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부르주아는 거미 조각으로 유명한 여성 미술인이다. 우리나라 호암미술관 야외 전시장에도 그녀의 대형 거미 조각이 있다. 해외 미술관에서도 그녀의 다른 거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그중에는 워싱턴 DC의 ‘국립여성예술인박물관’에서 본 「스파이더 Ⅲ」(1995)도 있다.
여성 예술인 박물관은 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여성들을 기념하는 세계 유일의 메이저 박물관이다. 이곳의 거미 작품 전시도 작가의 페미니즘 특성을 고려한 것이리라는 짐작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거미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남성 신 제우스의 권력을 등에 업은 아테네는 아라크네라는 처녀와 베 짜기 경쟁을 하다가 지게 되자, 베틀 북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내리친다. 아라크네가 애원하며 매달리자 아테네는 그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목숨을 보존하되 평생 매달려 있어라.” 그리곤 독약을 끼얹었다.
독약이 닿자마자 머리털이 빠졌고, 코와 두 귀도 없어졌다. 머리는 줄어들고 몸 전체도 작아졌다. 가느다란 손가락들은 다리들 대신으로 아라크네의 양 옆구리에 매달렸다 그녀의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배가 됐다. 그녀는 거기서 실을 뽑으며 평생을 거미로서 베를 짠다.
식민지 시기 노동자소설 강경애 『인간문제』(1934)에는 방적공장 여공이 등장한다. 여공들은 펄펄 끓는 가마에 삶은 고치를 붓고 빗자루로 꾹꾹 누른다. 그들은 거미처럼 가마에서 깨끗한 실끝을 끌어내 왼손에 걸어 쥐고 바른 손으론 제사기 바늘에 붙여 실이 풀려 올라가게 한다.
그녀들의 손은 고치를 끓이는 물에 익어서 손등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그리고 손끝은 물에 부풀어서 허옇게 된다. 산 손등에 죽은 손가락이 달린 것 같다. 여공들은 귀 멀 정도의 소음 속에서 섬유 조각이 떠다니는 공기를 숨 쉰다.
어떤 방호 장치도 없이 야간작업을 하다가 제사기 기계에 말려 들어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여공들은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치며, 이 공장 안에 죽은 손가락이 얼마든지 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의 한시 「가난한 집 처녀의 노래」에서 화자는 추운 밤 곱은 손으로 밤새 길쌈질을 하지만 남의 혼수만 만지고 노처녀로 늙어가는 자신을 한탄한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는 여성들의 이러한 처지를 상상한 건 아닐까?
내가 여성예술인박물관에서 거미 작품을 본 건 워싱턴 DC에서 딸의 결혼식을 치르고 난 직후였다. 딸은 미국서 사는데 결혼식에 입을 웨딩드레스를 한국에 잠깐 나왔던 시기에 맞추고 갔다. 미국과 한국서 각각 결혼식을 치르다 보니 대여보다는 맞춤이 날 것 같아서였다.
문제는 한국서 잠깐 체류하고 가는 바람에 미처 드레스 가봉을 못하고 떠났다는 점이다. 이후 우리가 드레스를 갖고 미국으로 가니 역시 몸에 맞지를 않았다. 결혼식 날짜까지 며칠 안 남았는데 미국서 옷 수선하는 곳도 잘 모르겠고, 아내는 며칠 밤을 새워 그 일을 했다.
미국까지 와서 종일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밤늦게까지 실과 바늘, 가위 등을 잡고 옷 수선에 매달렸다. 아내는 손가락이 유난히 길고 말랐다. 게다가 미안한 얘기지만 손가락 피부색도 까매 흰색의 드레스에 거미가 매달려 일하는 것 같았다. 웨딩드레스 품은 오죽이나 큰가!
그뿐 아니라 한국 음식을 먹고 싶다는 딸에게 그걸 해 먹이려고 인근의 미국 식품점을 걸어가서 그쪽 재료를 사, 한국서 가져온 양념을 활용해 한국요리를 해주느라 온몸이 부서져 나갈 듯이 보였다. 결혼식 치른 후 잇몸이 부어 딸이 사주는 음식도 못 먹을 정도였다.
조금 수습이 되고 난 후 정신을 차리고 워싱턴 DC의 미술관들을 구경하고 다니던 중 간 곳이 여성예술인박물관이다. 거기서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작품을 본 것이다. 거미를 통해 여성의 고난이랄까 운명이랄까 하는 모습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