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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의 갈매기

by 양문규

예전에도 헬싱키 도시를 부러워하는 기행문을 쓴 적이 있다. 최근에 나온 한 뉴스 때문에 헬싱키라는 도시를 또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다른 게 아니라 지난 1년간 헬싱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1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뉴스였다.


헬싱키 인구가 69만 명 된다는데, 이런 대도시 급에서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전무한 것은 드문 일이다. 뉴스에서는 그 이유 중 하나로 도시 곳곳에서 도로 폭을 좁히고 나무를 더 많이 심었기 때문이라 한다. 운전자가 불편할수록 운전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는 판단에서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에스플라나디 공원


여행 당시 나는 헬싱키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기차를 타고 넘어왔다. 러시아 국경에서 핀란드로 넘어서면 인가도 없이 숲과 나무, 그리고 호수가 끝없이 펼쳐진다. 그 풍경이 그토록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데 이 느낌은 도시인 헬싱키로 들어와서도 지속됐다.


핀란드는 얼마나 산림이 풍요로운지 호텔엔 원목의 나뭇결이 살아있는 가구가 즐비하고, 어느 공중화장실의 내벽과 변기 뚜껑은 모두 나무로 돼 있었다. 기념품 가게서는 나무로 만든 산타 종도 샀다. 도시가 나무와 숲으로 덮여 있으니 헬싱키는 신선한 공기 같은 도시였다.


내가 여행한 시기는 7월임에도 초가을 삽상한 날씨였다. 헬싱키 도심의 길이 끝나는 곳은 곧 발트해 바다다. 중앙역 근처에서 바닷가까지 가는 길은 한 2km 정도 되는데 공원을 끼고 내려간다. 차도는 일방통행에다 바닥은 화강암 길이라 차가 속력을 못 낼 만도 했다.


카페 손님들은 햇볕을 즐기려 모두 길가로 나와 앉아 있어, 손님들이 아니라 행인들이 오히려 이들을 구경하는 가운데 도심을 걸어가게 된다. 나는 부둣가가 있는 여러 도시를 가봤지만 헬싱키처럼 갈매기가 도심 곳곳을 유유자적이 다니는 곳은 처음 보았다.


행인들이 카페의 손님들을 구경하며 걸어간다.


대부분의 항구도시들을 가보면 길거리에 갈매기의 배설물들이 여기저기 널리고, 어수선한 골목 안을 길 잃은 갈매기들이 정신없이 휘젓고 다닌다. 여기 갈매기들은 도심 공원 숲에서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찾아 이들 사이를 마치 동네 강아지들처럼 번죽대며 다닌다.


소문대로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고 부유하고 평화로운’ 나라 같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헬싱키 다음 나의 행선지는 발트해 건너 에스토니아였다. 에스토니아까지 배로 2시간 정도 걸리니, 그곳은 헬싱키에서 당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이다.


헬싱키 항구


이 배의 주 이용객들은 관광객들보다는 오히려 핀란드 사람들이었다. 핀란드의 주세가 대단히 높기 때문에, 핀란드 술꾼들이 반값의 술을 사 오기 위해서도 에스토니아를 오간다고 한다. 핀란드에서는 우리 소주와 같은 도수의 술 한 병 값도 수 만 원을 상회한다고 한다.


헬싱키 숙소에서 저녁에 맥주라도 한잔하려고 했는데, 가게 문을 일찍 닫을 뿐 아니라 그나마 술은 저녁 시간에 아예 팔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자유로운 나라지만 술을 먹는 자유만큼은 가능한 허용하지 않으려는 태세다. 국민 건강을 생각하는 좋은 나라인 건 맞다!


그럼에도 음주, 폭력 빈도가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닌가 보다. 우울증, 조현병 환자도 많고 자살과 살인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으며, 항정신제와 항우울제도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미국 다음으로 총기 소지 비율이 높다는 점도 의외였다. 물론 사냥용으로 많이 쓰인다고는 한다.


언젠가 티브이의 “비정삼회담” 프로그램에서 아주 상냥하고 친절하게 생긴 핀란드 청년이 출연해서, 핀란드 사람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버스를 기다릴 때도 줄을 서지 않고 따로따로 떨어져서 기다린다는 말을 자랑인지 아닌지 모르게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여행객은 헬싱키의 좋은 모습만 주마간산 격으로 보고 가는 것이리라. 내가 여행한 시기는 7월 초순 백야 때이다. 날씨도 좋고 해도 길다. 그러나 이곳에 겨울이 오면 낮의 길이는 노루 꼬리만 해질 테고 갈매기 울음소리도 얼마나 을씨년스러워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와 숲, 호수도 좋겠지만, 겨울에 눈이 덮여 고립되고 사람들은 사우나에 웅크리고 들어앉아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고독을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숫제 시베리아 러시아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풍요와 행복을 누리는 핀란드 사람들은 어쩌면 더 외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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