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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눗 Aug 15. 2022

선이 거의 안보이는데 너 양성 맞아? (응, 맞아)

싱가폴에서 코로나 확진 첫 3일 간의 기록

#1. 금요일, 목에 편도가 살짝 부었을 뿐 


매니저가 며칠 전에 싱가폴에서 확진자가 늘고 있다는 기사를 공유해줄 때 즈음 아니나다를까 팀에서 꽤 여러 명이 확진되며 회사 슬랙(Slack)에 '입에 온도계를 물고 울상을 하고 있는 이모티콘' 상태표시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몇 번 확진된 친구들이랑 확진 바로 전날 저녁을 같이 먹는다던가 시간을 하루종일 같이 보냈는데도 나의 자가진단키트에는 늘상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에 이번에도 별일 없이 넘어가나 했다. 


회사를 퇴사일 1달 전 즈음을 둔 금요일. 뭔가 목에 침을 삼키는데 편도가 부은 느낌이 아주 살짝 든다. 평소에 먼지가 많으면 목에 편도가 살짝 붓곤 해서 그저 먼지를 쓱쓱 닦고 청소를 했을 뿐 별 다른 생각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ART(자가진단키트) 를 했을 때는 당연히 음성이었고 큰 걱정 없이 출근을 했다. 금요일이라 다들 재택을 많이 해서 사무실에 사람도 별로 없고 괜히 조심스레 혼자 구석에 박혀있었다. 


점심이 지나고 나서 슬슬 목이 더 부어오르고 목이 쉰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이전 확진경험이 있는(?) 디자이너 친구가 혹시 모른다며, 빨리 집에 가라고 하길래 냉큼 짐을 다 싸들고 그랩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점점 몸이 안좋아지기 시작하는데 뭐랄까 약간 몸살이 시작될 때의 기분이다. 기운이 없고, 자리에 앉아있기가 매우 피곤한 그런 상태다.


집에 와서 누웠는데 다시 앉아서 온라인 회의에 접속할 힘이 없었다. 편도가 붓고 코와 목 사이의 부분이 따끔따끔하게 건조한 상태일 뿐인데 온 몸에 힘이 나질 않고 피곤이 몰려왔다.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아무래도 코로나 증상인거 같긴 한데 여튼 회의 참석이 어렵다고 얘기 하곤 랩탑을 꺼버렸다.


더 심해지기 전에 약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회사 보험이랑 연결된 메디컬 앱에 들어가서 의사와 영상통화하기 기능으로 전화를 걸었다. M-Plify라는 앱인데 UX라던가 UI는 수정과 보완이 급히 필요해보이긴 한데(...), 제공해주는 기능은 최첨단이다. "Feeling unwell? Start a video call with our doctors now!(몸 안좋아? 우리 의사들이랑 지금 비디오콜 해!)" 요런 큰 배너를 빵 누르면 간단하게 뭐가 필요한지(아픈지, 피부 문제인지, 건강검진 관련인지 등) 대충 묻고, 자기 증상을 입력하고 확인을 누르면 곧 대기중인 의사와 비디오 통화 연결이 된다. 


의사가 내 증상을 듣더니 씨익 웃는다. 

"괜찮아 괜찮아, 들어보니 내가 직접 경험해본 결과 아마 너 내일쯤은 양성 나올 건데, 물 많이 마시고 푹쉬고 다음 주 수요일쯤에 자가 검사하고 음성나오면 밖에 나갈 수 있어. 알겠지? 약줄게. 병가 진단서 필요하지, 끊어 줄까?" 


괜찮을 테니 걱정말라는 표정으로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는 내가 다음날 바로 양성이 확실하단거다. 그래도 "자가 검사는 음성인데" 이런 표정으로 일단 병가까지는 필요없다고 했더니 오히려 본인이 더 놀랜다. 


"응? 정말 필요없어? 흠... 알겠어 일단 약을 처방해 줄게." 


아주 흔한 코로나 증상 처방(?)약


땡큐를 날리고 전화를 끊었다. 약을 몇 시간 후에 배달 받았는데, 그냥 Over-the-counter (처방없이 약국에서 살수 있는 약)들로 보인다. 파라세타몰과 Viocil 이라는 캔디용 목통증 약. 뭐랄까 좀 더 심각한(?) 처방약을 주려나했는데 아직 음성이라 그런가 왠지 허탈하다. 어쨌던 목은 아프니 Viocil을 먹었는데 시중에 파는 Difflam 이라는 비슷한 약보다는 훨씬 목이 편안해지고 통증이 살짝 완화되었다. 


밤이 되어갈수록 몸에서 열기가 느껴지고 장기가 살짝 욱신거리면서 아픈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온도를 재어보니 37.5도다. 두통도 없고 이 정도 미열로 그치는 게 어디냐며 감사한 마음에 잠에 들었다. 




#2. 토-일요일, 이거 양성맞아?


토요일 아침에 검사한 자가진단키트에서는 라인이 아주 희미하게 있는 듯 없는 듯 보였다. 너무 희미해서 잘 안보일 정도라고 해야하나. 이걸 양성이라고 해도 되는 건가하는 의구심이 들만큼 굉장히 미약한 라인이다. 양성 경력이 있는 친구한테 사진을 보내니 "엇... 양성 맞는거니?"라며 답이 온다. (훗)


그동안 자주 자가진단을 했던 경험들에 비추어보자면 '음성'일 경우에는 그 라인의 흔적은 단 1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깨끗한 하얀색이어야 한다. 그런데 늘 백색이던 'T'쪽 부분에 아주 아주 아주 희미하게 라인이 보이니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애매한 상태다.  


드디어 일요일 오전 다시 검사를 하니 어느정도 라인이라고 할만한 게 아주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1에서 100까지의 선명도로 이야기 하자면 토요일은 3-5%면 일요일은 8-10%가 된거라고 해야할까. 불꽃같이 구글을 검색해보니 아주 조금이라도 매우 희미하게라도 'T'부분에 라인이 있으면 일단 바이러스가 조금이라도 뭍어나온 것이기 때문에 양성이라고 할 수 있단다. 


금요일부터 쭈욱 격리를 진작에 하고 있었으니 다행히 퍼뜨릴 위험은 없고, 차라리 빨리 정확하게 진단이 나오면 회사에도 알리고 여러 약속들을 미리 옮길 수 있을텐데. 이렇게 사진으로는 감히 잘 보이지도 않는 결과로 뭔가 확정짓기도 애매했다. 


슬슬 기침이 시작되었다. 쿨럭쿨럭하는 기침은 뭐랄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리는 기침인데 자주 있진 않고 종종 간지러운 느낌이 들 때 하루에 다섯 번 정도는 하는 수준이랄까. 편도가 부은 느낌은 조금 더 심해졌고 침을 삼킬 때 불편한 정도다. 목과 코, 가슴까지 연결된 부분이 매우 건조해져서 살짝 따가워진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고 그 건조함때문에 점액이 더 평소보다 막 생성되어서 코도 막히고 가래도 생기고 뭐 그런 증상이다. 증상이 막 심하진 않았지만 혹시나 염증이 더 심해지면 안되니 꾸준히 파라세타몰 500g을 하루 세 번 먹어주었다. 계속 피곤하고 낮이 되면 몹시 힘이 없고 졸리다. 그래도 두통이나 심한 열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주말 간 방에 콕 박혀있었다. 방의 양 쪽 벽이 모두 창이어서 풍경이 훤히 보이는데 푸른 나무들이 많아서 아름답다.




#3. 월요일, 드디어 선명해진 두 줄.


아침이 되고 몸이 조금 괜찮아졌다는 생각이 들면서 역시 코로나가 아니었나 혼자 생각했다. 아무래도 증상이 슬슬 시작될 것 같은 시점부터 방에서 콕 박혀서 푸우욱 쉬었더니 몸이 더이상은 나빠지지 않았나보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점심쯤 일어나 검사를 해봤다. 


매우 선명한 두줄이다. 이번에는 약 50% 이상의 선명도였다. 증상의 강도와는 상관없이 코로나는 더 선명하게 "나 코로나 맞소"하며 본색을 드러냈다. 


며칠을 쉬어서 그런지 큰 타격감은 없다. 그제 밤에 땀을 흠뻑 흘리고 잔 이후 열이 더이상 오르지 않았다. 목이 따가운 증상도 (벌써) 조금 완화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캔디형 약도 하루 세 번 츕츕 하면서 말 한마디도 안하고 며칠을 보냈고, 미지근한 물을 계속 마셔댔으니 괜찮아진게 아닐까. 괜찮은 줄 알고 친구랑 통화하면서 말을 꺼내는데 목이 엄청 쉬어 있었다. 말을 하다보면 목 깊은 곳으로 연결되는 곳까지 가래가 느껴져서 자꾸 뱉어내고 싶어지면서 증상이 조금 더 악화되어지는 것 같다. 어깨쪽의 뭉치는 느낌과 몸에 살짝의 근육통은 계속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갈수록 근육통은 미세하게 사라져갔다. 


창밖 아래로 보이는 산책로. 동남아 특유의 나무 덕에 분위기가 더 좋다. 



하루 종일 집에 콕 박혀 쉬었다. Thank God, 방을 스튜디오처럼 큰 곳으로 화장실도 넓찍하고 좋은 곳으로 구해서 다행이었다. 주변에 깔려 있는 나무들 덕에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꽤나 근사하고 좋다. 이제 열흘 후면 집을 비워야하는데 코로나가 계약일이랑 겹치지 않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거의 1년만에 배터리를 새로 갈아서 정신차리게 만든 오래된 카메라를 손에 잡고 창밖 풍경을 마구 찍어댔다. 이제 곧 싱가폴을 뜨면 나는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까. 1년 내내 덥기는 더웠지만 그래도 습도가 우리나라만큼은 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종종 야자수로 예쁘게 꾸며진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땀을 송글송글 흘리며 시원한 아이스 라떼를 읽으며 책을 보던 그 여유는 그립겠지. 



종종 사람들이 러닝을 하는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뷰.



코로나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삶을 뒤틀어버렸다. 우리는 10년, 20년 후 이 시간을 어떻게 회상하고 있을까. 많은 누군가에겐 죽음에 대한 위협이고 고통의 순간이었을 이 시기를 우리는 어떻게 기록해야할까. 방에서 쿨럭거리며 격리하는 중에 보던 유튜브 영상에서 어떤 여자분이 흘러가는 말로 했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아, 그 때 어땠는지 기록을 해둘 걸 그랬어. 기억이 정확히 안나는데... 우리 그 때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나눴지. 아, 기록을 해뒀더라면..." 


중년을 훌쩍 넘은 여성분이 인터뷰를 하는 영상인데, 그 여자분은 자신 틈틈히 해둔 짧은 기록이나 메모로만 기억을 의지하고 있었다. 특정부분에서 매우 아쉬워하며 자세한 기억을 못하는 것에 대해 살짝 한탄하는 말을 했는데 그게 사실 인터뷰의 핵심은 아니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와닿았는지 모른다. 


이 방에 앉아서 기록을 하고 있는 나는 1년, 2년, 10년이 지나고나면 기억에 남지 않는 아주 일말의 순간일 뿐이다. 기록을 해두지 않으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지고 마는 순간이 언젠가는 나의 삶을 돌이켜 기억하고 싶을 때 그리운 순간이 되지 않을까. 


지금 당장을 돌아보면 이게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한 의문이 들 정도로 당연한 일상이지만 사실 5년만 지나도, 그 나라, 그 장소에서 내가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무슨 행동을 했는지 그렇게 궁금하지 않을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틈틈히 기록을 하련다. 그 때 나의 코로나 초기 경험은 어땠었는지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싱가폴에서의 삶이 어땠는지 내 뇌는 모두 기억할 수 없게 될테니 말이다. 




가장 흔한 일상의 하루가 훗날에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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