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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Jul 31. 2024

“여기 국립공원입니다. 나가셔야 돼요.”

북한산은 국립공원입니다.

집 뒷산이 북한산 둘레길과 맞닿아있어 우리 가족은 매 주말 산책을 나간다.

만만한 길이라 허술한 신발을 신고도 무리 없이 산책을 할 수 있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물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편안해진다.


텀블러, 보냉백, 크로스백, 돗자리. 채집통+숟가락, 젓가락(벌레 잡기용)

주말마다 바로 챙겨나갈 수 있게 현관 앞에 챙겨놓는 산책용품이다.

놀이터나 키즈카페보다 산과 계곡을 더 좋아하는 아이 덕분에 우리 부부 역시 동네 야트막한 산을 오르내리는 일이 소소한 주말의 기쁨이 되었다.


구불구불 산책길을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북한산 둘레길로 향하는 짧은 길이의 터널이 나온다.

냉기가 흐르는 이곳을 통과할 때면 살갗이 오그라들며 오돌토돌 소름이 돋는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이 터널을 지나면 내려갈 수 있는 작은 계곡이다.

북한산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내려오는 곳이지만

흐르는 물이 깊어봤자 아이 무릎까지 찰랑이는 정도라

어린아이를 동반한 우리 가족이 쉴 수 있는 최적의 피크닉 장소가 되었다.


우리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 때로는 도시락을 먹고, 종종 커피를 마셨다.

봄엔 올챙일 알, 도롱뇽 알을 찾아냈다.

여름에는 물속에서 쏜살같이 헤엄치는 송사리를 잡는다고 통발을 넣었다.

이곳에서 놀면 세 시간쯤이야 숭덩 사라질 만큼 재미있었다.

몇 주 전에도 우리는 늘 앉던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음악을 들었다.


저기요! 여기서 나가셔야 돼요. 여기 국립공원인 거 모르셨어요?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네?


아이는 송사리를 잡다가 주춤주춤 물러서 아빠 다리에 매달렸다.

국립공원 모자를 쓴 관리인이 우리 가족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나가겠다는 제스처도 없고, 사과도 하지 않고, 멍하니 엉거주춤 서있는 우리를 보고는 관리인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한 번 더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지금 나가셔야 한다고요.”

우리가 고집스럽게 버티는 줄 알고 관리인은 양손을 허리춤에 얹고 기다렸다.  

버티는 게 아니라 생각이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멈춰버린 것이다.


‘이 좋은 곳에 돗자리 펴고 노는 사람이 없었던 이유가 있었구나.’


그동안 등산객들이 계곡 바위에 걸터앉아 발을 담그며 땀을 식히거나

동네 아주머니들이 운동기구가 놓인 계곡 초입에 앉아 수다 떠는 건 봤는데

우리 가족처럼 돗자리 깔고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은 못 봤던 이유가 있었다!


평소 준법정신이 투철한 남편은 나보다 정신이 먼저 들어왔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죄송합니다.”

하면서 아이를 둘러업고는 ‘축지법’을 부리듯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긴 시간 위법을 이리도 당당히 저질렀다니.

어질어질한 정신을 붙잡고 나도 짐을 주섬주섬 챙겨 계곡을 빠져나왔다.

그때까지도 관리인은 우리가 계곡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에게 부끄러웠다.

‘너 그러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지.’, ‘예의 없이 굴지 마라.’ 등등.

애한테 사람 되라고 숼 새 없이 떠들던 입은 어디 붙었나? 입은 굳게 닫히고, 고개는 들 수 없이 무겁다.

우습게도 주말에만 쓰는 안경이 위장에 도움이 되는 양 위안이 되었다.


계곡을 빙 돌아 사찰로 올라가는 길 방향 입구를 보니 ‘계곡 출입금지’라는 작은 현수막이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다.

아이는 곰 앞발로 x자가 그려진 그림을 보고,

“엄마, 계곡 들어가면 안 된다고 곰이 말하는 거야? “

라고 물었다.

준법 개념이 없는 어린아이 입장에선 무슨 영문인지 궁금할 법도 한데 그런 내색은 전혀 없었다. 제 나름대로 인과의 퍼즐을 맞춰 의문을 가라앉히고 정리를 하였나 보다.


우리 가족에게 가까운 쉼터 역할을 했던 곳이 출입 제한 구역이었다니.

그 후 들어갈 생각은 못(안) 하지만 문득문득 궁금은 하다.

비가 오면, ‘지금 물이 많이 찼겠다.’

해가 며칠째 쨍쨍하면, ‘물이 많이 말랐을 텐데 물고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


“우리 계곡에 한번 가볼까? 들어가지 말고, 입구에서 눈으로 보기만 하면 되잖아.”


나는 며칠 전 계곡에 한 번 가보지 않겠냐고 아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니야. 엄마, 생명존중! “


그래, 다섯 살배기 네가 나보다 낫다.


우리가 ‘쫓겨난’ 이후, 계곡 입구와 내부 양편에 현수막이 몇 개씩이나 새로 걸렸다.


‘북한산 국립공원 계곡 내 출입금지’


p.s. 관리인 아저씨, 벌금이 아닌 훈방 조치로 계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연보호, 나라사랑!


북한산 국립공원 출입금지 위반 시 5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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