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수집가 Oct 13. 2021

개가 살지 않는 집(8)

노화에 대하여

  언제부턴가 다롱이는 엄마의 높은 침대를 단숨에 뛰어오르지 못했다. 

  다롱이의 노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사실 다롱이의 노화는 그 보다 더 일찍 시작되었을 것이다. 말에 의하면 중형견일 경우 생후 7~8년부터 시작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다롱이는 침대만 뛰어오르지 못했다 뿐이지 여전히 건강했다. 짖는 것도 여전하고. 사람도 그렇지 않나. 사람은 30대가 되면 노화가 시작된다고 하지만 누구도 그 나이를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롱이도 그랬다. 영양이 좋아서 그런지 노화도 더디 오는 것 같았다.  

  엄마의 다리를 생각하면 침대가 높은 것이 좋지만 다롱이가 단번에 뛰어 올라오지 못하니, 엄마는 어느 날 과감하게 매트리스를 뺐다. 그리고 다롱이가 딛고 오르내릴 수 있는 비탈 형 쿠션을 놔줬다. 처음엔 계단식으로 된 걸 사 줬는데 평소 산책을 안 시켜줘서 그런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사실 비탈 형 쿠션도 조심하는 편이었는데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면 제법 섹시해 보였다.

  대신 엄마는 침대가 낮아지자 불편해했다. 그건 관절이 안 좋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람이 개에게 맞추어야지 개가 사람을 맞출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게 키운 지 8년인가 9년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다롱이가 정말로 늙었다고 생각됐던 건 백내장이 왔을 때였다.

 어느 날 다롱이의 눈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한쪽은 눈은 투명 구슬이 박힌 것 같이 동공이 커 보였고,  한쪽은 탁해 보였다. 40대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하고, 몇 년 전엔 급기야 백내장 수술까지 받았던 엄마는 다롱이가 얼마나 답답하겠냐고 안타까워했다. 

  그건 정말 뜻밖이었다. 여태까지 개를 그렇게 많이 키웠어도 백내장에 걸린 개는 본 적이 없다. 제니가 15년을 살다 갔어도 눈은 멀쩡했다. 하지만 이제 백내장은 개에겐 흔한 질병 중 하나가 되었다. 

 인간에게 암이 흔해진 이유가 수명과 관련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즉 암이 생길 때까지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엔 인구도 많지 않았고 수명도 길지 않아 암이 생기기도 전에 다른 병이나 다른 이유로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오래 살다 보니 내남없이 암이 발생하는 것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꽤 신빙성 있는 말이란 생각이 들기는 하다. 그렇다면 개도 그렇지 않을까. 다롱이가 백내장을 앓게 된 것도 오래 살다 보니 겪는 병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장수를 하면 생길 수 있는 애로사항이 사람에게나 개에게나 똑같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또 녀석은 건강할 땐 가끔 맨바닥에서 슬라이딩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이따금씩 넘어져 허우적대기도 했다. 처음엔 옆으로 넘어지면 금방 다시 일어서곤 했는데 한 번은 녀석이 물을 먹다 옆으로 넘어지더니 못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다롱이가 경기를 하는 줄 알았다. 나는 놀라면 소리를 지르는 버릇이 있는데 얼마나 놀랐던지 거의 비명이 나왔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다롱이가 넘어져도 놀라지 않았다. 대신 얼른 가서 일으켜 주었다. 

 이렇게 우린 다롱이의 늙음을 하나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땐 엄마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있었다.    

 다롱이는 그렇게 눈이 안 좋아지자 귀도 안 좋아졌는지 짖는 빈도수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예전엔 누가 현관문만 두드려도 총알 같이 짖더니 오죽하면 택배직원이 개가 없어졌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러자 좀 멍청해지기 시작했다. 개나 사람이나 노인성 난청과 시력저하를 신경 써야 하는 건 그것이 치매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언젠가 여름에 엄마가 큰 이모네에서 하룻밤 잔적이 있었다. 그럴 때 다롱이는 내 방에 들어와 자기도 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았다. 밤늦도록 엄마가 언제 들어오나 현관만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몇 시간씩 앉지도 않고. 전에 없었던 행동으로 난 그런 녀석의 맹목성에 약간은 서늘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다롱이를 어렸을 때부터 자기 집에서 자도록 훈련시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랬다면 훗날 이렇게 자는 문제 가지고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때부터 절대로 엄마의 외박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또 큰 이모네에서 외박을 한다기에 정말 그럴 건가 싶어 전화를 했더니 마침 막내 이모가 받아 사정 얘기를 했다. 그건 나로서도 난감한 일이었다. 유 씨네 세 자매가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을 텐데 찬물을 끼얹는 일이었을 것이니 말이다. 더구나 연로한 엄마를 다롱이 때문에 해도 다진 마당에 집에 오라는 것도 그렇고. 

  난 그저 그렇게 이모에게 사정 얘기를 했을 뿐인데 막내 이모는 큰 이모와 달리 성격이 상냥했고 이해심이 많았다. 결국 이모의 설득에 엄마는 그 밤에 툴툴거리며 집에 돌아온 적도 있다.   

  그런저런 걸 따져 봤을 때 녀석은 안에서 뭔가가 진행 중임에 틀림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TV를 보니 개의 치매에 대해 한 수의사가 나와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체크리스트를 제시하는데 다 맞는 건 아니지만 몇 가지는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롱이는 밤낮이 바뀌었고, 짖는 대신 우는 때가 있었다.  그 의사는 요즘엔 치매 약도 잘 나와 있으니 초기 때 먹이면 많이 좋아진다고 해서 더 나빠지기 전에 동네 동물병원에서 약을 사 왔다. 

  엄마는 처음 몇 번은 먹이더니 어느 날 그 약이 싹 치워져 있었다. 

 그때는 또 하필 엄마와 내가 무슨 일로 한바탕 싸우던 끝이었는데, 내가 약을 어디다 뒀냐고 묻자 버렸다는 것이다. 버리면 버린 흔적이 있을 텐데 없다. 그 사이 쓰레기 봉지가 밖으로 나간 적도 없고. 

  나는 또 한 번 화가 났다. 엄마는 원래부터 약을 싫어했으니 다롱이에게 약을 먹이는 것에 대해서 찜찜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약을 싫어한다고 다롱이한테까지 약을 못 먹게 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게다가 아무리 그래도 있는 약만이라도 다 먹게는 해 줘야 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의사는 그 약은 내성이 생길 수도 있어 잠시 끊어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그때 가서 안 먹이면 된다.

 그나마 더 아쉬웠던 건 동생이었다. 엄마는 동생 말이라면 못 이기는 척 수긍할 때가 많은데 그때 따라 엄마와 나를 중재하는 척하더니 개한테 그런 것 먹여봤자 소용없다며 엄마에게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동생 역시도 엄마를 닮았는지 그 흔한 비타민 알약도 먹지 않으니 역시 가재는 게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홧김에,

  "네가 의사냐? 네가 의사냐고!"

  하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와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약을 싫어했다기보다 다롱이가 치매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걸 인정하면 당신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어떤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약은 다롱이가 죽기 몇 주 전에 집에 있는 큰 화병 안에서 발견됐다. 

  며칠을 두고 있을 만한 곳을 뱅뱅 거리며 찾았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설마 그런 곳에 있을 줄이야. 약은 1년도 넘게 거기에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롱이의 죽음을 앞두고 약 때문에 병원을 다녔을 때 의사는 그 약을 다시 처방했다. 좀 어이가 없었다. 

  글쎄, 그때 엄마가 반대하지 않고 그대로 약을 먹였더라면 다롱이는 좀 더 건강하게 살았을까. 모든 게 후회로 남는다.             


       


 

 



 

       




작가의 이전글 개가 살지 않는 집(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