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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Oct 18. 2021

개가 살지 않는 집(10)

우리가 다롱이를 위해 한 일

  다롱이의 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침대를 한 번에 뛰어오르지 못하는 녀석을 위해 매트리스를 뺐다. 그런 지 1년쯤 지났을 때 침대를 오르내릴 수 있는 발판이 되는 비탈 형 쿠션 하나를 더 놔줬다. 엄마는 다롱이가 눈이 안 보여 자꾸 옆으로 가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면을 늘려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오래가지 못했다. 자꾸 다리에 힘이 빠지니 오르내릴 힘도 없어 쿠션을 아예 치워버렸다. 그러면서 엄마는 이제부터 다롱이가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면 녀석을 들고 데려다 놓으라고 했다. 

  그렇다면 다롱이가 언제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할까. 그것은 대체로 녀석이 한 잠자고 일어나면 무조건 화장실에 데려다 놔줬다. 그게 대략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간격쯤 됐다. 물론 맞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 일은 엄마와 내가 번갈아 가며 했는데, 나는 주로 오전부터 밤까지 했고 늦은 밤에서 이른 아침까지는 잠이 없는 엄마가 맡았다. 솔직히 그 일은 귀찮은 일이다. 특히 이제 막 잠이 들거나 꼭 봐야 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을 때 그것을 중단하고 녀석을 화장실에 데려다 놓아야 하는 건 좀 짜증 나는 일이긴 했다. 그렇다고 그 짜증을 받아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참고해 내는 수밖에. 

 녀석이 다리에 힘이 없어 바닥에선 자꾸 미끄러지니 강아지 매트 두 장을 사서 거실 바닥에 깔았다. 그것도 모자라 요가 매트 3장을 별도로 더 사서 주방까지 길게 이어 깔았다. 그리고 엄마는 녀석이 다니는 길 가에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죽 늘어놓았다. 녀석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자 거실은 순식간에 피난민 수용소같이 변했다. 그나마 우리 집에 그다지 올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이 광경을 보면 뭐라고 할지 한숨이 절로 쉬어졌다. 그러다 화장실 변기에서 자꾸 소리가 나서 동네 설비사 사장님을 불렀는데 뭐라고 말은 못 하고 놀라긴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긴 한다.  

 건강을 위해 건빵 대신 개만 먹는 '견빵'과 평생 좋아한 콩과 췌장염을 앓게 된 후 특수사료만 줬는데, 다행인 건 녀석은 지난번 혼이 난 걸 아는지 이 세 가지 외에 다른 건 먹지 않았다. 

  하지만 다롱이는 이제 그것을 잘게 부수어줘야 먹을 수 있었다. 이가 거의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마 사료는 좀 먹는 것 같더니 나중엔 먹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먹었던 건 콩이었다. 

  견빵은 나와 엄마가 주는 방식이 좀 다른데, 나는 손으로 잘게 부수었지만 엄마는 그것을 입으로 했다. 그러면서 부술 때 힘들게 손으로 하지 말고 입으로 해 보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렇게 하면 먹는 게 반이었다. 그러자 엄마는 어떻게 손으로 할 수 있냐며 우린 서로의 방식에 놀라곤 했다. 나는 또 한 번 엄마와 내가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몇 개월은 엄마와 내가 같이 밥을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것은 다롱이를 잘못 키운 탓이긴 했다. 전문가들이 왜 반려견과 같이 밥을 먹지 말라고 했는지 이제야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엄마와 난 다롱이를 먹이는 일에 있어서는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롱이가 조금이라도 더 먹기를 바랐고, 오직 먹는 것으로만 녀석의 건강 상태를 가늠해 볼 뿐인데 잘 먹으면 아직은 나쁘지 않은 거라고 짐짓 생각했다.   

  언젠가 TV에서 누구라면 알만한 우리나라 여성 정치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처음 운을 뗄 때 자신의 집에 반려견이 20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요즘 개는 20년도 사는구나 했다. 물론 그것의 전제는 주인이 잘 돌 봐준다는 일이다. 엄마는 그 후 그 말에 꽂혀 다롱이에게 어떻게 해도 좋으니 20년만 채우라고 주문인지 축복인지도 모를 말을 하곤 했다. 

  물론 다롱이와 헤어지는 것이 싫어 그랬겠지만 글쎄, 이러면서 화장실을 앞으로 2년을 더 다니고, 매일 엄마와 내가 어긋나게 밥을 먹고 그러면서 다롱이더러 2년을 더 버티라고? 그건 다롱이에게 너무 가혹한 건 아닐까. 그때 다롱이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닐까.

 다롱이에게 밥을 먹이려면 녀석을 무릎에 앉히고 밥그릇을 입에다 대주어야 했다. 그때마다 느껴지는 녀석의 체온이 남달랐다. 그건 지난 18년 동안 생각도 느껴보지도 못한 것이다.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한데, 이렇게 잘 먹는데 몇 달 후에 죽을 거라는 건 감히 상상할 수가 없았다. 그만도 오래 살긴 했지만 엄마 말대로 정말 20년을 꽉 채우고 가면 더 이상 아쉬울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런데 역시 늘어놓는 건 엄마의 취미는 아니었다. 

 엄마는 얼마 안 있어 다롱이가 걷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자 그동안 늘어놓았던 것들을 다 치우고 강아지 매트 한 장만 깔았다. 

 그러자 새삼 거실이 넓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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