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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10시간전

시간이 추억이 되니, 비엔나보다는 모라비아

멘델‧말러‧모차르트

1. 

체코서 살 때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모라비아 여행을 갔다 왔다고 했다. 친구는 “모라비아!? 먼 옛날 중세 때 있었던 나라 아니냐?”라고 물었다. 맞다! 옛날 체코에는 보헤미아 왕국과 모라비아 왕국이 있었고, 모라비아는 10세기 때 사라졌다. 지금은 지역 이름으로 남아 있다.


모라비아는 현재 체코에 속한 땅이지만, 오랫동안 합스부르크제국의 중심 국가였던 오스트리아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모라비아 출신임에도, 더러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경우도 있다.  


모라비아로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모라비아 지역의 가장 큰 도시인 브르노를 관광할 때였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브르노 성이 바라다 보이는 호텔에서 하룻밤 묵었다. 다음날 아침엔 저 성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을 올라가는 초입에 숲에 싸인 아우구스투스 수도원이라는 곳을 지나가게 됐다. 


알고 보니 그곳은 완두콩과 유전의 법칙으로 유명한 멘델이 수도사로 있던 수도원이었다. 멘델은 백과사전에는 ‘오스트리아의 유전학자’로 나온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곳은 보헤미아이고 수도사 생활을 하고 유전학을 연구한 곳은 바로 이곳 모라비아의 브르노에서였다.  


멘델이 이뤄낸 유전학적 발견은, 30여 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유럽 학계의 주목을 받지를 못했다. 그러나 멘델은 이곳 변방의 모라비아의 수도원에 칩거하며 평생을 신앙과 더불어 과학연구의 열정을 불태워 이러한 과학적 성취를 이뤄낸다.    


멘델의 아우구스투스 수도원


2.

체코 중부 지역 보헤미아 땅과 모라비아 땅이 만나는 곳에 텔치라는 중세풍의 고도가 있다. 오래된 도시임에도 보헤미아의 소녀가 꿈꾸는 것 같은 예쁜 도시다. 텔치서 프라하로 돌아올 때 인근 모라비아의 ‘이흘라바’라는 도시에서 기차를 갈아탔다.  


이흘라바는,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가 인근 보헤미아 지역서 태어난 직후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소년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12살의 소년 말러가 아흘라바에 있는 시나고그(유대인 교회당)의 결혼 축하 예배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증언도 있다.


말러의 고향인 이흘바바에서 기차를 환승하며


말러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또는 지휘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 역시 모라비아 쪽 사람인 셈이다. 오스트리아의 변방 출신인 데다 유대인이었던 말러는, 비엔나에서 음악 활동을 하면서 비엔나 사람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무시를 당했던 것으로 안다.  


비엔나 하면 우리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경쾌한 왈츠들을 떠올리게 된다. 요한 슈트라우스에 비하면 말러의 음악은 꽤나 심각하다. 만일 음악에도 실존주의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는 말러에서 시작될 것이다. 솔직히 나는 말러 음악의 그러한 심각함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말러는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보헤미아(모라비아)인 취급을 받고,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이라고 따돌림당하며, 전 세계에서는 유대인이라 멸시를 받았다. 어디를 가든 불청객이었다.”


말러의 교향곡은 로맨틱하다가도 갑자기 광포해지며 극과 극을 달려 종잡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이런 점을 좋아하는 말러 마니아들도 많다. 나 역시도 그가 간혹 다른 나라의 민요를 자기의 장엄한 교향곡에다 갖다 쓴 것을 들으면서 그의 또 다른 일면을 보게 된다.


가령 1번 교향곡 3악장의 시골 장례행진곡은, 프랑스 민요 “동생 쟈끄”(영국서는 이 노래를 “Are you sleeping?"이라는 가사로 바꿔 부른다.)를 단조로 조옮김한 것이다. 이 악장을 들을 땐 그가 확실히 정통 비엔나 사람이 아니고 변방 모라비아에서 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지금 보다는 훨씬 젊었던 시절, 나는 비엔나를 관광하면서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비엔나의 건물과 거리의 분위기에 홀딱 빠졌다. 반면 비엔나의 변방인 모라비아 지방을 여행하면서는 그 고즈넉한 분위기가 오히려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었나 보다. 젊은 시절의 모든 여행이 머나먼 추억이 돼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보다는 말러를 생각하게 되고 비엔나보다는 모라비아의 추억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모라비아의 고도 올로모우츠의 바츨라프 성당을 가면, 성당의 부속건물 벽에 모차르트의 흉상이 부조로 새겨있다. 모차르트가 11살이던 1767년 오스트리아 도시에 천연두 역병이 돈다.  어린 모차르트도 누이와 함께 감염되자, 가족들은 부랴부랴 이곳으로 피신을 왔다. 


이곳에서 모차르트는 병에서 회복하고 이전부터 구상해 온 교향곡 6번을 완성한다. 올로모우츠 시가 이를 기리기 위해 그의 흉상 부조를 제작한 것이다. 잘츠부르크나 비엔나 같은 번잡한 중심을 떠나, 변방 모라비아서 정양하며 건강이 회복된 어린 모차르트를 떠올려 본다. 


모라비아를 여행한 건 9월 중순이다. 체코의 가을은 이미 깊었고 가을 공기는 모차르트의 6번 교향곡처럼 신선하고 따사로웠다. 비엔나의 웅장한 궁궐과 화려한 카페 거리는 관광엽서의 사진처럼 기억되나, 모라비아의 고도는 아련한 추억의 풍경화로 되살아난다. 


올로모츠의 바츨라프 성당(위)과 모차르트 흉상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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