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23살에 만나 7년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2년쯤 되니 아이가 갖고 싶어 졌다.
임신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어렵지 않게 임신을 하게 됐다. 임신을 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우리에게 아기가 생긴다는 게 신기하고 행복했다.
그렇게 12주 기형아 검사를 받기 전까진 임신, 출산, 육아가 힘들겠지만 남들처럼 순탄히 진행될 줄 알았다. 우리 주변에 뱃속에 아이가 아프다거나 기형아로 태어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기형아 검사를 받았다. 그냥 당연히 통과하는 검사인 줄만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금방 끝나는 초음파가 20분까지 길어지며 초음파 선생님은 무겁게 입을 떼었다. 아이 뱃속에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임신 기간 동안 2번 정도 보는 정밀 초음파를 나는 매번 본 것 같다.
22주쯤엔 담관낭종이라는 선천성 기형으로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다. 나는 기형아를 임신한 것이다. 임신을 준비할 때만 해도 기형아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처음엔 내 아이가 아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주수가 찰수록 받아들였다기보다 태어나면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집중하게 됐다.
선천성 담관낭종에 대한 논문은 거의 다 읽어 본 것 같다. 다행히 치료방법이 있고 수술만 잘 되면 보통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병이었다.
만삭이 되어 아기곰을 출산하였고 지방에 살지만 서울에 있는 병원을 다니며 응급상황이 오기 전에 수술하기 위해 준비했다. 코로나 시기로 열이나 거나 아프면 응급상황이 생겨도 수술을 받으러 갈 수 없기 때문에 태어나 수술을 받은 5개월까지 집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외부인 출입, 외부인과 만남도 가지지 않았다.
우리 부부에게 아기가 태어나 처음 육아를 하는 과정은 뭐랄까 비상사태 같은 시간이었다. 언제 응급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상 깔려 있었다. 어떤 상황에도 잘 대처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공부하고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계획했다.
아기곰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부터 2주에 한 번씩은 피검사를 받아야 했고 초음파 등 각종 이름모를 검사들을 받아야했다.생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아기의 고통스러워하는 울음소리를 듣는 것은 엄마로서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저 우울해 할 수만은 없었다. 기형임에도 불구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게 성장하고 있는 아기곰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즐겁고 행복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우리는 아기곰이 수술을 잘 받고 건강을 회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무너지지 않으려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