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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눗 Jul 18. 2019

네 합격 레터를 찢어버릴 수도 있어

싱가포르 최종 면접 후 HR과의 멘탈 털리는 통화. 

최종 인터뷰가 무사히 완료되고 레퍼런스 체크하는 시간(추천인들에게 연락을 취해 갖가지 확인하는 절차)이 끝나고 나면 그냥 오퍼를 바로 받을줄 알았다. 구지 큰 회사에서 내가 일해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가, 이 모든 과정이 너무 길게 늘어지니 심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내 손안에 공식 오퍼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게 '잠정적'일 뿐 '확정적'인 것이 아니지 않은가. 


엎친데 덮친격 A사의 탤런트 아쿼지션(TA) 비즈니스 파트너 측에서 전화가 왔는데, 매우 공격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면접 기간 내내 동일한 대답을 기계처럼 반복해와서 이미 그들이 다 알고 있는 줄 알았더니, 또 똑같은 질문을 물어봐서 당혹했다. 특히 가장 먼저 내게 연락을 해온 사람이 해당 TA 팀의 리쿠르터Y였기 때문에 내 면접 내용들이 당연히 기록되어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늘 나를 담당해왔던 그녀 Y가 HR및 TA관련 대화를 하자더니 다른 (강한) 여성분을 데려와서 통화를 시작했다. 질문을 하는 것이나 내 반응에 대처하는 스킬이 꽤 노련한 걸보니 매니저 급으로 보인다. 그녀는 폭포수같은 질문을 쏟아내면서 마치 내 오퍼를 손에 쥐고 당장 찢어버릴 수도 있는 것 마냥 굴었다. 아주 미세한 추측으론 샐러리를 높여주지 않으려는 협상에 돌입한 것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이전에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알 도리가 없었다. 


런던의 마지막 회사는 매우 쿨하게 금액과 업무 시작시간 등을 메일로 먼저 보내주고, '당연히 할거지?' 였는데, 여기는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고 '찢어버릴수도 있어, 말조심해'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하는 질문들의 문장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거듭 되묻고, 재차 질문의 목적을 다시 확인해야 했었다. 


무엇보다 본 대화의 토픽이 B사(오퍼를 준 또 다른 회사)가 그랬던 것처럼 연봉에 대한 이야기, 혹은 오퍼를 수락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확인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큰 오산이었다. 대화의 내용은 오퍼를 주기 전에 나를 깨부수어 재점검하겠다는 의도로 보였는데, 초반에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두루뭉술 대답하거나 같은 말을 재차 반복했다.


다른 회사의 오퍼가 있다고 들었는데 맞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점점 질문 공세가 거세어지면서 나의 멘탈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되었다.


"니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니? 뭐, 커피를 한잔 한다거나 그럴 때 말이야."

그녀의 본 질문의 의도를 못알아 들어서 처음엔 헛소리를 꽤나 했었다.

- 아, 그 그게, 하하하, 그러니까, 내 친구들이나 동료들은 나를 긍정적인 사람으로 많이 얘기하곤 해. 그리고 일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 커피 한 잔 하면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눠. 예를 들면, 한국에 있던 보스랑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고, 지난 런던에 있을 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동료랑은 회사 마치면 커피 한 잔 하면서 일이나 삶에 대해서 늘 대화하고 재밌고. 그러다보니 일에 대해서 더 쉽게 유저 데이터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을 주고받기 쉬웠어. 그리고 마케팅 동료도 ... 어쩌고 저쩌고 주절 주절. 


준비가 되지 않은 나는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고, 그녀는 내 대답에 아무런 대꾸가 없이 다음 질문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네 백그라운드라던가, 왜 우리 회사여야하는지 좀 설명해봐' 

- 내 백그라운드? 그러니까 너 말은 내 경력을 말하라는 거니? 

'어'

- Well... 나는... 주절주절.


'아니 왜 프리랜서로만 일한 이유가 뭐야?' 

이게 제일 황당했다. 그녀는 내 CV를 보는 건지 마는 건지, 계속해서 엉뚱한 질문을 했다.

- 응? 2010년에 1년 간 S회사에서 한 것만 프리랜서야.


'넌 풀타임을 원하지 않아?' 

- 응? 아... 그러니까 그 회사에서만 석사 과정이랑 동시에 일하느라 프리랜서로 했었고, 나머지는 다 풀타임이었어. 나는 당연히 늘 풀타임을 선호하지.


'그럼 런던에서 일했던 회사도 다 풀타임이었어?' (응...) 

'아니, 근데 너 런던에서 첫번째 회사에서도 몇 개월밖에 안있었잖아, 왜 그랬어?'

'그럼 그 다음 회사가 비자를 준다고 했는데도 왜 떠난거야?'

'니 말이 이해가 정확하게 안되는데, 다시 좀 설명해봐. 나는 너가 왜 떠났는지 이해가 안되는데?'

회사를 떠난 이유라던가 왜 싱가폴로 옮겼는지 등에 대해 나는 내 커리어의 측면에서 매우 솔직하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물론 지난 회사의 민감한 사항은 제외한 채. 그러나 그녀는 도무지 비자를 주겠다는데도 오겠다고 결정한 내가 이해가 안된다며 재차 물어보았다. 


일단 런던은 회사가 외국인인 내게 비자를 주려면 본 고장의 인물들을 고용하는 것보다 꽤나 귀찮은 일을 많이 해야한다. (추후에 또다른 포스팅으로 자세히 다루겠지만) 난 해당이 없었지만, 까다로운 회사의 경우엔 1년 내에 그만두면 회사가 추가적으로 지불해야했던 비용을 내고 가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우리 회사의 경우는 길게 함께 할 직원을 선호했기에 내가 비자를 지원받고 훌쩍 떠나버리면 그들에게 손해를 주는 꼴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내용과 더불어 커리어 관련된 이야기를 구구절절 설명하고나서도 그녀는 '아- 그렇구나'하는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 3개월치 페이슬립 보내줘'(이미 보냈는데, 메일 보면 있지 않니?)

'아, 그래, 응. 그렇군. 이거 내용 좀 설명해줘. 이해가 안가는데?'

'그럼 왜 A사에 오고 싶은건데?'

'너가 싱가포르에서 원하는 건 뭔데?'


모든 질문을 끝을 내고나서 나도 왠지 오기가 났다. 그녀가 물어볼 게 없냐고 하길래, 즉시 이제 앞으로의 프로세스를 설명해달라고 했다. 언제 공식적인 오퍼가 날 수 있는건지, 어떤 과정을 내가 더 밟아야 하냐며. 


그녀는 이번 통화가 끝나고 내일이나 모레 즈음에 연봉 금액을 알려줄 것이며, 그 이후에 내가 수락을 하면 필요한 서류들을 내가 전달해주어야 하며 그러고나서 공식 오퍼가 나올 거라고 했다. 정확한 연봉 금액을 알려주겠다는 그녀의 말을 듣곤, Benefit package (직원 복리 후생제도)도 같이 알려주면 좋을 거 같다고 돌려말하며 오퍼의 자세한 내용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으니 내일까지 알려주면 정말 좋겠다며 답했다. 


그녀는 여전히 당당하고 힘이 있는 목소리로 이 통화의 힌트를 흘리는 질문을 던져왔다. 

"네가 메일에 S$XX 금액을 네 기대연봉으로 썼는데, 우리가 그 금액을 주면 너 바로 수락할 거 같니?"


난 딱히 돈을 더 갈취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는 성격이 아니다. 타 회사의 오퍼도 오늘 내에 알게 될거라서 업무나 복지, 동료 등을 비교해서 정할거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회사의 오퍼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도 될지 말지 도무지 정신이 차려지지 않아서 결국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아... 그러니까, 아무래도 연봉이랑 베네핏 패키지를 좀 같이 보고 생각해봐야 할 거 같은데, 당연히 너희 회사가 나의 탑 초이스고, 매우 관심있게 보고 있거든. 그러니까 정말 정말 내가 좋아하는 회사고 동남아를 리드하는 회사고, 너네 디자인 리드들도 너무 영감넘치는 분들이고 그래서...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어?'


떨어지는 게 두려웠다. 오퍼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돈이고 나발이고 그냥 '오케이, 널 사랑하니까 날 받아줘'하고 내지르는 게 제일 편한 일이다.  너무나도 감개무량한 일인 건 사실이나, 다른 회사의 오퍼라는 찬스는 오히려 내게 더 고통스러웠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협상거리일진 몰라도 내게는 한 쪽에 'No'를 말해야하는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전화를 끊고, 나는 울고 싶었다. 잠정적 합격자로써 탈락한 첫 케이스가 될 것만 같았다. 분명 며칠 전 잠정적 합격이라는 말을 듣고, 이제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건만. 한 달 가량이 지나고서도 끝이 나질 않으니 눈 앞이 깜깜했다. 도대체 이 것이 무슨 상황인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주위 경험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이런 과정은 최종 오퍼의 연봉을 결정하기 전 최대한 지원자를 겁(?)줘서 조금 더 적은 연봉으로 협상하려는 HR 쪽의 심리적 전략이라는 거다. 물론 이 지원자가 제대로 된 녀석인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한 일종의 확인 절차일 수도 있으나, 보통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인력을 합리적으로 고용하려는 HR의 책임감과 관련이 깊단다.


이러한 과정은 회사의 방침이나 규모, 혹은 HR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 무시무시한 A사와의 통화가 끝나고 저녁 늦게 B사의 늘 친절한 그녀 레베카와의 달콤한 통화가 이를 증명했다. 그녀는 레퍼런스 체크 단계였던 2명의 내 라인 매니저와 통화를 잘 마쳤다며 감사를 표하곤, 내 예상을 넘는 좋은 조건을 가진 오퍼 디테일을 상세하게 구두로 설명해주었다. 


그녀의 상냥한 태도와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서 이런 회사랑 함께 일하고 싶다며 그 날 바로 오케이를 지를 뻔했으나, 생각해보면 내가 HR이랑 일을 하진 않을테니 잠시 참아야만 했다. 


어쩌면 회사의 규모상 A사가 좀 더 당당한 위치에 서있기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고도의 심리적 전략만큼 중요한 게 지원자의 심정이다. 다그쳐서 지원자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조금 더 적은 비용으로 고용하게 되는 게 긴 안목으로 볼 때 정말 좋은 전략일까.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는, 조금이라도 큰 회사의 경험을 쌓고 싶어서 A사에 기울었던 마음이 다시 B사의 친절함과 배려라는 지렛대로 두 회사를 동등하게 고려하게 만드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앞으로 며칠 간 더 높은 협상의 고비를 넘겨야 하는 게 벌써부터 떨린다. 잠정적 합격이란 결국 아직 기뻐할 때가 아닌 건 분명한가 보다. 이제 그들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 나의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할까. 이번 한 주가 매우 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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