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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 체코 시절의 밀란 쿤데라

by 양문규

아주 오래전 프랑스로 망명했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체코 태생 작가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이라는 소설로 유명하다. 이를 토대로 만든 영화 『프라하의 봄』 (1988) 역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영화가 1968년 ‘프라하의 봄’을 강제 진압한 소련군의 만행을 배경으로 체코의 정치적 상황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쿤데라의 작품이 반공 이념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 오해할 수도 있지만 쿤데라는 원래 공산주의고 자유주의고 어떠한 이념에든 관심이 없었던 작가다.


그래서 쿤데라는, 미국 감독이 만든 『프라하의 봄』 영화가 자신 소설 속 작중 인물의 성격이나 소설의 근본적인 주제와 유사성이 없음을 애석해했고, 이를 계기로 그는 자신의 저작물의 어떤 변용도 허락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쿤데라는 공산주의자인지, 자유주의자인지, 좌파인지 우파인지 잘 파악이 안 되는 작가이다. 그는 이보다는 인간 존재의 근본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작가로 보이는데, 그에게 정치적 이념 같은 것은 진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던 것 같다.


1950~60년대 망명 전 쿤데라가 활동하던 시절 공산 체코는, 북한의 김일성 대학 및 과학원과 지속적 교류를 하며 북한으로부터 학술·문학 서적을 기증받아 왔다. 체코서 안식년을 지낼 당시 1959년 북한서 출간된 『세계의 분노』라는 시집을 우연히 찾아 읽을 기회가 있었다.


평양 국립문학예술서적 출판사서 출간된 이 책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면서 반전(反戰)을 주제로 한 시집이다. 작가들은 소련(소비에트 러시아), 중국, 체코, 폴란드 등 대부분 당시 공산 진영 나라 출신의 시인들이다. 북한에서 이들 시를 모아 번역해 시집으로 펴낸 것이다.


그 시인들 중엔 밀란 쿤데라가 있어 깜짝 놀랐다. 실제로 쿤데라가 체코 있을 당시에는 열성적 공산주의자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시집에 게재된 쿤데라 시의 제목은 「원예사」다. 시 속의 주인공은 과수원에서 일하는 나이 든 원예사이다.


싱싱한 나무포기들, 꽃과 열매를 가꾸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원예사는, 요즘 마음이 잘 진정이 되지 않는다. 원예사는 과거 스페인 내전 당시 지원병으로 참전한 경험이 있는데 그 시절 독가스와 수류탄이 터지던 일이 다시 떠올려져 괴로운 것이다.


바로 ‘조선’에서 터진 전쟁(한국전쟁)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 스페인의 파시스트 프랑코와 이를 반대하던 공화파인 인민전선 사이서 벌어진 내전이다. 당시 유럽 각국의 좌파 청년들은 인민전선을 지원하며 입대하는데 원예사도 그런 자원 병사 중 하나였던 것이다.


짧은 시 속에서 세부적인 얘기를 하지 않으나, 쿤데라는 한국전쟁을, 스페인 내전과 비교해 북한의 인민과 남한의 파시스트 정권이 싸우는 내전으로 간주했던 것 같다. 쿤데라 말고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들은 한국전에 개입한 미국의 공중폭격과 세균전 등을 맹렬히 비난한다.


가령 체코 시인 콘스탄틴 비블의 시에서는, 미국의 “맥아더 장군”을 “피와 황금만 찾아 날치는 야수” 또는 “잔인한 날짐승”에 비유하는 등, 사회주의 문학이 보여주는 선전(프로파간다) 선동 시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쿤데라 역시 공산 체코 시절에 활동한 작가이기에 공산 진영의 생각에 구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시인들과 달리 직설적인 정치 내용은 피하고 한국전쟁을 통해 전쟁으로 겪게 되는 인류의 슬픔을 서정적으로 환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아마도 쿤데라는 노골적인 선전 문학의 스타일을 수용하기는 어려웠으리라. 정치적 외마디 소리는 쿤데라의 스타일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문학은 정치적 제약 속에 있을지언정, 그 제약을 ‘자기’ 문제화하는 단련 속에서, 또 다른 높은 의미의 정치를 지향하는 것이리라.


쿤데라는 자신의 작품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경계하고, 자신의 문학적 주제는 “인간 존재의 복잡성”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예술과 문학은 공산주의든 반공주의든 선전(또는 선동) 문학이 될 때 그 가치를 잃는다.”라고 했다.


밀란 쿤데라(좌), 쿤데라의 시가 실린 시집 『세계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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