 않으면 안될 때까지 이를 '앍---'물고 버텼다. 가시가 돋힐대로 돋힌 나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해질 정도까지. 밤에 침대에 누우면 줄줄 눈물부터 나왔다.


그러다 2년 전 나를 잘 견뎌준 (진짜) 가족같은 회사에 미안한 인사를 고하고, 집 보증금을 탈탈 털어 유럽으로 떠났다. (그 땐 '퇴사'는 나만 하는 줄 알았는데, 마치 시대의 흐름처럼 나와 동시대에 사는 내 또래 친구들이 매우 많이 하고 있었다.)


그 땐 영어 문장 한마디를 만드는 것조차 낯설었는데, 별로 겁도 안났다. 안되면 말지 뭐, 하는 마음으로 도착한 런던이란 땅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순적한(?!!과연...) 노마드같은 인생이 시작된거다.



2년 전 런던가기 바로 전 날 분당의 코코브루니에서




PART 2  |  두 번째 말

내가 한국을 떠난 이유


그간 나에게 한국을 왜 떠났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여기를 왜 왔냐고 물어볼 뿐. 외국에 있던 사람들은 왜 떠났는지 보다 새로운 곳을 온 이유를 더 궁금해했다. 


누군가 해외로 떠난 사람들의 종류를 크게 두 분류로 나누는 걸 본 적이 있다. 한국을 도망치듯이 떠나는 사람들과 정말 자신을 개발하다보니 가게 된 사람들. 대체로 전자를 부정적으로 다루는 법이 많았다. 그렇다면 나는 전자에 소속된 부정적 예시인걸까.


개인적인 의견으론 늘 익숙한 삶에서 떠나오면서 깨달을 수 있는 게 너무나도 많아서 전자로 시작하더라도 후자로 마무리될 수도 있고, 전자의 삶에 그치더라도 그 사람이 삶에 즐거움과 성찰을 누렸다면 나는 (당연히) 매우 긍정적이라고 본다. 


자기 계발과 스펙주의인 한국 사회에서 살다보니, 아무 것도 안해서 허공에 뜬 시간에 대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철벽치고 은둔하며 단절하고 사는 잠시 간의 삶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그냥 당신의 인생을 살아라." 


후회없을만큼 행복하고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을 갖는 삶이 우리에겐 필요하지 않은가?


난 내가 그저 '이 시대 산물의 일부'일뿐임을 인정한다.'나를 사랑하는 법, 위로, 나답게 살고 싶어, 미니멀라이프, 노마드, 퇴사, 여행, 서른 넘어 떠난 해외' 등의 이야기들은 내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서점을 빼곡히 덮을 정도로 인기있는 주제다. 


이 책 저 책 살펴보니, 다들 견딜 수 없어서 (국내든 해외든, 자신이 있는 자리든, 없던 자리든) 어디론가 떠난다. 그 전엔 떠나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서툴게 부딪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도피하듯 마무리하고 싶은 이는 없기에 떠나고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떠나는 동안 뭘 느꼈고, 뭘 깨달았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을 하는 지에 대해 더 몰두하는 모습들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게 왜 떠났냐고 묻는다면, 별로 흥미있게 할 말이 없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곳에 가서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가 내겐 더 큰 관심이고 나누고 싶은 주제이기 때문에. 


여러 이유로 떠나왔지만 결국 생각지 못한 걸 발견했고 경험했으며 깨달아 가고 있다. 아마 몇 개월 내에 한국으로 다시 '떠나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는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2년 전 런던의 닐스야드.



PART 3  |  세 번째 말

그래서 여기서 나누고 싶은 말은,


2년 전 한국을 뜬 후 약 7개월 정도 아주 느리게 유럽을 여행했는데, 느린 유럽 여행 중에는 마치 '먹기사' 여행처럼 삶과 사랑과 인생에 대해 혼자서 논하며 생각하고 묵상할 수 있었다. 약 5년 간 할 생각과 깨달음의 분량을 압축해서 다 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철저한 외부인으로 살면서 자유를 누렸고, 이후 또 새로운 세계에 소속이 되어 도전을 지속했다. 

별로 좋지 않은 영어 실력으로도 런던의 매우 작은 회사에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가 또 몇 달 쉬고 다른 런던 회사에서 7-8개월을 일했다. 그 회사에서 스폰서십 비자를 준다고 할 때 즈음에 다양한 일들이 발생했고, 나는 어느새 생각지도 못한 싱가폴이란 곳으로 와서 2주 즈음을 보내며 새로운 삶을 또 시작하고 있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일어난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하도 다이나믹해서 언젠가 방출하고 싶은 목적으로 몇 년간 홀로 글을 쓰고 차곡차곡 쌓아왔는데 누군가 읽을 글로 정리할 새도 없고 행여 1명이라도 읽으면 왠지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망했던 것들로 부터 뭘 배웠는지, 얼마나 바보같은 일을 많이 저질렀고 실패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뭘 배웠는지를 정말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드는 거다. 


커리어에 관해서 누군가는 성공기를 쓴다면, 나는 실패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런던 탑샵 탑맨의 디자인 잡에 서류가 통과되면서 난생 처음 비디오 인터뷰를 보다 망한 이야기, 4명 밖에 없는 회사에 일주일만에 디자이너로 취직되었다며 헤롯 백화점의 인터뷰 제안을 거절한 바보같은 이야기, 처음 받는 전화인터뷰에서 런던 토박이 HR직원 말투를 못알아 들어서 Sorry, Parden을 계속 반복하고 퇴짜맞은 이야기, 수많은 회사에게 Unfortunately... 로 시작하는 메일을 받았던 이야기들. 그 와중에 내 멘탈을 살린 철학이 뭐였는지. 


어떻게 했더니 망했더라는 경험은 다음엔 그렇게 하지 말아야한다는 걸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더 중요한 건, 망해도 괜찮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놀라운 결론을 알게 된 거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꿀팁을 많이 알게되서 기록해두면 아마 나도 다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흐뭇한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행'이라는 단어를 보면 괜히 부끄러워 '저장'만 눌러두고 싶은 욕구가 치솟지만.)


사실 이렇게 과거에 실패한 기록들도 추후에 많이 남길 계획이나, 우선은 제일 흥미진진한 현재진행형의 (망하고 있는) 이야기를 먼저 나누고 싶다. 런던을 떠나 싱가폴로 와서 UXUI디자이너(프러덕트 디자이너)로 구직 생활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 겪게되는 멘탈이 흔들리는 다양한 경험들. 


앞으로도 가득할 나의 실패기와 그 와중에도 흐뭇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꼼꼼히 기록해두려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었는지,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는지, 무슨 글을 읽었는지, 과거의 어떤 사진에서 위로를 받았었는지 등의 내 모든 이야기가 나를, 혹은 그 누군가를 위로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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