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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 마쿤 Jul 29. 2022

콩국수 때문에 나는 사직을 당했다.

** 이 글은 오늘 아침 엄마와의 통화를 한 뒤, 전지적 엄마의 시점에서 쓴 글이다 **     




“사건의 발단은 콩국수였다.
콩국수 때문에 나는 사직을 당했다.
썅.”




나는 ㄷㅅ식품 ㅂㅍ공장 야간 급식 업무를 맞고 있는 조리사이다. 자정에는 약 20명 미만의 인원을 위한 야식을 준비하고, 아침에는 약 60명을 위한 아침을 준비한다.


야간 식사 시간은 00:00~00:40이지만 야간 노동자들은 11시 30~40분이면 식당에 찾아와서는 밥 달라고 아우성을 한다. 메뉴에 따라서 음식이 빠르게 준비되는 때도 있지만 식사 시작 시간을 딱 맞출 때도 있다. 그래서 식사 시간보다 20~30분 일찍 와 있는 노동자들은 자기들이 일찍 와놓고는 내가 음식 준비를 늦게 한다고 한다. 웃기는 사람들.


이곳의 근무자는 나 혼자이며, 혼자서 주 6일을 일한다. 주 5일 일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런 생각은 사치라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절레 젓는다. 한 푼이라도 더 벌자. 여름휴가, 명절 연휴도 나에게는 사치이다. 연차수당을 받을 수 있으니까. 5일 일하는 사람들보다 하루 더 일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쉴 수 있으면 좋겠다. 쉴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휴가를 쓰거나 이틀 이상 쉬려면 낮 근무자 중에서 야간 근무를 해줘야 하는데, 그들이 거절하면 방법이 없다. 아쉬운 소리는 하기 싫다. 그러니 그냥 남들보다 하루 더 돈을 버는 것에 자부심을 갖으려 한다. 코로나19에 걸렸을 때도 미안해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동시에 모처럼, 정말 모처럼 쉴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렇게 난 이곳에서 2년 2개월을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약 3주 전 야간 급식 메뉴로 나간 콩국수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 사건의 발단은 콩국수였다. 콩국수 때문에 나는 사직을 당했다. 썅.     



그날도 여느 때처럼 공장의 몇몇 야간 노동자들은 식사 시간 보다도 일찍 식당에 왔다. 메뉴가 콩국수라는 소식을 들었는지 기대에 찬 눈빛들이었다. 정성껏 준비했으니 맛있게 먹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중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콩국수를 야무지게 먹었다. 그리고 다시 주인을 기다리는 콩국수 앞으로 와서 한 그릇을 더 먹기를 원했다. 내가 만든 콩국수가 맛있었나 보다.      


하지만 영양사의 지침에 따라서 정해진 식재료로 정해진 인원에 대해서 식사가 나가기 때문에, 추가 식사를 하게 되면 음식이 부족해져서 늦게 오는 사람이 먹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지해야 한다.      


혼자 일하다 보니 잠시 뒤를 돌아 다른 일을 하다가 누군가 후다닥 음식을 채가면 식수 인원을 맞추지 못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져야 하기에 추가 식사 제지는 엄격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다 큰 어른들을 말이다. 그게 서운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있나. 우리 집 쌀 퍼서 밥해주는 것도 아니고 준비해 준 식재료만 갖고서 밥을 차려 줘야 하는걸.     


하지만 그날은 한 그릇 정도 더 줘도 괜찮겠다, 싶었다. 국수이다 보니 양이 조금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한 그릇 더 가져가는 아저씨를 제지하지 않았다. 우리 아들도 콩국수를 참 좋아하는데. 내가 만든 콩국수를 맛있게 비워내고 한 그릇을 더 가져가고 싶어 하는 저 50대 초중반의 아저씨를 보니 아들 생각이 났다. 아침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콩물을 사서 국수를 해 줘야지 하고 생각한 날이었다.     


그날은 유난히도 급식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국수이다 보니 후루룩 먹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거다. 급식 시간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기도 하니, 아직 급식 마감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는데도 남은 콩국수가 5그릇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두 그릇째 콩국수를 비워 낸 아저씨가 또 왔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고, 또 먹고 싶어 해줘서 고마운데, 이건 아니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의 몫까지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급식 마감 때 오지 않아서 음식이 남는다면 모를까, 급식 마감까지는 시간도 꽤 남아 있었다.     


그래서 아저씨에게 그대로 말했다. 벌써 두 그릇 드시지 않았느냐고, 식사 시간이 많이 남아서 남은 콩국수는 그 시간에 오실 분들을 위해서 남겨 놓아야 한다고. 아저씨는 세 번째 콩국수에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렇게 해프닝은 끝이 났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후에야 해프닝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양사가 아주 난처한 얼굴로 뜸을 들이며 말을 걸어왔다. 콩국수가 나간 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그래서 당시의 상황을 얘기했더니 상황을 파악한 영양사가 이번엔 더 난처한 얼굴로 어렵게 말을 이었다.    


 그 아저씨가 노동조합에 자신이 콩국수 더 먹으려다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했다고, 그래서 그 야간 조리사를 내보내라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조 측에서 그 내용을 영양사가 소속된 식당 운영 업체에 말했고, 운영 업체는 영양사를 통해서 하청 업체 직원인 나에게 그 사실을 전해 온 것이다.     


정말 거지 같은 경우였다. 망할 놈의 인간 같으니라고. 돼지 같은 인간! 이런 이유로 2년 2개월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게 되다니.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다. 기분이 더러워서 더 이상 이곳에 일 할 맛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영양사에게는 곧바로 그만두겠다고 했다.      


권고사직이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고, 요즘 다리가 아파서 병원 진료를 받고 싶기도 했다. 대중교통을 세 번 갈아타는 1시간 거리의 직장이 힘들기도 했는데, 이참에 쉬면서 병원도 다니고 새 직장을 알아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날로 짐을 다 싸서 가져왔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 전까지는 나와 달라는 영양사의 부탁에 일단은 그러기로 했다. 돼지 같은 인간들 면상을 또 보기는 싫었다. 하지만 미안해하고 난처할 처지에 처할 영양사나 낮시간 조리사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으니... 그래서 새 야간 근무자가 올 때까지만 일하기로 했다.     



여름휴가 기간이라서 사람이 쉬이 구해지지는 않을 텐데.


한 달 정도만 더 힘내자.



그리고 모두의 여름휴가가 끝날 때,
나는 2년 2개월 만의 휴가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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