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관광을 끝내고 다시 밀라노로 돌아가야 했는데, 왔던 길을 고대로 되밟아 가는 건 재미가 없는 일이기에 피사를 둘러서 돌아가기로 했다. 피사는 이탈리아 중서부에 위치하여, 남서쪽 로마와 북동쪽 밀라노를 잇는 이탈리아 철도교통의 허브다.
피사는 피렌체서는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피렌체에 비하면 피사는 엄청 조용했고, 관광객들은 피사의 사탑 주위에만 몰려 있는 정도였다. 나는 피사의 사탑에 가서도 막상 탑 위를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가보기를 잘한 것 같다.
피렌체에는 그 유명한 붉은 꽃봉오리 모양의 돔을 얹은 두오모 성당이 있다. 도시 어디에서 보아도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그리고 옆에는 조토의 종탑과 산 조반니 세례당이 있다. 피사도 마찬가지다. 종탑인 피사의 사탑과 함께 두오모 대성당과 세례당이 있다.
피사의 사탑이야 워낙 유명하니 그렇다 치고, 나에게는 피사의 두오모 대성당과 세례당이 피렌체 것들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아름다움이야 두말할 필요 없지만,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는 관광객으로 그 높이와 아름다움을 여유 있게 감상하기가 어려웠다.
한적한 피사에서는 두오모의 순수한 장엄함이 돋보였다. 이 두오모 성당을 피사는 피렌체보다 오히려 한 발 앞서 지었다. 12세기 때만 해도 피사는 지중해 서쪽을 장악한 해상공화국이었다. 지중해를 통해 스페인 그리고 북아프리카 이슬람 지역과 활발한 교역을 벌인다.
보통의 이태리 성당들과 달리 피사의 성당은 흰 대리석만으로 돼 있지 않다. 흰 대리석 바탕에 짙은 색의 대리석과 형형색색의 돌들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성당의 정면엔 아치와 기둥들이 줄지어 선 아케이드 공간이 자리한다. 피사의 사탑도 층마다 이 아케이드 공간이 있다.
미술사학자들은 피사 대성당의 무어 풍의 장식과 문양들은, 이슬람과의 교역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피사의 문화를 반영한다고 본다. 한때 전성기를 누리던 피사는 북쪽의 제노바에 패하고 동쪽의 피렌체로부터 지속적
인 공격을 받다가 결국은 피렌체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피렌체는 피사라는 항구를 확보하면서 스스로 대외교역에 직접 나설 수 있었고 거기서 축적된 부로 14세기 이후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다. 피렌체 사람들은 먼저 지어진 피사의 대성당과 종탑 등을 보면서 자기네들도 피사에 못지않은 성당과 종탑 등을 짓고자 한 것이다.
피렌체의 번화한 도심 속 두오모와 달리, 광활하게 펼쳐진 잔디에 우뚝 솟은 피사의 대성당에 저녁 종이 울리니 미사를 드리러 가는지 수도사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피사의 한적함은 그냥 시끄럽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실재하는 그 무엇으로 느껴졌다.
사람들은 여행을 가면 그 대상들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주어진 가령 피렌체라면 피렌체의 수많은 정보에 의해 정형화된 모습이 과연 그런 모습으로 있는 것인가를 확인하고 오기에 급급하다.
피사는 피사의 사탑 말고는 특별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피사의 모든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나름의 느낌과 생각을 갖게 했다. 그리고 특별히 갈 곳도 없기에 피사의 사탑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을 마치 갈 곳 없는 나그네처럼 걸어갔다.
피사에도 피렌체 같이 도심에는 아르노강이 흐른다. 피렌체에 저녁노을이 지면 도시 전체가 꽃봉오리 돔의 두오모를 중심으로 오렌지 빛으로 물든다. 퇴색하고 우중충한 건물이 많은 피사에서는 황혼의 흔적들이 건물의 벽들로 쏟아진 포도주처럼 번졌다.
영국의 괴짜 낭만주의자 셸리 부부, 바이런 등이 피렌체도 베네치아도 아닌 왜 이곳 피사에 와서 머물렀는지를 알겠다. 유명 관광지서 벗어나 있으니 요란한 관광객들도 없고 물가조차 적당했으리라. 더 늙어 이태리 여행을 간다면 가능한 여행정보가 없는 그런 곳을 찾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