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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o Oct 18. 2024

푸르고 싱그러운 너의 힘

“엄마, 잠깐만! 뒤로 가봐.”

아이가 자전거의 브레이크를 손아귀에 넣고 급히 잡아당겼다. 그러곤 발을 리드미컬하게 뒤로 내디뎌, 막 지나쳐온 참나무 옆에 자전거를 세웠다.


살아낸 세월을 헤아리기 어려운 고목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허리를 꺾어 참나무의 키를 눈으로 따져보고 어림해 보았다.

아파트 4층 높이는 될 법한데 이렇게 자라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걸까? 나는 손바닥으로 차양을 치고 하늘로 치솟은 나무의 머리를 보려고 애썼지만 곧 눈앞이 흐려지고 아찔해져서 애써서 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나무 기둥에 난 기다란 상처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나무가 이 자리에서 맞은 해와 비와 눈과 바람의 시간을 잠시 생각했다.


아이는 나무 기둥에 배를 붙여 기대곤,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어 얇게 벗겨진 나무껍질 틈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암컷 애사슴벌레였다. 몸이 깨끗하고 등딱지에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것을 보니 우화된 지 며칠 안 된 모양이었다.


“스쳐 지나가면서 언제 봤어? 여기서 봐도 잘 안 보이는데 너 대단하다.”

나는 그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말해서 스스로 놀랐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눈꼬리에 스친 아주 작은 것, 검은 먼지 같은 것을 포착했다.

아이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작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벌레의 몸통을 집어 동그란 플라스틱 채집통에 넣었다.

“조금만 관찰하고 풀어줄 거야. 괜찮지?” 아이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의심과 확신 사이의 눈빛으로 허락을 구했다.


“그래, 조금만 관찰하고 있었던 자리에 다시 놓아주자.”

아이는 안심하는 표정으로 작게 웃었다. 그러곤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곤충젤리의 뚜껑을 뜯어 채집통에 넣었다.

애사슴벌레가 바나나향이 짙게 풍기는 젤리 주변을 천천히 돌며 탐색하기 시작했다.

 

애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선 매일 아침 숲 나들이를 한다. 선배 조합원들이 어린이집 터를 잡을 때 애초에 산 아래에 있는 부지를 골랐다. 매일 나들이를 가는 일이 밥 먹는 일처럼 일상이어야 하기에.


애들은 오전 10시쯤 산에 오르고, 점심 먹기 전에 내려온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기온이 낮든 높든 미세먼지 수치만 나쁘지만 않으면 사계절 매일 숲에서 논다. 이리저리 뒹굴고 부딪히고 엎어지고 저들끼리 깔고 깔리며 온몸으로 논다.

숲 체험이 아니다. 숲에서 나들이하는 게 일상이고 놀이고 밥이다.


아이는 땅에서 솟는 완두콩 빛깔의 연한 것들을 쓰다듬으며 봄을 맞이하고, 미물의 활력과 의욕이 최대로 솟구치는 에너지를 느끼며 여름을 보내고, 땅에 소복이 쌓인 낙엽 위에 무심히 드러누워 깊어진 하늘을 보면서 막 도착한 가을을 알고, 뽀얀 눈을 뒤집어쓴 나무들을 흔들어 제 몸으로 쏟아지는 차가운 결정들을 흠뻑 맞으며 겨울을 보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숲에서.

싱그럽고 푸르며 충만하고 황량한 그 모든 시간을 숲에서.


이끼로 덮인 바위는 디딤으로 삼지 않는 것, 어느 정도 이상의 경사가 진 내리막은 배를 잔뜩 내밀고 다리를 벌린 채 내려가는 것, 뛸 데와 걸을 데 길 데 엎드릴 데가 어디인지 달리 아는 것.

아이는 순환하는 시간 위에서 자연이 가르쳐준 대로 체화된다.  


산을 오를 때 우리를 스쳐 뛰어가는 아이의 등 뒤에 대고 “조심해. 뛰지 마. 넘어지면 다친다.” 걱정하는 어머니의 등을 어루만지며, “어머니, 걷는 저희보다 뛰는 쟤가 넘어질 일 없어요. 눈 감고도 가는 데에요.”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곤 한다.


나는 궁금하다. 아이의 작은 손이 다 크면 무엇을 만지고 다듬으며 성취감을 느낄까? 또 어떠한 절망을 느끼게 될까? 아이의 작은 발이 다 크면 어디를 걷고 뛰게 될까? 그러다가 넘어지면 어떠한 마음일까? 금세 일어날까, 조금은 넘어져 있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머물러 있을까?

 

나는 아이가 자연에서 살아낸 몸짓으로 어떻게든 살게 될 것이라 믿는다. 가다가 막다른 길에서 서성일 때도, 성의껏 만든 그 무엇이 미완성이 되더라도.

조금 헤매다가 다른 길로 트는 힘, 성취하지 못해도, 이루지 못해도 적당히 절망하고 결국엔 다시 일어날 힘.

그런 힘들이 이미 아이의 안에서 싹 틔웠으리라 나는 알고 그렇게 믿는다.  

이미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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