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공유 - 4주년 결혼기념일
4년 전 오늘.
우리 두 사람의 결혼예식을 위해 군종병 시절 인연을 맺기 시작한,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셨던 박희찬 목사님의 축복의 기도문.
이따금 이 기도문의 문장을 한 번씩 곱씹으며 우리의 결혼 생활을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다시 한번 이 기도문을 읽고 우리의 4년 간의 결혼생활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각했다.
목사님의 축복기도의 내용처럼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여 이제 함께 걸음을 내딛는 새로운 인생 여정의 시작.
그 긴 여정을 위해 2년 연애기간 동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취향과 습관을 확인하며 차곡차곡 짐을 꾸렸던 것 같다. 하지만 완벽한 여행 준비라는 게 있을까.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고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알아가야 할 부분은 우주처럼 무궁무진했다. 그 점이 싫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나와 정반대인 습관과 취향이 신기했고, 나와 똑 닮은 습관과 취향이 오묘했다. 4년 동안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고, 신기해하고, 놀라워하고, 사랑하고 있다. 목사님의 기도문처럼 결혼으로 인해 우리의 사랑이 시작되어 열심히 진행 중이다.
이제 겨우 4년 치 걸음을 내딛고 있다.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한다. 그동안 나는 푸드트럭으로, 유명한 떡집의 지점장으로 일을 했다. 아, 그리고 푸드트럭 대출금도 다 갚았다. 이제 원래 하고자 했던 일을 시작할 준비가 거의 된 듯하다. 아내는 몇몇 회사를 이직하며 지금의 회사에 정착했다. 최근엔 기존에 해오던 해외영업팀 업무에서 기획팀으로 이동해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업무 스타일에 적응하느라 피곤해하고 있다.
하수구 냄새가 베란다 수채통을 통해 올라와 아내가 힘들어했던 시장 근처의 오래되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2년간 월세로 살았는데 지금은 큰 대출을 낀 신축 빌라를 장만해서 지내게 되었다. 이사한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비 오는 날 트럭 한 대 불러서 이사하느라 참 수고스러웠는데.. 재밌었던 추억 한 장면으로만 남아버렸다. 사진을 찍어둘걸. 4년이란 시간은 참 빠르게도 지나가 버린 것 같은데 우리가 지나온 발자국들엔 참 많은 일들이 새겨진 것 같아, 그 사실에 또 한 번 새삼 흠칫한다.
아직 아이가 없기에 우리 둘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나 시간은 충분할 줄 알았는데, 사실 그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직장을 옮기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도 늘 출퇴근 시간이 달라서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푸드트럭부터 떡집까지 항상 토요일에도 일을 해서 우리가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은 일요일 하루, 평일의 저녁 몇 시간이 고작이었다. 많은 이들도 비슷하겠지만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건 늘 아쉽고 속상했다. 그러다 보니 함께하는 시간 동안은 언제나 안정감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음에도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보듬어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내의 서운한 마음을 놓친 일도 많았다. 그 마음을 충분한 대화를 갖고 나누기까지 냉랭한 순간들을 보내며 또 서로가 서로에게 서운해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낙천주의적인 몽상가 타입이라면 아내는 지극히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적인 사람이다. 자연스레 인생의 가치관이나 앞으로의 진로, 현재를 진단하는 자세도 달랐기에 이 점에 있어선 더 많은 대화가 필요했다. 아마 이 주제는 우리 두 사람이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즈음에야 합의점을 찾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내가 아내의 가치관에 더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 있어서 불안을 안기고 있다는 미안함이 항상 마음 언저리에 죄책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그런 내 손을 잡고 이해하며 함께 해주는 아내여서 정말 고맙다.
아내는 나를 빛나게 해주는 사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 볼일 없고 무능력한 우주의 먼지인 나를 참으로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고 현실주의적인 사람이 내가 이러저러한 꿈에 대해서 얘기하면 항상 시도해보라고 북돋아 준다. 가끔은 농으로 던진 말이었는데도 아내는 진지하게 마음을 담아 응원을 해주기도 한다. 속으로는 걱정이 태산일 것 같은 모습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렇게 말해주는 건 엎질러진 물이니 본인이 나머지 짐들을 책임지겠다는 결의일까, 사랑의 힘일까. 전자 일 것 같지만 후자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아내를 빛나게 해주는 사람일까. 아니, 그게 안 돼서 속상하다. 아내는 지금 보다 더 빛날 수 있는 사람인데도 내가 훼방을 놓는 것 같아 미안하다. 다만 끝까지 사랑의 약속을 지키고 손 잡고 가겠다는 결의만 다질 뿐이다. 이제 겨우 서른다섯이니까. 10년 안에는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하는 여전한 몽상가적 기질을 발휘하며..
4년 동안 함께 해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인사했다.
인생사 우여곡절이 앞으로의 여정에도 곳곳에 기다리고 있겠지만 둘이 함께라면 잘 이겨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우리의 사랑과 우정을 더욱 다지고 깊게 만들어주리라 믿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