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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Jul 28. 2024

「붉은쥐」Cafe Chair Revolutionist

1919년 3‧1 운동이 끝나고 난 이후, 1922~23년에 걸쳐 민족주의 운동은 민족주의 우파(개량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으로 분리되기 시작한다. 문학도 이러한 새로운 흐름들에 맞춰 사회주의 운동에 호응하는 소위 프로(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등장한다. 


그중 ‘신경향파 문학’은 본격적 프로문학이 등장하기 이전 그 예비적 단계에 있는 문학을 가리킨다. 원래 경향(tendency) 문학이란 말은 어떤 특정 종교나 사상에 기울어진 문학을 뜻하는데, 한국문학사에서는 특별히 마르크시즘에 기울어진 문학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경향파소설로 김기진(김팔봉)의 「붉은 쥐」(1924)를 든다. 신경향파소설은 마치 슬로건(구호)을 외치는 것 같은 모습을 띤다. 구호의 목적은 계급적 적대감을 고취시키는 데 있다. 본격적인 프로소설과 비교할 때 여러 가지로 미숙한 모습이다.    


「붉은 쥐」의 주인공 박형준은 도시 빈민가의 한 집에 세를 들어 사는 룸펜인텔리(고등실업자)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밤마다 모여하는 일 없이 공허한 토론만 일삼는다. 지구의 적도를 조선으로 옮겨와 현실을 온통 한 개의 불덩어리로 변하게 했으면 하는 따위의 상상이다.   


총독부의 검열로 작품의 여러 부분이 삭제돼 매끄럽게 읽히지는 않는다. 어느 날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온 박형준은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피 묻은 쥐 한 마리가 전차에 ‘로드 킬’을 당했는지 나가떨어져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형준은 프롤레타리아계급이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다 전차에 치여 죽는 쥐의 처지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순간 며칠을 굶은 그는 의식이 몽롱해지며 다짜고짜 식료품 가게로 들어가 빵을 집히는 대로 집어넣고, 귀금속 가게에 들어가서는 시계, 반지 등을 훔쳐 달아난다. 


‘순사’들이 그의 뒤를 쫓자 자신의 저고리에 숨겨놓은 피스톨을 쏘며 달아난다. 그는 결국 달려오는 소방대 자동차에 걷어차이며, 마치 붉은 쥐와도 같이 온 몸통이 깨져 길바닥에 내던져진다. 주위에 있던 뭇사람들은 그가 떨어뜨린 빵과 시계, 반지들을 주우려고 달려든다. 


박형준이 소지했던 피스톨과 관련된 혐의자들은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끌려간다. 이튿날 서울 안 신문들에는 피스톨의 출처와 그와 관련된 청년들의 신상에 대해 크나큰 거짓말의 기사가 난다. 가령 폭력 혁명을 기도한 불온조직이 일망타진되었다는 식으로…  


팔봉은 이 소설을 쓰기 직전만 해도 『백조』파의 동인으로 예술지상주의를 찬양하며 퇴폐주의 문학을 좇던 사람이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서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후 일본에 들어온 마르크시즘을 접하면서 스스로 『백조』를 해체하고 자신의 문학적 태도 및 자세를 바꾼다. 


요컨대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반대하고 문학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의 공리성(윤리성) 강조한다. 그리고 진보적 문학은 민중의 변혁적 열망을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 민중을 대변하는 문학이지 실제 작품들은 설익은 구호로 가득 차있다.   


김형원(석송)이라는 시인은 구호도 아니고 ‘술주정’을 시로 쓴다. “뽀이! 뽀이! /소주는 싫다!/위스키도 가져가/좀 더 독한!!/「사회」주를 가져오너라/어서 「공산」주를 가져와!/나는 「세계인」이다! /이놈 뽀이야 뽀이! …”(「주정꾼」, 1922) 


물론 이들도 자신들의 미숙성과 한계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좌익 속물주의는 시대적 한계를 반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술심부름하던 “뽀이”는 ‘마르크스 보이’의 주정에 다음과 같이 쏴 부친다. 


“자유와 평등으로/생명을 삼는다는/자식들의 행세가 /쇠통 요 모양이야!” 「붉은 쥐」의 작가 김기진도 자신의 시 「백수의 탄식」(1924)에서 맨날 카페 술집에 앉아서 말로만 혁명을 떠들어대는 이들을 “Cafe Chair Revolutionist”라며 자조적으로 비웃는다.


“60년 전의 러시아 청년이 눈앞에 있다 … Cafe Chair Revolutionist,/ 너희들의 손이 너무도 희구나!//카페 의자에 걸터앉아서/희고 흰 팔을 뽐내어가며/입으로 말하기는 “브나로드!(민중에게로 가라!)”라고 떠들고 있는/60년 전의 러시아 청년의/헛된 탄식이 우리에게 있다 


… ‘너희들은 ‘백수’/가고자 하는 농민들에게는/되지도 못한 “미각”이라고는/조금도, 조금도 없다는 말이다 … 아아! 60년 전의 옛날/ 러시아 청년의 “백수의 탄식”은/ 미각을 죽이고 내려가 서고자 하던/ 전력을 다하던 전력을 다하던 탄식이었다. …“(「백수의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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