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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Oct 11. 2021

개가 살지 않는 집(7)

다롱이가 효자

 다롱이를 키우면서 꼭 한 번 입양을 생각한 때가 있었다.

 녀석이 짖는다고 이웃으로부터 진정을 받아도 접이식 철창을 사다 현관에 접근을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쳐놓을 망정 우린 그때도 입양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2013년에 갑자기 오빠가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그땐 다롱이도 이미 노견이 되었고 예전에 비하면 좀 덜 짖긴 했지만 그래도 종자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말수가 없던 오빠는 뭐라고 안 그러는데 정작 출가한 언니가 오히려 더 신경을 쓰는 것이었다. 상황이 그러니 자신이 데려다 키우겠다는 것이다. 뭐 언니의 생각도 틀리지 않았다. 몸이 안 좋은데 개까지 수시로 짖어대면 얼마나 신경이 쓰이겠는가. 하지만 난 왠지 다롱이를 선뜻 언니에게 내줄 수가 없었다. 그때 언니는 강원도 정선 개인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다롱이를 안에서 키우는 것도 아니고 마당에 두겠단다. 그땐 봄이긴 했지만 강원도 정선은 서울과 달리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꽤 쌀쌀할 텐데 다롱이를 마당에 있게 하겠다니. 안에서 키우던 개는 계속 안에서 키워야지 그러다 감기에 걸리거나 겨울에 얼어 죽는다면 어쩔 것인가. 게다가 과연 다롱이가 바깥에 있겠다고나 할지 그것도 의문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안 짖도록 하겠으니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엄마도 처음엔 오빠를 생각해서 언니의 말에 동조하는 것 같더니 내가 단호하게 나오자 못 이기는 척 내게 손을 들어주었다. 그건 나도 뜻밖이었다. 오히려 내가 고집을 피운다고 타박할 줄 알았더니 이렇게 쉽게 나에게 손을 들어줄 줄이야. 그러고 보면 엄마의 다롱이 사랑도 무시는 못하겠다 싶었다. 하긴 다롱이가 죽을 때까지 중간에 1, 2년 정도를 제외하고는 노구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항상 직접 목욕을 씻겼으니 알아줄만하지 않는가. 

 그렇게 다롱이는 입양 보낼 처지에서 막판에 구원을 받았고, 오빠는 몇 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마지막은 강원도의 어느 호스피스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지 6개월 만이었고, 50회 생일을 넘긴 지 한 달여만이었다.

 산다는 건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건 단순히 슬프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 같다. 죽는 사람은 죽어가느라 고통이고, 살아있는 사람은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괴롭다. 그건 가슴이 타고 어깨가 으스러질 것만 같은 아픔이다. 둘 다에게 힘든 일이다. 더구나 자식을 먼저 앞세워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는 가족들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글쎄, 동생과 내가 모두 다 엄마 곁을 떠나있었더라면 집에서 혼자 맘껏 울었을까. 그랬을 것 같긴 하다. 그랬다면 마음이 좀 풀어졌겠지. 우리는 성격상 가족끼리도 그리 친하지 않아 함께 기쁨을 나누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그저 먼발치서 슬프면 어느 만큼 슬프겠구나, 기쁘면 얼마큼 기쁘겠구나 그저 짐작할 뿐이다.  

 누군가는 그랬다. 가족은 군도 같은 거라고. 

 모여있는 작은 섬 말이다. 평안할 땐 그냥 혼자 있다가 누가 아프거나 힘들면 함께 해주고 또 그 문제가 해결되면 흩어져 혼자 있는 섬 같은 존재들. 난 그 말에 백번 동의한다. 그래서 엄마도 우리 앞에서 울지 않는 것처럼 우리 역시 엄마 앞에서 울지 않았다. 하지만 오빠가 떠나고 나 역시 보지 않는데서 많이 울었다. 아무리 정 없는 오누이지만 그도 피를 나눈 형제라고 눈물이 나오더라. 

  하지만 난 그게 오빠를 사랑해서 흘렸던 것 같지는 않다. 그저 한 인간으로 태어나 좋은 시절은 살아보지도 못하고 저리 짧은 생애를 살고 가다니. 그냥 서글퍼 울었던 것 같다. 게다가 철부지 어렸을 적 티격태격 싸우긴 했어도 오누이의 추억이 없었던 건 아니니 그 쥐꼬리만 한 추억이 잊힌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살아나 흘렸던 눈물이었을 것이다.

 통상 부모가 돌아가면 슬픔을 잊는데 5년 걸리고, 형제는 2년쯤 걸린다고 하는데 개뿔. 난 그 보다 훨씬 더 걸렸다. 아무래도 내가 오빠한테 맺힌 한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짜 어느샌가 모르게 덤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엄마는 어떻게 아들을 잃은 슬픔을 잊었을까. 

 언젠가 엄마는 신앙과 다롱이가 아니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롱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살아있는 자식은 막상 부모에게 별 쓸모가 없을 때가 많긴 하다. 도움이 되기보단 속 썩이는 게 많지. 다롱이도 사람이었다면 엄마에겐 별 도움이 안 됐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개 보다 못하다. 다롱이가 효자다. 

 그러다 엄마는 오빠가 그렇게 간 지 2년 후에 대장암에 걸렸다. 다행히도 예후가 좋아 별무리 없이 회복했지만 처음 1, 2년은 힘들어 다롱이 목욕도 못 씻겼다. 원래 개는 자주 목욕 씻겨 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깔끔한 엄마 성격에 몇 개월 만에 한 번씩 씻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롱이에게서 개 특유의 냄새가 나기도 하고. 여름엔 일주일에 한 번이고, 추우면 거의 2주 만에 한 번씩 씻기곤 했다. 엄마가 아플 땐 내가 맡아 씻겼는데 엄마는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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