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냄새와 바닐라 냄새, 묵은 먼지와 곰팡이 냄새로 뒤섞인 오래된 책의 복합적인 냄새.
나는 해묵은 책의 낱장을 넘길 때 공기 중에 흩어지는 특유의 냄새를 맡고 과거로 간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마르셀처럼.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아슴푸레 날이 밝은 것처럼 냄새는 나의 과거를 더듬어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20평이 채 안 되는 어두운 빌라 1층, 안방 벽면의 가로세로 길이에 꽉 맞닿은 원목 책장과 유리 덮개.
그 안엔 도종환 시인의 여러 시집부터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박경리의 <토지>, 최명희의 <혼불>,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같은 문학서들이 가득했다.
학교 산수가 어려워질 무렵, 나는 책장 밑에 베개를 몇 개씩 쌓아두고 그 위에 올라서서 목을 길게 뽑아 읽고 싶은 책을 꺼냈다. 까치발을 들고 손을 있는 힘껏 뻗어도 닿을 수 없는 높이에 꽃힌 책들도 있었는데 다행히 그런 책들은 수험서이거나 바둑책, 야생화 도록이어서 아쉬움이 덜했다.
세로 쓰기로 쓰인 글자와 혼용된 한자, 누런 종이의 오돌토돌한 질감을 매만지며 이 책을 고른 사람의 마음을 내 멋대로 어림해보곤 했다.
책을 고른 이의 마음에 따라 책의 ‘말하기’도 미세하게 달라진다고 믿었기에.
고목의 뿌리처럼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것 같은 거대한 책장은 내게 미개봉된 보물상자 같았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을 가로로 세로로 훑어내며 제목을 읽고, 내용을 상상하는 것. 책 읽기는 그렇게 시작되곤 했다.
때로는 <북회귀선>이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자극적인 소설을 몰래 꺼내어 침대 밑에 숨겨놓았다가 모두가 잠든 밤이 되면 소리 없이 책장을 넘겨가며 어른의 세계에 무단히 틈입했다.
책들은 어제도 오늘도 같은 자리에 있는데 내게는 왜 매일 새로웠을까?
책은 내게 아직 발견되지 않은,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는 미지의 세계이기에. 알 수 없는 곳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 때문이리라.
불과 몇 cm 되지 않는 납작한 두께의 책을 펼치면 다른 차원의 공간이 펼쳐진다. 내가 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꿈에서조차 본 적 없는, 작가와 내가 그려내는 우리만의 세계.
나는 창조된 세계 안에서 작가의 손을 잡고 춤을 추기도 했고, 화자의 등을 토닥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골이 나서 미완된 세계를 거칠게 덮어버리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몰입해 가면서 책과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어른이 된 후 한 달에 두세 권의 책을 산다. 다 읽힌 책들이 어느 순간부터 한쪽 거실 벽면에 쌓이기 시작했다.
책을 마땅히 둘 데가 없던 차에 엄마가 한두 권 놓던 자리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곳이 자연스레 책을 놓는 자리가 되었다.
지난여름의 더위는 유난했다. 여름은 계절의 경계선을 더욱 뚜렷이 해야 하는 중대 임무를 띤 것처럼 비장했다.
쌓아놓은 책들 중 다시 읽고 싶은 책을 꺼내어 책장을 넘기는데 툭- 먼지 같은 것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좀스럽게 움직인다. 하얗고 빛나는 몸, 물고기의 꼬리. 좀벌레였다.
책을 제 집 삼아, 식량 삼아 안에서 놀고먹고 있었던 모양이다. 밥벌이 걱정 없이 평생 책에만 기생하며 살아가는 참으로 나태하고 안일한 미물 같으니.
책들이 이미 좀벌레들의 기지가 되어있을 것을 생각하니 나는 묵은 책들을 더 이상 꺼내기 두려워서 농축된 계핏물을 들고 와 분사하고는 마르기를 기다렸다.
이 책들을 다 어쩔 것인가.
태워버릴 것인가, 그것들과 공존할 것인가.
나는 읽고 싶고, 이것들은 살고 싶은데 어쩌란 말인가?
나는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고민을 끝내지 못한 채 가을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