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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고 대학의 헌터리언 박물관, 식민주의와 인종주의

by 양문규

스코틀랜드의 날씨는 대단히 변덕스러워 하루 안에서도 흐렸다, 비가 왔다, 개였다 하는 일들이 수도 없이 반복된다. 글래스고 시내 관광 당시,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비가 내려 비를 긋고자 무작정 시내버스를 집어 탔는데, 마침 버스의 종점이 글래스고 대학이었다.


학교에 도착하는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글래스고 대학은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에 이어 영국서 네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이곳에서 학생으로 공부했고 교수 생활도 했다.


애담 스미스.jpg 글래스고 대학의 애덤 스미스 동상


애덤 스미스의 동상과 전시실은 오래되고 중후한 대학 건물 안에 있었다. 대학의 부속건물인 헌터리언 박물관은 2층으로 된 날렵하고 현대적인 건물이었는데, 이 박물관에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의 전시실이 있다.


제임스 와트는, 스미스와 친구 사이였는데 교수는 아니었고 이 대학의 실험기구 수리장이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스미스의 『국부론』과 와트의 증기기관이 인류로 하여금 구세계를 마감하고 신세계로 나아가게 했다고 본다. 이들은 유럽의 산업혁명 또는 근대화를 이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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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와트.jpg 헌터리언 박물관(위) 박물관 안의 제임스 와트 동상


박물관에는 제임스 와트 관련 전시물도 있지만,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과 이 박물관의 이름이기도 한 외과 의사이자 해부학 교수인 헌터 관련 전시물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쿡 선장의 경우 그가 태평양 탐험 당시 그곳 섬들에서 수집한 토산품 내지 민속품 등이 전시돼 있었다.


쿡 선장은 18세기 후반 세 번에 걸친 항해로 대서양에서 남태평양을 거쳐 베링해협으로 이어지는 항로를 개척했다. 세 번째 항해 중이던 1779년 하와이 해변에서 원주민과의 충돌로 생을 마감한다. 쿡은 이른바 대항해시대의 대미를 장식한 인물이다.


그의 항해를 전후해서 지구의 거의 모든 지역이 서구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탐험의 시대는 막을 내리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시대가 본격 전개된다. 영국과 유럽은 제국주의로 군림하고, 유럽 바깥 대륙은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식민주의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쿡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있다. 1770년 쿡 선장의 인데버호가 호주 땅 동쪽 해안의 깊은 조용한 만에 정박한다. 이 배에 탄 유럽 탐험대들은 호주의 낯선 원주민들과 마주친다.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벌거벗은 야생의 원시인들은 화려한 인데버호와 함께 멋진 제복을 입은 백인 선원들과 최첨단의 장비를 장착한 선박을 보고도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이는 백인들이 보기에 ‘백치’ 같이 보였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보여준 항해 선박과 기술, 문명화된 모습에 놀라거나 감탄하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고는, 그 이유를 그들이 백치처럼 안일하고 호기심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백인에게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여겨지게 된다.


사실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우생학 또는 인종주의는 이러한 식민주의와 함께 발전한다. 우생학은, 백색인종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소수 인종은 열등하므로 인구를 억제하거나 말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색인종은 진화 과정을 다 거쳐 우수한 인종이 되었지만, 흑인·아시안·인디언들은 아직 진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인 미개하고 열등한 인종이다. 그들의 진화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가능하고, 백인 국가들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침략은 진화의 과정이라고 정당화한다.


헌터리언3.jpg 헌터리언 박물관의 전시실


헌터리언 박물관의 주인공인 헌터도 어찌 보면 우생학의 논리에 섰던 과학자다. 그는 아일랜드의 243 센티미터 거인 찰스 번의 해부로 유명해진다. 번의 비정상적으로 큰 키는 구경거리가 돼, 그는 장사꾼들의 기획으로 영국 전역을 순회하며 돈벌이를 하다가 22세에 사망한다.


죽음을 앞둔 번은 당시 사체 절도범들이 자신을 혹시나 땅에서 파내지는 않을까 두려워 친구들에게 바다에 묻어달라고 애원하기도 했으나 그의 사체는 결국 해부학자인 헌터의 손에 넘어간다. 그리고 번이 두려워했듯이 그의 뼈 일부는 한때 헌터리언 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한다.


거인 찰스 번의 육신이 그에게 소중한 것이었듯이. 쿡 선장이 수집하여 박물관에 전시한 원주민의 유물들은 그들의 소중한 소유물이다. 그러나 식민 지배 세력 또는 상류층 백인들은 그것을 빼앗다시피 가져와 자신들의 권위와 우월감 드러내는 표식으로 자랑스럽게 전시했다.


해부학.jpg 전시실 안 기형 동물 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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