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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작가와 백석 시인의 ‘거미’ 이미지

by 양문규

1933년 결성된 문학단체 ‘구인회’가 있다. 뚜렷한 기치나 이념을 내세우지 않은 문인들의 일종의 친목회 성격을 띤 단체였다. 이름부터가 ‘구인회’라니?! 구인회 멤버들은 아홉 명이라는 회원 숫자를 맞추느라 적잖이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우스개 생각도 든다.


구인회 구성원들은, 이 시기에 문학을 한다는 이들이 프로문학이니 민족주의 문학이니 하는 이념 등을 내세우는 것에 반발심을 가졌다. 그래서 구인회 사람들은 문학의 자율성이나 문학의 형식과 언어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한다.


그들이 1936년에 단 한번 발간한 자신들의 기관지 이름이 『시와 소설』이었다는 점도 그들의 문학이 어떤 색깔도 표방하지 않고 문학 자체에 무게 중심을 뒀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구인회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형식적 또는 언어적 실험을 한다.


가령 정지용, 박태원, 이상 등은 모더니즘의 전위적 성격을 띤 언어를 추구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김유정은 방언이나 토속어 또는 판소리 문체를 시도한다. 구인회 회원은 아니었지만 『시와 소설』에 「탕약」이라는 시를 실은 시인 백석도 평안도 방언과 민속의 세계를 그린다.


그런데 구인회 작가를 포함한 이들은 과연 자신들이 표방했듯이 그들의 작품에서 식민지 현실과는 격리된 채, 순수한 형식 실험이나 언어 등의 기법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일까? 이상과 백석은, 우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자신들 작품의 모티프 또는 소재로 ‘거미’를 사용한다.


1936년 발표된 이상의 「지주회시」와, 같은 해 백석 시집 『사슴』에 실린 「수라」가 그것이다. 물론 두 작품 속 거미의 이미지는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둘 다 거미를 통해 식민지 사회의 어둡고 슬픈 현실을 드러낸다.


「날개」와 연작인 「지주회시」의 제목 “鼅鼄會豕”는 ‘거미가 돼지를 만났다.’라는 뜻이다. 작품 속 ‘거미’는, 카페 여급인 아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아내에 얹혀사는 룸펜 남편을 가리킨다. 동시에 거미는 남편의 착취에 야위어가는 아내를 가리키기도 한다.


과거에 남편과 같이 화가를 꿈꿨던 남편의 친구는, 현재의 주식거래소와 비슷한 ‘취인소’의 사무원이 돼 돈의 노예로 변신해, 남편 부부를 등쳐먹는 또 다른 거미다. 그러나 이 친구 역시도 취인소 전무나 주식투기를 하는 큰손들, 즉 ‘돼지’에게 기생하여 살아가는 거미다.


작품 속 거미들은 서로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관계이지만, 결과적으론 이들 모두가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돼지 밑에서 억압당하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지주회시」는 띄어쓰기도 전혀 지키지 않는다. 마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불안증 환자의 무의미한 중얼거림 같이도 들린다.


백석의 시 「수라」(1936)에서는, 화자가 추운 밤 거미 새끼 한 마리가 방바닥에 나린 것을 보고 무심히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새끼거미가 쓸려 나온 곳에 큰 거미가 온다. 화자는 가슴이 짜릿해져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바깥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한다.


화자의 아린 가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가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화자는 분명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을 보드라운 종이에 고이 받아 또 문밖으로 버리며 엄마와 누나나 형을 쉬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화자의 무심한 행동으로 헤어짐의 불행을 겪게 된 거미들의 처지를 통해, 그의 대표 시 「여승」에서 전달하려고 하는 바와 같이, 가난 속에서 가족공동체가 붕괴하는 슬픈 현실을 환기하고 있다.


이상의 소설은 실험정신이 강해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작품이었고, 백석의 시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복고적이거나 향토적이어서 퇴영적인 인상을 주기도 하나, 양자가 모두 당대의 고통스러운 사회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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