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수집가 Jun 24. 2022

장례식장에서...

  며칠 전, 친구의 모친상에 다녀왔다.

  그동안은 코로나로 인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는데 모임 인원이 완화되어 문상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90을 넘겨 사셨다. 그렇게 장수하시고 떠나셨으니 사람들은 호상이라고 위로차 말들 하겠지만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가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친구의 마음은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단 몇 주 아니 며칠만이라도 더 살아 주시길 바라지 않았을까. 

  더구나 어머니는 비교적 건강하게 지내셨다고 들었다. 그러다 돌아가시기 한 두 해 전부터 안 좋아지셔서 요양원으로 모셨고, 언젠가 돌아가실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 달 전쯤 다른 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때도 어머니는 대체로 잘 지내고 계시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어머니의 부고 소식은 나에게도 좀 놀라웠다. 그나마 고통 없이 편안하게 가셨다니 가신 분이나 남은 가족들에게나 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어차피 죽는 존재라는 걸 천 번 만 번 되네이지만 죽음 앞에 담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 친구처럼 어머니만 계신 나도 언제 아는 사람들에게 엄마의 부고 소식을 전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왜 문상 가서 먹는 밥은 그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다. 뭐 파는 음식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하다가도 막상 먹으면 의외로 맛있다. 더구나 난 앞서 말한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저녁도 먹지 못하고 갔으니 그 맛은 더 배가 되는 느낌이기도 했다. 

   문득 며칠 전 TV에서 본 시트콤이 생각났다. 주인공의 아는 사람이 상을 당해 장례식장에 중학생 아들과 함께 갔는데, 아들이 음식이 너무 맛있다며 이거 공짜냐고 묻는다. 주인공이 얼떨결에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친구도 오라고 해서 같이 먹으면 안 되냐고 해서 그러라고 또 한 번 얼떨결에 대답한다. 그런데 웬걸. 아들은 친구의 친구 또 그 친구의 친구까지 거의 한 부대가 와서 그곳 음식을 거덜 낼 판이다. 마침 그전에 아들이 친구와 이상한 내기도 했고. 보통의 경우라면 주인공은 아들에게 그렇다고 이러는 경우가 어디냐고 나무랄 수도 있는데 오히려 자칫 썰렁할 수 있는 장례식장에 훈훈한 활기를 불어넣는다. 비록 드라마이긴 하지만 거기서도 역시 장례식장에서 먹는 음식이 맛있다는 걸 부각했다. 

  왜 장례식장에서 먹는 음식이 맛있는 걸까.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영안실에서 먹었던 음식도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60도 채 되지 않아 갑자기 병을 얻어 한 달 반 만에 돌아가셨다. 모든 게 믿을 수 없고, 그저 슬퍼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것만 같은데 때가 되면 배가 고팠고 상을 치르는 동안 거르지 않고 밥을 먹었다. 그때처럼 맛있다는 게 서글펐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왜 맛있는 음식은 행복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슬픈데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행복하고 기쁜 순간 맛없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슬픈데 먹는 음식조차도 맛이 없다면 더 슬프지 않을까. 행복하고 기쁠 때 맛없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뭐 그럴 확률은 낫겠지만. 그래도 만의 하나 그런 순간이 있다고 해도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에 맛있게 먹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컨대, 그러라고 장례식장에서 먹는 음식은 그렇게 맛있는 건 아닐까. 


  짧은 문상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맞은편 호실 입구에 들어갈 때도 보이지 않았던 어느 조화가 눈에 들어왔다. 알고 봤더니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유명 영화 배우가 보낸 조화였다. 순간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죽었길래 그런 유명 배우가 조화를 보냈을까. 모르긴 해도 영화 관계자가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을 했던 사람일까. 스텝일까 아니면 조연으로 나왔던 사람일까. 알 길은 없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와서 한쪽 벽에 걸린 안내 게시판을 보니 망자는 언제 찍은 사진인지 모르겠지만 30을 갓 넘겼을 것 같은 젊은 남자였다. 그는 어쩌다 그렇게 젊은 나이게 세상을 떠났던 걸까 안타까웠다. 

  이 세상엔 나 보다 늦게 세상에 와서 나 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오늘 나의 하루는 그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했던 하루였을 것이다.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야할까 마음 한쪽에 쓸쓸한 바람이 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