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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Oct 15. 2021

개가 살지 않는 집(9)

암은 죄가 없었어요

  다롱이가 죽기 1년 반쯤 전, 갑자기 피 설사를 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녀석은 화장실에서 쉬 나오지 못하고 여기저기에 분사하듯 계속 싸 대는 것이었다. 겁이 더럭 났다. 나는 녀석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구나 싶었다. 병원을 데려가야 했지만 얼른 멈추지 않으니 데려갈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녀석이 저러는 것이 암이면 어쩌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큰 이모네가 키웠던 반려견도 다롱이와 같은 요크셔테리어 암컷이었는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겨우 설사가 멎자 병원엘 데리고 갔더니 다행히도 암은 아니었다. 대신 췌장염이란 진단을 받았다. 웬 췌장염. 그게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렵 동생은 집 앞에 통닭집이 새로 생겼는데 무려 한 달 반을 두고 거의 매주말이면 통닭을 사 왔다. 물론 우리 집이 뭔가 맛있는 게 있으면 한 두 번 먹고 끝나진 않지만 동생한테 이런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다. 덕분에 질리도록 먹었다. 

  하지만 그걸 사람만 먹겠는가. 벌써 동생이 통닭 봉지를 들고 들어오면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다롱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살코기만으로 잘게 찢어 녀석도 먹이곤 했다. 

 그렇지 않아도 피 설사를 하기 전 똥이 다소 질척거리고 뭔가 윤기기 있어 보이는 것이 수상하다 했다. 의사는 췌장염은 낫는 병이 아니며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불치병이라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지방은 일체 먹이면 안 되고 특수사료만 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열흘 정도 입원했는데 그나마 의사의 배려로 다롱이가 주인과 너무 오래 떨어져 있으면 안 되니 주말에 잠시 퇴원했다 다시 입원시키기도 했다. 

 순간 우리가 다롱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아찔했다. 

 물론 다롱이가 먹는 것에 대해 신경을 안 쓴 건 아니지만 녀석이 늙으니 확실히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아 졌다. 그러면 엄마는 안타까운 마음에 뭐라도 먹길 바랐다. 그런데 비해 나는 개는 배고프면 먹게 되어 있으니 사료만 먹이자고 했다. 그러면 엄마는 어떤 수의사가 TV에 나와서 말하는데 뭐든 사람 먹는 대로 같이 먹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람 먹는 거나 개가 먹는 거나 다를 것이 없다며. 

  나는 그렇게 말하는 수의사를 본 적이 없다. 엄마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다롱이를 뭐라도 먹게 해 주고 싶은가, 엄마와 나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또 이런 적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어느 집 아이를 놓고도 친정엄마와 딸이 다르다더니. 그렇다고 매번 싸울 수도 없고. 아마 우리 집은 다롱이 이후 다시 반려견을 키우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엄마와 내가 개를 키우는 방식이 달라서일 것이다. 

 그렇게 다롱이는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동생은 그때 이후로 더 이상 통닭을 사 가지고 들어오지 않았고, 다롱이도 죽을 때까지 닭고기를 먹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참 우습다. 사람이나 개나 몸에 조금만 이상이 있으면 암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니 말이다. 

  몇 년 전 나는 좌골이 아파서 동네 정형외과를 다닌 적이 있었다. 

  처음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 혹시라도 의사가 암이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안 그랬다면 의사는 고개만 갸웃거리며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 했겠지.)

 다롱이도 그렇다. 다롱이가 암에 걸렸다면 그전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어딘가 아프기 시작했을 것이다. 전날까지 맛있게 먹고 무슨 암일까. 그만큼 암이 흔해진 탓일 것이다. 세명 중 한 명 꼴이라잖나. 동물도 인간과 함께 살다 보니 병도 닮은 것인지도 모르고.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사망원인 1위는 암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암만을 기억하는 건 매스컴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다뤄도 너무 많이 다루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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