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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눗 Jul 06. 2022

친오빠가 블로그를 시작했고 나는 퇴사를 했다.

관계없는 두 이야기의 상관관계


최근 친오빠가 블로그를 쓰기 시작하더니 얼마 되지 않아 하루에 라이크를 100개를 받는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오빠는 그냥 막쓰는 거라는 둥, 이웃들을 많이 삼으면 자동으로 라이크는 쉽게 받는다는 둥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긴 하지만 사실 라이크의 수보다 오빠의 필력에 깜짝 놀랬다.



가족이라 다 알 것 같지만 글로 뱉어내야만 알게되는 그 속마음은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말을 재미나고 맛깔나게 잘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글까지 잘 쓸 줄 몰랐다. 나는 이걸 느끼고 저걸 느꼈다로 흐지부지 감정적으로 "엣퉤퉤"하고 뱉어내는 글이면, 오빠는 뭐랄까 교훈이 있고 짧은데 굵었다. 읽기가 몹시 편하고 쉽더라.



게다가 거의 매일 쓴다. 늘 글을 머리로만 쓰고 대충 저장해두곤 겨우 마무리 짓는 글이 수 개월에 한 개 꼴인 나랑은 아주 비교도 안될만큼 성실했다. 난 늘 머릿속으로 쓸 말이 많아도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집에 오면 밥먹고 기절하다싶이 눕기에도 바쁜데, 아들 돌보고 글까지 거의 며칠에 한번은 꼭 쓰는 걸 보니 뭐랄까 왠지 모르게 힘이 났다. 그래, 나도 써야지 - 하는 마음.



'기록'하거나 '생산'해내지 않은 생각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곧 헤어지게 될 싱가포르 우리집 옆 길. 커다란 나무들이 예쁘다.


퇴사를 앞두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사실 오빠의 블로그에서 '일할 때 30퍼센트만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주장을 보면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와... 왜 나는 이걸 지금 알았지."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아무도 그렇게 안시켜도 알아서) 100퍼센트를 쓰는 외노자다. 그러니 집에 와서 밥먹을 힘밖에 안남아서 그 외 뭘 할 힘이 없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부릉부릉하기 시작해서 근무시간에 수다 떠는 것도 아까워서 일만 죽도록 한다. 이게 굉장히 아이러니한게, 단기간(2-3년) 동안 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어서 굉장히 유익한 반면, 절대 오래 달릴 수가 없다. 내 직속 보스가 아껴주고 사랑을 듬뿍 주면서 진급도 빠르게 하지만 거기에서 맞이하게 되는 최종 몬스터 - 번아웃을 맞이 하는 순간 게임 끝이다.



그 순간을 맞이하면 나달나달해져서 뇌가 더이상 뭘 더 받아들일 수가 없는 상태가 되고 인생이 무슨 의미인가하는 고차원적인(?)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아주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고민하고 번뇌하다가 결국 퇴사. 그냥 '힘들다'를 뛰어넘어서 신체적으로 숨이 잘 안쉬어진다던가 뭐 그런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몰고가니까 더 문제다.



뭐 그래서 이번에도 퇴사를 하게되었다. 1년 동안 고민하고 미뤄오다 한 달 정도 매니저에게 언질을 주다가 드디어 마무리했다.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너무 좋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만큼 아쉽지만 그래도 그것빼고는 견딜 수 없을만큼 기쁘다.



이 곳은 퇴사를 하면 보통 1-2달 가량의 '노티스' 기간을 갖게 되는데 우리 회사는 2달이라, 사직서를 낸건 1달전이지만 아직 퇴사일까지 1달이 더 남았다. 가기 전까지 할 일은 다 하고 가야한 다는 생각에 내 자료들 정리를 아직 하나도 못했다. 핸드오버(Handover) 문서를 작성하고, 회사 내 Wiki페이지에 디자인 자료들 링크랑 Summery를 다 정리하고 있다. 



요즘 계속 생각하는 건, 회사 일에 우선순위를 잘 세워서 나의 핵심 에너지를 제일 중요하고 성과가 높은 프로젝트와 중요한 단계에 쏟아야 한다는 거다. 나의 100퍼센트를 모든 일에 골고루 쏟아버리면 더 오래 달릴 수도 없고, 사실 별 효과도 없는 것마저도 죽도록 열심히 하는 매우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이 될 수도 있더라. 



나의 30퍼센트를 가장 재미있고 성과가 높은 것에 쏟아야 내일 회사 갈 맛이 날거다. 회사갈 맛이 나면 신이 나고, 퇴근할 때 일이 더하고 싶어서 아쉽고 뭐 그렇게 되면 제일 롱런하고 이상적인 생활이 아닐까. 물론 여기에서 '회사일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냐'는 아주 정당한 반문이 들어올 수는 있겠지만, 하고싶지 않은 일들이 들어올 때 일단 '생각'을 해봐야 한다. 



"이 일이 진짜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의 결과와 성과를 낼 일인가?" 

아니라면 왜 하는가? 성과를 잘 낼 것, 재밌을 것으로 바꿔서 해야하는 거다. 그런데 나도 안다. 그게 어렵다. 막상 미친듯이 몰려오는 일들을 받아들이다보면 다 중요하고 급하게 여겨진다는 거다. 안하면 안되는 일이라도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고 일을 잘 쳐내야하는데 그럴 생각을 할 시간도 없으면 그냥 (짜증나면서도) 해치워버린다. 근데 그게 결국 내 에너지를 그 곳에 낭비한 꼴이기 때문에 나도 회사도 손해다. 



퇴사 전까지 이 걸 한번 연습해보고 테스트 결과를 또 기록에 남겨봐야겠다. 

그리고 퇴사 후에 까먹지 않도록 그 전에 했던 일들도 기록에 남겨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큰 고민 안하고 바로 기록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실 이렇게 일기같이 쓰다보면 괜히 자괴감들어서 또 못올리고 저장만해두다가 영원히 못 발행하기 쉽상인데, 오늘은 그냥 올리련다. 6개월 한 번 쓰는 눈치본 글보다는 하루에 한번 올리는 대담한 글이 내게는 더 이득일 거라 믿는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이런 여유를 즐기시기를 바라며...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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