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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o Aug 08. 2024

시적인 공간 3.

사소한 제주 여행기

여행은 영혼을 보듬고 위로하지만 몸의 기운을 태워 바닥낸다. 아무리 진풍경이라 한들 종내 내 집이 아니니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이곳을 잘 알지 못하니 새롭고, 뜻밖에 발견하는 것들에 기쁘지만, 알지 못하니 이 시간에는 사소한 불안이 엉켜있기 마련이다.


제주 4일 차가 되니 모두 소진된 체력으로 여행비용을 치른다. 아이들은 으레 시간 되면 해야 하는 일을 힘들어하고, 어른들은 사족이 없다.

말 사이사이에 붙어 서로에게 건넸던 다정의 인사는 군더더기의 말이 된다.


아빠들은 제주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오토바이를 타는 게 소원이란다.

소박하다.

그게 무슨 소원씩이나 될까?


“뭐 그게 어려운 일이야? 가세요. 신나게 타세요. 하루 정도는 따로 보냅시다.”


아빠들을 오토바이 대여점에 내려주었다. 앞서 걷는 남자들의 팔다리가 천진한 기쁨으로 출렁인다.

우리는 멋진 카페에서 멍하니 앉아 시간을 흘려보내리라.

시간의 흐름에 무디게 반응하는 멍청한 시간이 나는 필요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나는 법이다.

그들이 차에서 내린 지 10분도 안돼 우리 집 애가 배가 아프다며 울더니 먹은 것을 게워냈다.

알지 못하는 자동차 수리점에 차를 정차하고 아이를 안고 나왔다. 땡볕 아래에서 썩 긴 시간 아이의 등을 쓸어내리느라 땀이 났다.

1시간 가까이 어른용 안전벨트에 단단히 매여있기도 했고, 친구와 숨 넘어가게 짓 까불고 흥분한 상태가 길었다.

아이들 너무 웃게 하지 마라. 경기한다,는 어른들 말이 머릿속에 스친다.


멋진 카페는 무슨.

제일 가까운 데 가기로 한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여행에는 돌발상황이 예삿일이므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만약’, ‘혹시’로 이어지는 생각과 계획은 부모에게 대단히 중요한 대비다.


시적인 공간


 


이 카페가 시라면 고요한 노래다.

건물이나 사람에 얽히고 뒤섞인 데가 아닌 고즈넉한 마을 언덕에 외따로 앉아있는 카페인데, 쓸쓸한 분위기는 아니다. 아늑하다.

얼결에 들어왔는데 잠시 동안 쉬어가기에 무던한 공간이라 흡족했다.

아이들은 가져온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보지만 이내 무료한 시간이 된다.

아이들의 세계에는 단조무미한 시간이 들어갈 좁은 틈도 없어 보인다.

몸을 움직이고 흔들고 뛰어야 제 존재를 증명하는 것처럼 잠시도 쉬지 않는다. 입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 역동적인 생명력을 감당할 재주가 없다.

1시간도 채 흘려보내지 못하고 이동한다.




김녕은 오랜만이었다.

점심을 먹을 만한 식당을 찾다가 김녕에 왔다.

2층 다락방 같은 식당에서 카레를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와 김녕해수욕장을 바라보니 분위기가 여간 서먹한 게 아니다.

여긴 젊은 사람들의 에너지로 들떠있다. 어떤 것에도 메이지 않은 가볍고 자유로운 공기로 들어차있다.

혼자였다면 제주에서 오거니 가거니 하는 일 없이 김녕에 내리 머물렀으리라.  

 

오후 시간이라 물이 많이 빠졌다.

바다에 올 생각을 못하고 수영복을 챙기지 않았는데 아이는 바다에서 또 뭘 잡겠다고 야단이다.


“들어가라, 들어가. 옷 없으면 빨가벗고 가면 되지, 여름인데.”


해는 뜨겁다.

바닷물은 차갑다.

여름이다.




남자들은 소원하는 오토바이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벌겋고 거먼 낯빛이며 푹 꺼진 눈자위가 볼썽사나웠지만 헤 벌어진 입 사이로 이만 허옇게 빛나는 걸 보니 웃음이 났다.

나는 쉬지 못했다. 어린애들은 쉬는 게 뭔지 모르는 걸 잊었다.

그래도, 두 사람의 소원‘씩’이나 들어줬다는 기분에 돌연 우월감이 느껴지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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