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도 Jul 31. 2024

아날로그식 육아를 지향합니다

사람은 원래 아날로그니까요

나는 큰 도시도 아닌, 그렇다고 시골도 아닌 위치가 애매한 위성 도시에서 살고 있다.

아이를 낳기 전 막연하게 꿈궜던 것이 있다.

‘스위트홈’에 대한 막연한 상상 말이다.

잔디가 푸릇푸릇 펼쳐진 너른 마당에서 아이와 뛰노는 꿈.

아침에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마당으로 나와

눈부신 햇빛 아래서 기지개를 켜며,

아침 식탁에 올릴 싱싱한 상추, 토마토를 따는 꿈.


그러나 현실은 아스팔트가 끝없이 펼쳐진 곳 위에 세워진 고층 아파트가 아이의 첫 보금자리가 되었다.

고민이 되는 것은 아이에게 자연을 일상으로 접하게 해주는 방법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하이테크에 둘러싸인 가공된 세상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세계를 먼저 소개해주고 싶었다.


사람의 지문처럼 제 각각의 문양을 가진 나무껍질도 만져보고,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온몸으로 맞고,

거칠거나 보드라운 흙이 깔린 오솔길도 함께 걷고 싶었다.


자연에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날것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사람도 자연의 한 조각이자 일부로서,

자연을 알아가는 일이 유전자 지도 어딘가에 빨간 라벨이 달린 채 ‘매우 중요’ 스탬프로 찍혀있을 것이라 믿는다.

오랜 시간 살아남기 위해서 분명 그랬으리라.


영아에게 중요하다고 하는 오감체험을 어떤 인위적인 공간이 아닌 자연에서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자연을 먼저 알게 해주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 여겼다.

엄마이기도 하지만 인생을 앞서 걸어온 선배로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아스팔트가 깔린 환경에서 어떻게 자연을 경험하게 해 줄까?

매 주말마다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갈 수도 없고.

고민이 될 무렵, 우리가 새로 이사 간 아파트 뒤쪽이 북한산 둘레길로 이어져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 알고 난 후부터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갈이 많은 흙길 위에서 유아차 바퀴가 달그락달그락 굴러가는 소리에 잠이 들기도 했고,

앙증맞은 작은 손에 올려놓은 낙엽을 부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흥미를 보이기도 했고,

‘뽈뽈’ 부지런히 기어가는 딱정벌레를 보고 ‘머! 머!’ 하며 흥분하기도 했다.

매일 그렇게 아이와 둘레길을 걷는 시간이 쌓이다 보니 이 일과는 내게도 좋은 시간이 되었다.

텀블러에 담아 온 따뜻한 차를 마시며, 사계절을 두 눈에 담았고,

외부 방해 요소 없이 아이와 눈빛으로, 손짓 발짓으로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몸과 마음에 쌓인 노폐물이 밀려 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피톤치드가 사람 몸에 좋다는 수준의 얕은 상식만 있을 뿐,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난 경험을 통해 알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원래 아날로그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낀다.


코로나 시기에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건 사람을 만날 수 없었던 일 아니었던가?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사람이 움직이지 않아도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 오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함께 호흡하고, 교감하고,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는 일이 무가치한 일이 되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더 중요하고,

더 갈증을 느끼는 일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우리보다는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이 아이를 더더욱 아날로그형 인간으로 키우고 싶다.

진짜 세상은 문밖에 있다는 것을 알면,

앞으로 빈번히 다가올 불안이나 좌절, 공허함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게는 가장 중요한 육아 방향성이 되었다.




keywor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